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기획ㆍ특집 기획
담양뉴스 기획연재Ⅱ(소설)/대 바람소리(1화)문순태 작가

담양뉴스는 창간 3주년기념 『기획연재Ⅱ/소설』로 이번호부터 우리 고장이 낳은 저명작가 문순태 님의 단편소설 ‘대 바람소리’를 연재합니다.
소설 ‘대 바람소리’는 황혼에 접어든 노년의 한 여성이 담양 딸네집에 와 생활하며 죽녹원, 관방제림에서의 우연한 만남과 일상에서 새롭게 느껴가는 과거와 현재 자신의 삶에 대한 회한을 독백처럼 전개해가는 소설입니다. / 편집자 주.

81세의 오동례 할머니가 딸의 화장대 앞에 앉아서 화장을 한다. 나이를 밝히는 것도, 할머니 소리를 듣는 것도 좋아하지 않으니까 그냥 오동례 여사라고 하자. 오동례 여사의 화장은 누가 봐도 너무 서투르다. 그녀는 팔십 평생에 화장대 앞에 앉아본 기억이 별로 없다. 그러니 화장이 서투를 수밖에. 기실 오동례 여사는 뙤약볕에 앉아서 호미로 자갈밭을 매고 화장실에 걸레질하는 것 외에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젊어서는 시골에서 허리가 휘도록 농사일을 했고, 도시로 나온 후부터는 손바닥에 옹이가 박히도록 버스 터미널의 화장실에 걸레질을 하며 살아왔으니까, 화장에 서투른 것은 당연할지 모른다. 그동안 화장이라는 것은 모르고 살아온 그녀였다.   
 
그녀는 주름이 짜글짜글한 이마와 눈 꼬리 주변에 파운데이션을 흙 돌집 벽에 회칠을 하듯, 뭉떵뭉떵 처바르고 있다. 두껍게 바르면 시간이 지난 다음에 파운데이션이 뭉쳐서 주름이 도드라진다는 것을 알 턱이 없다. 숱이 적은 눈썹을 살리기 위해서는 바로 그리지 않고 ,아이세도우 봉에 짙은 갈색을 묻혀 눈썹 모양을 잡는 다음에 연필로 그려야 한다는 것도 물론 모르고 있다. 그냥 화장품을 투덕투덕 처바르고 눈썹을 짙게 그리는 것이 좋은 것으로만 알고 있으니까.  

“아니, 엄마 뭣하세요? ”
  출근한줄 만 알았던 정애가 방문을 벌컥 열고 들어서자, 오동례 여사는 도둑질하다 들킨 것처럼 머쓱해진 얼굴로 딸을 올려다본다. 정애는 출근하는 척 차를 몰고 집을 나갔다가 마을 회관 앞에 주차시켜놓고 슬그머니 다시 돌아온 거였다. 정애는 요즈막 어머니의 전 같지 않은 행동에, 혹시 치매가 아닌가하여 은근히 걱정을 하고 있는 터였다. 일주일 전쯤, 몰래 미장원에 가서 염색을 한 것부터가 수상쩍었지만 연유를 따지고 싶지는 않았다. 앞집 아주머니의 이야기로는 어머니가 날마다 오전 10시쯤이면 짙은 화장에 옷단장을 하고 외출을 한다는 것이었다.   

“엄마가 화장하는 거 보면 꼭 화장실 걸레질하는 거 같다니까. 아니 콩밭에 호미질 하는 것 같은가. 화장은 그렇게 힘들여서 빨리하는 게 아녀. 그리고 엄마처럼 처진 눈 꼬리는 아이라인을 그릴 때 중간부분부터 서서히 위로 올려 빼주어야 해요. 노인들 얼굴은 생기가 없으니까 복숭아 색으로 볼터치를 해주면 좋고.”
 정애는 전에 없던 능청을 떨며 어머니가 쑥스러워하는 것을 덜어주려고 부러 새살거렸다. 
“내가 해줄까? ”
“냅둬. 여태 출근 안 허고 왜 꾸물거려.”

