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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담양담양사람들)/ 담양의 문화예술인(6)침선장 김금주 명인 (담양군 공예명인 제15호)
  • 강성오 문화전문기자
  • 승인 2019.04.09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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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언니 솜씨 부러워 시작한 바느질,..명인 반열까지 올라
남다른 손재주, 양장과 한복을 넘나드는 침선의 달인

김금주 명인

김금주 명인은 부단한 자기계발로 장인의 반열까지 오른 침선의 달인이다.
어린시절, 이쁜 옷을 입는 친구가 부러워 그런 옷 한번 입어보고자 아버지를 졸라 시작한 양재기술이 양장 전문기술자로, 나아가 한복까지 익히고 배워 마침내 침선의 장인으로 담양군 공예명인에 지정되기에 이르렀다. 김 명인은 생업으로 보다는 작품에 열중하며 후진양성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친구가 멋진 옷을 입고 다니는 것이 부러웠습니다.

인구에 자주 회자되는 부러우면 지는 거라는 말이 있다. 말 그대로 마냥 부러워만 하면 정말 지는 것이다. 하지만 부러워만 하지 않고 행동에 옮긴다면 지는 게 아니다. 부러운 대상에 자극 받아 오늘날 명인의 반열에 오른 이가 있다. 침선 명인 김금주가 바로 그녀다.
 
침선 김금주 명인이 바느질을 배우게 된 동기는 초등학교 친구 때문이다. 김 명인의 고향은 수북면 평수리다. 수북에서 초등학교를 다녔는데 옆 동네의 아이와 유독 친하게 지냈다. 친구에게 바느질에 능한 언니가 있었다. 언니는 동생을 위해 손수 옷을 지어 입히곤 했다. 손수 지은 옷이라 희소성이 있었다. 뿐만 아니라 때로는 단아하고 때로는 화려하고 때로는 기품 있는 옷을 입고 학교에 오곤 했다. 당연히 부러운 시선을 한 몸에 받을 수밖에 없었다. 질투나 시샘 어린 시선도 섞였을 것이다. 김 명인도 부러운 시선으로 친구를 바라보곤 했다. 그러다 어느 날 친구에게 그 옷이 어디서 났느냐고 물었다. 언니가 지어준 옷이라 했다. 그녀는 자기도 옷을 직접 지어 입고 싶은 마음이 싹텄다. 동생들에게 지어주고도 싶었다.

김 명인은 장녀로 태어났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맏딸은 살림 밑천이라고  아버지가 그녀에게 공장에서 돈을 벌어 동생들 뒷바라지하기를 바랐다. 공장에 다니는 언니들을 보고 공순이라 불렀던 시절이었다.
 
“공순이라 불리는 것도 싫고, 친구가 멋진 의상을 입고 다니는 것이 부러워 양재 기술을 배우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여러 날 호소했습니다. 양재학원 보내 달라고.”
간곡한 호소 끝에 그녀는 드디어 양재 학원에 다니게 되었다. 그녀가 먼저 배운 것은 한복이었다. 학원에서 약 1년 정도 한복을 배우고 나서 양장을 배웠다. 양장점에 다니다 결혼을 했는데, 시어머니가 노덕희 선생에게 한복을 배웠다. 김 명인도 시어머니와 함께 한복을 전문적으로 배웠다. 집중적으로 배운 것은 침선이었다.

침선이란 선을 따라 바느질 하는 것이다. 선을 따라 바느질 한다는 것이 얼핏 쉽게 생각되었지만 생각과는 딴판이었다. 조금만 집중력이 흐트러지면 엉뚱한 곳에 바느질이 되어 있곤 했다. 자세도 흐트러뜨리지 않아야 하는 고된 교육이었다. 그래도 그 시간이 즐거웠다. 그렇게 어렵게 교육을 받았음에도 그녀는 양장점에서 일 했다. 한복보다 양장 일이 더 많았기에 한복 보다는 돈을 수월하게 벌 것 같았다.

 

김금주 명인의 한복 전시 체험장(담양읍. 담양동초교 뒷길)

지인이 상 타는 것을 보고 저도 받고 싶었습니다.

“아는 사람이 상을 탔다고 엄청 자랑했어요. 부럽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요? 너무 부러웠습니다. 제가 25년 넘게 양장점에서 일했는데 상을 받은 적이 없었거든요. 저도 받고 싶었습니다.”
김 명인이 작품성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나이는 52세 때였다. 상을 타기 위해서는 양장만으로는 안 될 것 같았다. 양장과 한복을 접목하거니 한복의 완성도를 높여야 수상의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그래서 다시 한복에 관심을 갖고 대회 준비를 하기로 결심을 굳혔다. 수상을 목표로 하니 여러 가지를 신경 써야 했다. 색상도 인위적인 것이 아니라 천연 염색으로 하고 싶어 천연 염색을 배웠고, 원하는 색상을 뽑아내려고 숱한 연구와 실험을 반복했다. 뿐만 아니라 미싱도 멀리 했다. 한 땀 한 땀 손수 바느질 했다. 미싱으로 하면 간단하게 끝낼 작업을 손바느질하다보니 시간이 무척 오래 걸릴 수밖에 없었다. 고단한 작업이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도전할 수 있다는 것에 큰 기쁨을 느꼈다. 사실 양장으로 어느 정도 돈을 모았으니, 명예욕이 은근히 발동한 것이었다. 한 가지 더움이 된 게 있다면 양장을 계속 해 왔기에 한복 기술의 습득력이 빠르다는 것이었다.
 
