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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프랑스 문학가 에밀 졸라의 참된 용기박환수(조선이공대 교수)

지난 4. 26일 공관병 갑질 물의를 일으켜 세간의 분노를 산 박찬주(60) 전 육군대장이 수원지검으로부터 갑질 행위에 대해서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박 대장의 갑질 물의는 민간단체인 군 인권센터가 사건을 만들고 언론들은 이 사건으로 박 대장뿐만 아니라 군 전체를 부패의 집단으로 내 몰았다. 군의 명예인 장군을 영창에 가두고 갖은 방법으로 치욕스런 모습을 언론에게 보여주려고 시도했지만 박 대장은 끝까지 군의 명예와 자존심을 지켜낸 사람이었다. 법원 판결에 명예를 회복한 박 대장은 전역행사도 없이 4. 30일 후배들에게 서면으로 뒤 늦은 전역 인사를 했다. 무죄를 알린다고 떨어진 명예가 회복되는 것도 아니지만 그렇게 몰아치던 언론은 판결 결과를 알리는 데는 소극적이다.

이 사건을 보면서 에밀졸라의 목로주점을 읽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아버지의 폭행에 견디다 못해 집을 나와 한 남자와 결혼을 했던 제르베즈, 행복하게 살고 싶었고 열심히 살고 싶었던 그녀를 사회는 처절한 삶을 살게 만들고 알콜 중독으로 세상을 마감하게 만들었다. 목로주점은 그곳에 놓인 알코올 증류기 때문에 인간의 삶이 망가지고 파멸의 길로 타락해 가는 인간들의 이야기다.

그런 에밀졸라가 한 억울한 청년 장교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 자신의 명성을 저버리고 온갖 박해를 받아가며 나머지 생의 모든 것을 바친 적이 있었다. 그 사건의 전말은 이런 것이었다.
독일과의 전쟁에서 패한 프랑스는 독일과는 앙숙관계였는데 독일대사관에서 프랑스 군사비밀을 적은 편지가 발견되었다. 정황상 범인은 프랑스 군인이 확실한 데 프랑스 군 본부는 유태계 알프레드 드레퓌스(Alfred Dreyfus)대위에게 죄를 뒤집어 씌웠다. 프랑스 군대의 체면을 지키기 위해 제대로 조사도 하지 않고 드레퓌스 대위를 단지 유태인이라는 이유로 간첩으로 내몰았던 것이다.

언론은 날마다 드레퓌스를 헐뜯는 기사를 썼고, 그것을 읽은 모든 프랑스 시민들은 의심 없이 드레퓌스를 간첩으로 믿었고 유태인을 미워하는 반 유태인의 감정이 극에 달했다. 결국 드레퓌스 대위는 종신형을 선고받고 아프리카의 외딴 섬에 있는 감옥으로 수감되어 가족과 생이별을 해야 했다.

몇 년 후 진범이 잡혔지만 프랑스 군은 진범을 무죄 석방하고 진범을 고발한 사람을 아프리카로 추방하여 사건을 은폐시켰다. 드레퓌스 대위의 형(兄)으로부터 사건의 진상을 전해들은 에밀졸라는 ‘나는 고발한다.’라는 제목으로 프랑스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냈고 언론사 하나가 이를 보도하자 프랑스 사회는 요동쳤다. ‘에밀졸라는 매국노다. 에밀졸라를 죽여라.’ 
진실과 정의를 외치던 에밀졸라는 프랑스 군의 명예를 훼손한 죄로 재판에 회부되었고 징역형과 벌금형을 선고받았지만 드레퓌스 대위는 무죄로 풀려났다.
법정에서도 에밀졸라는 ‘목숨과 명예를 걸고, 내가 쓴 작품을 걸고 맹세하건데 드레퓌스는 죄가 없다. 다만 의회, 정부, 신문, 신문이 만들어 낸 여론이 정의와 진실을 외면하고 있다.’라고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서민으로 밑바닥 인생을 살았던 에밀졸라는 명작으로 명성을 얻었으나 그런 명예를 버리고 정의의 편에 선 그의 용기가 부럽기도 하고 그런 에밀졸라가 우리 사회에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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