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차려 입은 백인 여자는 대략 60대 후반의 여자로 보인다. 예쁜 모자를 쓰고 어딘가를 바삐 가다가 어떤 흑인과 부딪쳐 쇼핑백을 떨어뜨리게 되고 이를 주어 담느라 기차를 놓치고 말았다. 다음 열차가 오기를 기다리면서 역내 음식점에 가서 샐러드 한 접시를 주문하고 자리를 잡았다. 음식이 나오고 포크가 없다는 것을 알고 가지러 갔다 와보니 걸인처럼 보이는 흑인이 자신이 주문한 샐러드를 먹고 있는 게 아닌가. 화가 난 귀부인은 그거 내 것인데 왜 먹느냐고 따지지만 흑인은 이상한 여자라 생각하면서 그냥 음식을 먹는 것이었다. 참다못한 여자는 앉자마자 포크를 집어 들고 흑인과 함께 샐러드를 같이 먹는다. 다 먹은 후 흑인은 말없이 커피를 두 잔 가져와 하나를 귀부인에게 건네준다. 커피를 마신 여자는 기차를 타러 나간다. 순간 쇼핑백을 두고 온 것이 생각나 급히 음식점으로 돌아오지만 흑인도 쇼핑백도 보이지 않는다. 당황한 여자는 음식점 여기저기를 훑어보는데 아까 앉았던 그 옆 테이블에 손도 대지 않은 샐러드 접시가 놓여있고 의자 위에 쇼핑백이 있었다. 자리를 잘못 앉은 여자는 흑인의 음식을 빼앗아 먹었던 것이었다. 그래도 흑인은 화를 내지 않고 음식을 여자와 나누어 먹었고 커피까지 대접했던 것이다.

지금까지 이야기는 아카데미 단편 영화상을 수상하였던 The Lunch Date의 줄거리다. 단편영화 The Lunch Date는 1991년에 제작된 약 10분 길이의 흑백영화로 점심시간에 벌어진 일화를 다루고 있다. 인터넷에서 검색해보면 다양하게 리메이크된 The Lunch Date라는 단편영화들이 나온다. The Lunch Date가 전해주는 주제의 이미지가 오늘의 사회에게 던져주는 의미가 크고 공감을 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통상 영화에 등장하는 흑인의 이미지는 부정적인 역할로 보여 진다. 이 영화에서도 그런 선입관이 있어서 그런지 흑인의 마지막 행동을 보기 전까지는 여자에게 무슨 나쁜 일이 벌어질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흑인은 치매에 걸린 것 같은 여자에게 음식을 빼앗기면서도 화를 내지 않고 체하지 말라고 커피까지 대접했다.

순간 나의 선입관을 반성하고 흑인의 따뜻한 마음에 감동을 받는다. 그 순간 나 같았으면 음식을 나누어 주기는커녕 미친 여자라고 화를 냈을 것이다. 여자도 자기가 자리를 잘못 잡은 것은 전혀 생각지 않고 누군가 내 자리에서 내 음식을 빼앗아 먹는다고 생각을 하면 더구나 그 사람이 흑인이라는 생각에 엄청 화부터 냈을 것이다.

이 영화를 만든 감독의 마음을 알 것 같다. 마지막 장면에서 여자가 오해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그 짧은 순간에 전해지는 강렬한 느낌이 바로 그것이었다. 단순히 오해라고 넘겨버리기 쉬운 사건을 영화를 통해 이 사회에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다.

영화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참으로 넉넉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다. 오늘의 세상은 조급하고 나만 알고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없다. 모든 것을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고 누군가의 실수에 관대하지도 않고 화부터 내고 따지고 본다. 자신이 잘못했어도 반성할 줄도 모르고 사과하기를 주저한다. 이 단편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자신의 잘못을 알아차린 허탈해하는 여자의 모습만 보이고 흑인은 보이지 않아 여인의 마지막 사과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사과했을 것이다. 세상을 살아오면서 나도 모르게 저 여인처럼 착각했던 일들이 많았다. 편견, 선입관, 인종차별, 오해, 부유함과 빈곤 등등 참 여러 가지 단어를 떠오르게 만든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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