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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뉴스 창간기념 기획연재(소설)/소쇄원에서 꿈을 꾸다(12)문순태 작가

<두 번째 꿈, 봉황을 기다리다>

문인주는 대봉대에 한가하게 앉아 있는 파랗게 젊은 선비 양산보를 보았다. 상투에 유건을 쓰고 앉아 하염없이 오동나무 우듬지를 쳐다보고 있는 양산보의 얼굴은 수심이 사라지고 한껏 밝아보였다. 약간 도톰하고 동글납작한 얼굴에 적당한 크기의 눈은 광채가 빛났고 실한 콧날이며 무겁게 느껴지는 입술은 심지가 굳어보였다. 이목구비가 흐른데 없고 풍신 또한 듬직하여 귀한 사람이 될 만한 귀골이었다. 이제 그의 나이 스물 넷. 스승 조광조가 사약을 받은 후 이곳 창암촌으로 내려온 지도 어느덧 7년이 지났다. 그동안 그는 증암천 건너 석저촌에 사는 광산김씨를 아내로 맞아 세 아들을 두었다.
  7년 전, 스승의 시신을 쌍봉사 앞에 임시로 장사를 지내고 창암촌으로 돌아온 양산보는 슬픔과 분노를 이기지 못해, 한동안 햇빛을 보지 않고 혼자 방 속에 깊이 처박혀 지냈다. 세상도 싫고 사람도 싫었다. 부모가 방문 앞에서 아들의 이름을 부르며 밖으로 나오라고 사정을 해도 듣지 않았다. 아버지 창암공은 아들에게 한양에 다시 올라가 다른 스승을 만나 학업을 계속할 것을 바랐다. 그러나 양산보는 이제는 출사를 위한 공부는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세상을 생각하면 스승이 피를 토하며 숨을 거둘 때의 모습이 떠올라 괴로웠다.
  스승을 장사지내고 집에 돌아온 양산보는  한동안 잠을 이루지 못하고 뜬눈으로 밤을 지새울 때가 많았다. 눈만 감으면 정암 스승이 사약을 마시고 피를 토하는 장면이 되살아났다. 몸부림 끝에 어쩌다가 잠이 들었다가도 꿈속에 정암 스승이 나타나면 벌떡 일어나곤 했다. 어쩔 때는 양산보 자신이 사약을 받고 피를 토하며 죽어가는 꿈을 꾸기도 했다. 죽는 것이 두려워서 사약 사발을 두 손으로 받쳐 든 채 벌벌 떨고 있다가, 금부도사가 빨리 사약을 마시라고 내지르는 소리에 깜짝 놀라 깨어날 때도 있었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가슴이 덜컹거리고 답답해지면서 목에 불이 붙은 것처럼 후끈거렸다. 육신이 천 길 바다 속으로 가라앉은 듯 무기력증에 시달렸다. 먹는 것도 싫고 누구를 만나기도 싫었다. 심신이 약해지자 자꾸 헛것이 보이기까지 했다. 한 번은 깜깜한 밤에 불도 밝히지 않고 방구석에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있는데, 밖에서 산보야, 산보야 하고 그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맑고 울림이 좋은 정암 스승의 목소리 같아서 부리나케 문을 박차고 밖으로 나갔다. 눈이 푹신하게 쌓인 뜰 한가운데에 산발을 한 채 도포자락을 펄럭이며 서 있는 사람이 보였다. 스승님, 하고 외치며 토방 아래로 내려서자, 도포 자락은 온데 간데 보이지 않고 연못가 능수버드나무 가지가 바람에 휘휘휘 춤을 추고 있었다. 이날 이후로 양산보는 밤에는 밖에 나가지 않았다. 그는 방안에 들어앉아서 “절통하다, 절통하다” 라는 말만 수 없이 되풀이했다.

