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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담양담양사람들)/ 담양의 문화예술인(7)대나무조각 박동석 명장
  • 강성오 문화전문기자
  • 승인 2019.04.22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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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초 대나무조각 예술가로 ‘우뚝’
SBS ‘순간포착 세상에...’ 출연후 주목받아

미지의 길을 걷는다는 것은 정글에서 숲을 해치고 길을 만들며 가는 것처럼 어렵고 고독하다. 길을 내다보면 자기도 모르게 피투성이가 되기 십상이다. 그렇게 피땀 흘려 길을 만들어 놓으면 누군가는 편하게 걸을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 길을 누가 냈는지 관심을 두지 않는다. 사람들로 붐비는 관광지라면 길의 유래 정도는 나붙을지 몰라도, 흔히 지나다니는 길을 누가 언제 만들었는지 관심을 갖는 이가 드물다. 그만큼 미지의 분야를 개척한다는 것은 외롭고 힘들다. 예술계에서 다르지 않다. 미지의 분야를 개척했지만 대중들에게 조명 받지 못한 경우가 허다하다. 그럼에도 꿋꿋하게 길을 걷는 조각가가 있다. 박동석 죽조각 명장이다.

심심풀이로 시작한 죽조각

박동석 명장은 대나무에 그림을 조각하는 작가다.
대나무에 그림을 조각하는 것이 유래가 없어 용어도 구체적으로 정립되지 않았을 무렵 박 명장은 자신이 하는 작업을 ‘죽조각’이라 명명했다.
박 명장이 죽조각에 관심을 가진 건 20대 초반이었다. 당시 그는 가업이던 소를 키웠다. 축사에 일은 많은데 기계화가 안 된 시절이라 노동력에 의존해야 했다. 육체적으로 힘들 수밖에 없었다. 틈이 나면 쉬어야 하는 게 인지사정인데 그는 틈이 나면 대나무에 조각을 했다.
“심심풀이로 시작했는데, 대나무에 그림을 조각하는 것이 너무너무 좋았고 재미있었습니다.”
심심풀이로 했으나 잘 하고 싶은 욕망이 꿈틀거리는 건 어떻게 제어할 수 없었다. 제대로 배워보려고 스승을 수소문했지만 찾을 수 없었다. 죽조각을 시도한 사람이 자체가 아예 없었다. 그가 처음 시도한 것이었다. 그러니 오로지 그만의 노력으로 완성도를 높여가야 했다.

직접 도안을 하고 나니 내 작품이라는 자긍심이 생겼다

대나무에 그림을 조각하려면 대나무, 도안, 칼 등이 필요하다. 간단하다. 하지만 간단한 재료에 비해 조각하는 시간은 상당하다. 보통 20여일은 훌쩍 넘는다. 대나무는 단단해야 하므로 3년생 이상 만 사용할 수 있다. 대나무 표피를 토치로 검게 그을린다. 대나무에 불이 닿으면 진액이 나온다. 뜨거운 진액으로 인한 자잘한 부상을 수없이 당했다. 부상에도 개의치 않았다. 며칠 후면 치유가 된다는 걸 수없이 경험했기 때문이었다.
도안을 대나무 통에 대고 송곳 같은 뾰족한 펜으로 꾹꾹 눌러 도안을 대나무에 옮긴다. 필사나 마찬가지다. 그가 도안을 의뢰하면 어떤 작가는 도안을 주는 조건으로 ‘죽조각’을 원하기도 했다. 당연한 요구라고 생각해 흔쾌히 받아들였지만 20여일 넘게 공을 들여 조각하는 것이 부담으로 작용했다. 그래서 방법을 달리했다. 도안을 작가에게 부탁하지 않고 직접 그리기로 한 것이다. 자신이 직접 하다 보니 좋은 점이 있었다. 생각나는 대로, 자신의 구상대로 도안을 하는 것이었다.

▲작업중인 박동석 죽조각 명장

“그때부터 진정 내 작품인 듯 뿌듯했다. 사실 다른 작가의 도안을 받아 조각하면 왠지 꺼림칙했거든요. 모방이나 필사는 오롯한 자기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직접 도안을 하다 보니 100% 내 작품이라는 자긍심이 생긴 것입니다.”
그가 즐겨 사용하는 도안은, 민화에 자주 등장해 한국인에게 친숙한 소재들인 십장생, 호작도, 화조도와 서예, 산수화, 풍경화 등이 그의 도안에 자주 그려진다.
도안을 대나무 통에 옮기고 나면 드디어 조각이 시작된다. 음영까지 표현해야 하는 섬세한 작업이다. 조각할 때는 모든 잡념을 버리고 무상무념의 상태에서 조각해야 한다. 헛생각을 하게 되면 도안대로 칼끝이 나가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번 잘못된 조각은 되살리기 어렵다. 폐기하거나 잘못된 부분만을 따로 조각해야 하는데 여간 만만한 일이 아니다. 십여 일 넘게 조각했는데 잘못되면 얼마나 허무하겠는가. 때문에 수도하는 자세로 조각에 임한다. 그러니 정신 수양에 도움이 될 수밖에 없다.
대나무 통에 조각하는 게 끝이 아니다. 그게 끝이라면 불에 달구어진 인두로 대나무에 그림을 그린 낙죽과 별반 차이가 없을 것이다. 조각이 끝나면 대나무 통 낱낱이 쪼갠다. 죽간 작업이라고 한다.