“대회에 나가려면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해야 합니다. 1밀리미터만 틀려도 바로 탈락이거든요.”
그러니 침착하고 세심하게 바느질을 할 수밖에 없다. 서두르다가는 어김없이 실수가 뒤따른다. 그래서 침선이 느림의 미학이라는 별칭이 붙었는지도 모른다.
숯으로 염색한 작품으로 특선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이를 기점으로 김 명인은 자신감을 얻어 계속 도전했다. 1975년부터 40여년 종사해온 전문성과 수상경력에 힘입어 대한민국 황실공예 침선장 명인으로 선정되더니 2014년도에는 침선 분야로 담양군공예명인 제5호로 지정되었다. 2018년도에는 전라남도기능경기대회에서 한복부문 3위에 올라 동메달을 따기도 했다. 담양군에서는 명인의 활동 폭을 넓혀주려고 다양한 지원을 했다. 명인은 그에 보답하려고 소정의 장학금을 기탁했다. 장학금을 기탁한 것은 형편이 넉넉해서가 아니다. 돈보다 명예를 추구하려고 작품 위주로 제작을 하다 보니 양장으로 번 돈이 바닥나버렸다. 그럼에도 작품은 내보내지 않는다. 전시장에 전시를 하려고 소중히 보관하고 있다. 담양군에서 전시장을 마련해주었지만 협소한 공간이라 모두 전시하지 못하고 박스에 고이고이 보관한 작품도 꽤 된다. 작품들은 빛을 보게 될 날을 손꼽이 기다린다.

김 명인은 2006년부터 여성회관에서 15년 째 양재분야를 강의하고 있다.
한복 강의도 열심히 한다. 지정된 장소에서 강의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찾아다니며 강의를 한다. 명인이 이동해서 강의하는 것은 이유가 있다.
“죽녹원에서 한복 대여 및 체험봉사를 했습니다. 대여를 하면서 수선할 부분이 있으면 언제든지 A/S해주겠다고 부담 없이 가져오라고 했어요. 젊은 손님들도 많고 여학생들이 많아요. 그런데 여학생들이 수선을 요구한 걸 보면 옷고름이 달랑거리거나 실밥이 나간  것, 단추가 떨어진 것 등이 대부분입니다. 바느질로 간단히 수선할 수 잇는데 가져온 걸 보고 이래서는 안되겠다 싶었습니다. 여학생들에게 간단한 바느질을 가르쳐야겠다는 의무감 같은 것이 들었습니다. 여자라면 단추 정도는 달 줄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녀를 필요로 하는 곳이라면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보성기술센터, 광양기술센터, 직업학교, 국제복장학원 신세계점과 전대점, 공무원 연수원, 염색학원 등에서 재능을 기부했다. 때로는 심사위원이 되어 작품을 평가하기도 했다.

침선은 요술 같은 것

김 명인이 바느질에 몸담은 것은 40여 년이 넘는다. 강산이 4번 바뀔 정도로 바늘을 잡았으니 눈 감고도 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침선은 여전히 어렵다.
“침선은 요술 같은 것입니다. 요술의 세계는 끝이 없잖아요? 침선도 그래요. 배우면 배울수록 어렵고 끝도 없습니다.”
김 명인의 손끝에서 전통 혼례복, 색동저고리, 가래고쟁이, 개량한복, 파티 드레스 등의 격조 높게 재현되고 탄생되었다. 도안을 따라 한 땀 한 땀 바느질을 해야 하기에 수개월 걸려 한 작품을 완성하기도 했다. 그렇게 만든 작품이 수십여 종이다. 그렇게 많은 작품을 완성했으니 배울 게 없을 것 같지만 아직도 배울 게 많다. 요즘 장저고리를 배우고 연구하는 중이다. 언젠가는 그녀의 손끝에서 탄생한 장저고리를 보고 머지않아 수많은 사람이 탄성을 지를 것이다.

김금주 명인의 작품(전통혼례복)

돈 벌 나이는 지났잖아요?

김 명인이 요즘 가장 공들인 부분은 후진 양성이다. 침선이 배우기도 어렵고 노력과 공력에 비해 벌이가 시원찮기에 배우려는 사람이 드물다. 그게 안타깝다. 대를 잇지 않으면 격조 높은 전통 의상을 박물관이나 전시장 같은 곳에서만 볼 수 있다는 것이 심히 우려스럽다.
“돈 벌 나이는 지났잖아요? 후진 양성을 제대로 하고 싶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작품과 수강생들의 교육을 위해 원단 고르는 일 만큼은 어떤 일이 있어도 직접 챙긴다. 주로 찾는 곳은 한산과 보성과 곡성이다. 모시 하면 한산 모시이니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삼베와 무명은 다르다. 예전에 그렇게 흔했던 삼베와 무명을 취급하는 곳이 드물다. 전라남도에서는 유일하게 보성에서 삼베를, 곡성에서 무명을 취급한다. 그러니 그곳을 찾을 수밖에 없다.
김 명인의 공방에는 모시, 삼베, 무명이 수북하다. 한 땀 한 땀 바느질해야 하니 기나긴 시간이 지나야 작품이 탄생할 것이다. 그럼에도 침선을 배우고자 열정을 불사르는 수강생들이 있다. 수강생들이 있기에 침선의 맥이 끊어지지 않을 것 같아 한시름 놓인다. 그녀는 심신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바늘에 실을 꿴다. 선을 따라 꼼꼼하게 바느질한다.
박스 안에서는 전시관에서 전시될 날만을 기다리는 작품들이 몸을 들썩인다. 부러움 때문에 시작했던 바느질. 김 명인의 작품을 보고 또 누가 부러운 시선을 던질지 모른다./ 강성오 전문기자

강성오 문화전문기자  webmaster@d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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