 딸의 방에 들어와서 화장을 하다가 들킨 오동례 여사가 평소 그녀답지 않게 소리를 버럭 내질렀다. 그녀는 화장하는 모습을 딸에게 보여주고 싶지가 않았다. 오래 전, 버스 터미널 화장실에서 걸레질을 하고 있는데 학교에서 파하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정애가 불쑥 나타났을 때처럼 민망했기 때문이다. 남정네들이 개미떼처럼 들락거리는 화장실에서 청소하는 자신의 모습을 딸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었다. 그러나 정애는 그런 어머니를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고 하교 길에 수시로 어머니를 찾아오곤 했었다.

“엄마, 요새 갑자기 웬 화장이세요? 그동안 통 안했잖아.”
정애는 요 며칠 어머니가 난데없이 화장을 하는 연유가 무척 궁금했다. 정애는 지난날 어머니가 화장하는 것을 본 적이 별로 없었다. 어머니는 화장실 청소 하러 갈 때는 마치 밭에 일하러 갈 때처럼 일부러 부스스한 머리에, 낡고 칙칙한 옷을 입어 휘주근한 모습이었다. 어머니 몸에서 한 번도 화장품 냄새가 나는 것을 맡지 못했다.  
“냉큼 문 닫고 출근이나 혀.”

오동례 여사는 화장을 멈추고 손사래를 쳐댔다. 정애는 연신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떠밀리듯 어쩔 수 없이 몸을 돌려세웠다. 도대체 늙은 어머니가 화장에 몸단장을 하고 날마다 어디를 가시는지 궁금했다. 혼자 종일 집에 있기가 심심하니까 가까운 노인정에라도 나가시는 것일까. 그렇다면 안심이다. 아직 기억력도 좋고 말과 행동이 분명한 것을 보면 치매는 아닌 듯싶었다. 정애는 언제고 어머니의 뒤를 밟아볼 생각을 하며 출근을 서둘렀다.  
 
* 이 소설은 담양 죽녹원과 관방제를 무대로 쓴 작품으로, 2006년 ‘문학사상’에 발표한 것을 작가의 양해를 얻어 재수록 합니다. 

작가 문순태 프로필

문순태 작가는 1939년생으로 담양군 남면 구산리가 고향마을 이다.
전남일보 편집국장, 광주대 교수 등을 지냈으며 담양에서 (사)담양대나무축제 추진위원회 이사장, 송순문학상 운영위원장을 맡아 봉사했다. 광주에서는 광주문화재단 이사, 전.조선대 재단이사, 전.아시아문화전당 조성위원회 부위원장, 전.광주국제영화제 조직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문순태 작가는 현대문학, 한국문학, 소설문학 등 다수의 문예지를 통해 문단에 데뷔 및 동인으로 활동했으며 ‘고향으로 가는 바람’ ‘철쭉제’ ‘된장’ ‘울타리’ ‘남도의 빛’ ‘백제의 미소’ ‘흑산도갈매기’ ‘그들의 새벽’ ‘41년생 소년’ ‘도리화가’ ‘말하는 징소리’ ‘마지막 징소리’ ‘뿌리깊은 나무’ ‘난초의 죽음' '어머니의 땅’ 등 수백편의 중,단편 및 장편소설을 집필했다.
담양으로 정착하던 해인 지난 2006년에 소설집 ‘울타리’와 에세이집 ‘꿈’을 발간했으며 광주대 정년퇴임 기념작으로 ‘문순태의 소설세계 고향의 한의 미학’을 출간했다.

세간에 가장 잘 알려진 작품으로는 장편 ‘걸어서 하늘까지’ 와 연작장편 ‘징소리’, 그리고 장편 ‘타오르는 강(9권)’, 소설집 ‘생오지 뜸부기’ 와 에세이집 ‘생오지 가는 길’ 등 수십편이 있다. 한국소설문학작품상 문학세계작가상, 이상문학상 특별상, 요산문학상, 채만식문학상, 한국카톨릭문학상, 한림문학상, 전남도문화상, 광주광역시문화예술상 등을 수상했다. 문화관광부, ‘2015년도 우수문학도서’ 선정 및 제3회 송순문학상 ‘대상’을 받았다.

한편 본지는 창간기념으로 지난 2호부터 문순태 작가의 '소쇄원에서 꿈을 꾸다'를 총 93회에 걸쳐 신문에 연재했다. / 장광호 국장

담양뉴스  webmaster@dnnews.co.kr

<저작권자 © 담양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담양뉴스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