“대나무를 쪼개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닙니다. 대나무마다 결이 다른데, 그게 눈으로 확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러다보니 조심해서 쪼개는 작업을 합니다. 쪼개는 과정에 잘못이 생기면 그동안 노력이 물거품이 되잖아요. 그래서 조심하는데도 엉뚱하게 쪼개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대나무 특성을 파악하는 게 아직도 어렵습니다. 영원한 숙제인 것 같아요. 해결할 수 없는 숙제.”
온전히 쪼개진 죽간을 일일이 평면으로 연결한다. 작품을 유리 액자에 담기도 하고, 부채를 만들기도 하고, 대나무 액자에 걸기도 한다. 작품 하나를 완성하고 나면 탈진 지경에 이른다.


가장 토속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

20대 초반에 소를 키우며 남는 시간에 심심풀이로 시작한 것이 어언 30년이 지났다. 생계 때문에 축산을 접고 서울에서 살면서 한 시도 죽조각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그의 작품을 보면 열이면 열 명이 감탄사를 자아내고 엄지손을 치켜세우곤 했다. 소름이 돋는다고 하는 이도 있었다. 그렇지만 오랫동안 작품 가치를 제대로 평가 받지 못했다. 독보적이다 보니 그의 작품을 평가할 전문가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낭중지추’ 라는 말처럼 그의 작품성이 드디어 인정받기 시작했다. 전국문화예술대전에서 동상, 한국현대미술대전 특선, 대한민국 전통미술협회 올해작가상 최우수상, 제13회 대한민국열린서화대전 특선, 대한민국민화대전 특선을 수상하더니 급기야 SBS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라는 프로에서 소개하기도 했다. 그 후로 KBS, MBC 에 여러 번 출연했고, 전통예술명장 제16-83호 죽조각 명장으로, 사단법인 한국전통문화예술진흥회의 대한민국 전통명장으로 선정되었다. 2018년에는 제7회 대한민국황실공예대전 초대작가로 인증을 받았다.
2018년은 그에게 기념비적인 해였다. 앙드레말로 협회에서 후원하는 프랑스 루브르박물관에서 전시회를 가졌기 때문이다.

“CF에서 박동진 명창이 우리 것이 좋은 것이라고 하셨잖아요? 정말 그런 것 같아요. 저의 토속 적인 작품이 루브르박물관까지 갔으니 우리 것이 좋은 것을 넘어서서 가장 세계적인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수의 평가, 유수의 박물관에서도 전시를 했지만 정작 대나무의 고장인 담양에서는 그렇게까지 뜨거운 호응을 얻지 못했다. 담양에는 대나무 공예가들이 즐비하고 생활수준이 예술을 향유하기에는 아직 다다르지 못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는 예술인들이 많은 서울 인사동으로 작업실을 옮겼다. 그가 착안한 죽조각을 보다 널리 홍보하고 싶기 때문이었다.

죽조각은 늦둥이와 같은 것

“죽조각은 늦둥이와 같습니다. 늦둥이는 생이 다할 때까지 보살펴야 하잖아요? 그러니 생이 다하는 날까지 죽조각을 어루만져야지요.”
그의 말처럼 죽조각을 늦둥이처럼 애지중지 한다. 그래서 죽조각을 화제 올리면 흥에 겨워 이야기 한다. 뿐만 아니라 그의 솜씨가 필요하면 어디든지 달려간다. 비록 해외일지라도.
그는 충남대학교의 요청으로 라오스에 다녀왔다. 농부아 마을이었다. 일주일 일정으로 그서 현지인들에게 죽조각을 전수했다. 재능기부였다. 생계용으로 그들은 죽조각을 배워 상업용으로 활용할 것이라 했다. 죽조각을 위해서는 도구가 그렇게 많이 필요하지 않다. 조각칼도 딱 두 자루면 된다. 그러니 그들이 시작하기에 부담이 없을 것이다. 죽조각을 배우면 생계에 도움이 되는 것은 물론 정신수양에도 도움이 될 테니 기뿐 마음으로 전수했다. 호응도 너무 좋았다. 그래서일까. 라오스 농부아 마을에서 올해도 그를 찾았다. 정기적으로 지도를 받고 싶단다. 이를 위해 조립식 건물도 지을 예정이란다. 그는 마다않고 달려갈 예정이다.

박 명장에겐 꿈이 있다. 죽조각을 널리 홍보, 보급하고 전승 시키는 것이다. 전수를 시키려면 제자나 후계자가 있어야 한다. 후계자가 생기면 그의 모든 노하우를 기꺼이 전수할 마음의 준비가 돼있다. 그가 창안한, 세계에서도 유일무이한 죽조각이 사장되지 않고 활성화되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다. 늦둥이가 탈 없이 잘 자라기를 바라는 부모의 마음. 꿈이나 매한가지다. 그가 길을 개척했으니 혼자 걷기보다 동행할 누군가가 있으면 하는 바람이다. 꿈은 이루어진다. 월드컵 때 경기장에 내 걸렸던 카드섹션의 문구를 그도 보았다. 그 문장처럼 박 명장의 꿈도 언젠가는 이루어질 것이다./강성오 문화전문기자

강성오 문화전문기자  webmaster@d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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