  겨우내 방 안에만 박혀있던 양산보를 밖으로 꺼낸 것은 물 건너 마을 석저촌에 사는 사촌 김윤제였다. 김윤제는 양산보보다 두 살이 위였으나 어려서부터 동문수학하여 친동기처럼 가깝게 지내는 친구였다. 양산보가 창암촌으로 돌아와서 절망과 슬픔에 잠겨있을 무렵 김윤제는 과거공부에 열심하던 중이었다. 김윤제는 광주 출신 눌제 박상이 담양부사로 내려와 있을 때부터 문하생이 되었다. 
  화창한 봄날, 김윤제가 스승의 죽음을 비관하여 두문불출하고 있는 양산보를 찾아왔다.
“이보게 언진, 꽤꼬리 울고 나비 춤추는 이 화창한 봄날, 방 안에서 무슨 생각을 그리 골몰히 하는가. 오늘은 오랜만에 나하고 거풍이나 좀 하세. 자네가 한양에 올라간 후로 우리 한 번도 한담을 나눈 적이 없지 않은가.”
 양산보는 과거를 앞두고 글공부에 여념이 없는 데도 일부러 짬을 내서 찾아온 오랜 친구 를 만나지 않을 수 없었다. 친구의 고마운 정에 울컥해지기까지 했다.  
“이 쾌청한 날에 답답하지도 않은가. 이제 묵은 감정은 다 털어버리고 마음을 가다듬게나.”
양산보와 마주앉은 김윤제는 얼굴이 수척해진 친구를 보자 마음이 애틋해졌다.
“아니, 저것은 학포 선생의 절죽도가 아닌가? ”
김윤제가 벽에 붙여놓은 절죽도를 보며 물었다.
“소소하게 댓잎 소리가 들리는 것 같구만. 자네 참 귀한 보물을 갖고 있네 그려.”
“능주 배소에서 학포 당숙이 정암 스승님의 부탁을 받고 그려주신 것이라네.”
“학포하면 절죽도가 으뜸 아니던가.”
“특히 정암 스승께서 좋아하셨다네.”
“허면 옆에 붙여놓은 시는 ?”
“정암 스승께서 사약을 받기 직전에 쓰신 절명시일세. 저 시를 금부도사 유엄에게 드렸는데 받지 않고 버린 것을 내가 가져왔네.”
“그런가? 정암 선생의 절명시란 말인가? 아, 정암 선생이 쓰신 절명시를 볼 수 있다니... ”
김윤제는 벌떡 일어나 벽 가까이 다가서는 감격하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절명시를 읊었다.
“임금을 향한 정암 선생의 마음을 그대로 담았구만. 정암 선생이 저 시를 유엄에게 준 것은 임금께 전하라는 뜻이었을 텐데....”
“유엄은 그러기 싫었던 게지. 임금께 보였던들 무슨 소용이 있었겠는가.”
“이런 충신을 버리시다니 우러러 받들만한 임금이 아닌 듯하네. ”
“교토사량구팽이고 비조진량궁장인 셈이지.”
양산보는 교토사량구팽(狡兎死良狗烹 ), 토끼가 죽고 나면 사냥개는 삶아먹는다, 비조진량궁장(飛鳥盡良弓藏), 높이 나는 새도 잡히고 나면 좋은 활도 쓸모가 없다는 옛말을 서슴없이 뱉어냈다. 
“헌데 정암 선생의 절명시를 자네가 갖고 있다는 것을 나 말고 누가 또 알고 있는가.”
김성원이 다소 걱정스러운 표정을 하고 물었다.
“학포 당숙께 드렸더니 제자인 내가 갖고 있는 게 좋겠다고 하셨네. 언젠가는 가족한테 전해주어야겠지. ”
“유엄도 알고 잊지 않겠는가? ”
“모르지. 아마 스승님께서 약을 드시고 피를 토하고 계셨기 때문에 보지 못했을 수도 있겠지. 헌데 왜 그러나?”
“혹여 차후에라도 절명시 때문에 자네가 화를 당하게 되지나 않을까 우려해서 하는 말이네.”
그러면서 김윤제는 한참동안 벽을 보고 서서 정암의 절명시와 학포의 절죽도를 번갈아가면서 들여다보았다. 
“참, 눌제 선생께서는 잘 계시는가. ”
양산보가 입을 열어서야 김윤제는 벽에서 눈을 떼고 앉았다.
양산보는 지난 봄, 쌍봉사 옆에 가매장 했던 정암 스승의 시신이 소달구지에 실려 경기도 용인으로 옮겨갈 때, 일부러 배웅하지 않고 집에 있었다. 그로부터 며칠 후, 김윤제는 그의 스승인 눌제 선생이 정암 선생의 관이 실린 달구지를 보며 쓴 만시(輓詩)를 양산보에게 보여준 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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