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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뉴스 기획연재Ⅱ(소설)/대 바람소리(2화)문순태 작가

소설/대 바람 소리(2화)

오동례 여사는 딸이 방에서 나간 다음에야 다시 파운데이션을 듬뿍 찍어 얼굴에 덕지덕지 바른다. 손가락 끝이 까끌까끌하게 느껴진다. 두 손바닥으로 얼굴을 문지를 때마다 껍질이 벗겨지는 것처럼 따끔거린다. 젊어서는 추월산 바라보며 밭에서 호미질을 하고 광주로 나가서는 걸레 자루만 잡고 살아왔으니 손에 옹이가 박힐 만도 했다. 그녀는 얼굴을 문지르다 말고 눈을 크게 뜨고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보며 주춤 놀랐다. 거울 속에 자신의 얼굴이 다른 모습으로 비쳤다. 세월의 흐름과 함께 여러 모습으로 변하는 얼굴 중에서, 시집온 열아홉 살 새색시 시절과, 남편이 세상을 뜨고 어린 정애를 데리고 밭뙈기를 일구며 억척스럽게 살았던 때, 그리고 정애가 여학교에 들어가자 도시로 나와, 터미널 화장실 청소부 시절의 모습이 가장 선명하게 비쳤다. 지나온 세월의 마디마다에 얼굴 모습이 흉물스럽게 변했다. 그녀는 문득문득 자신의 얼굴이, 한 때 삶의 터전이 되어온 남편 고향 당양 추월산 자락의 척박한 자갈밭이나, 흙부스러기와 가래침과 담배꽁초가 널려있는 터미널 화장실 바닥 같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자갈밭은 아무리 호미질을 해도 흙이 고르게 파헤쳐지지 않았고, 힘들여 걸레질을 해도 화장실 바닥은 깨끗해지지 않았다.
 
추월산 아래 방아재로 시집간 새색시 시절 오동례의 얼굴은 동그란 접시꽃처럼 탐스럽고 예쁘다고들 했다. 그러나 서른두 살에 과부가 된 홀시어머니로부터 모진 구박 받아가면서 산삼을 캐겠다고 집을 나간 남편을 기다리느라, 풍랑에 씻겨 마모되듯 얼굴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눈이 빠지게 기다리던 남편은 열흘이나 한 달 만에야 돌아와서는 밤낮을 주막에서 살다시피 했다. 술에 절어 집에 돌아온 날은 괜히 까탈을 부리면서 겨릅처럼 살 한 점 없이 가벼워진 오동례를 도리깨질 해대듯 두들겨 패곤 했다. 다시 지리산으로 떠난 후에야 남편의 매질에서 벗어날 수가 있었다.

결혼한 지 오년 만에 남편이 세상을 뜨게 되자, 기다림 마저 없어진 오동례의 삶은 바다 위에 부유하는 쓰레기처럼 파도에 이리저리 밀리기 시작했다. 시어머니의 구박은 견딜 수 없을 만큼 심해졌다. 팔자 사나운 며느리가 들어와서 자식을 잡아먹었다고 악담을 퍼부어댔다. 유일한 피난처는 추월산 골짜기 밤나무가 들어찬  산자락 비탈진 자갈밭이었다. 봄부터 늦가을까지 그 밭에서 콩을 가꾸고 거두며 서러움을 잠재웠다. 그 시절 그녀의 얼굴은 고난과 심술이 덕지덕지 배인 세모꼴이 되었다.

시어머니가 죽자 오동례는 정애를 들쳐 업고, 지긋지긋한 추월산 아래서 도망치듯 광주로 나와, 버스 기사를 하고 있는 오빠한테 매달렸다. 오빠는 남자 화장실 청소를 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고 그녀는 남자 화장실이 아니라, 더 한 곳이라도 좋다고 했다. 오빠 도움으로 터미널 화장실 청소부가 되어 간신히 모녀 목줄 지탱할 수가 있었다. 그녀는 33년 동안 화장실 청소를 해서 정애를 대학원까지 보내고 코딱지만 한 아파트도 장만했다. 구린내 지린내, 사람에게서 나는 온갖 역겨운 냄새 맡아가면서, 온몸이 물기 젖은 걸레처럼 질컥하게 살았지만 방아재에서보다 신간은 편했다. 화장실에서 똥 묻은 휴지를 치우고 오줌 싸질러대는 사내들 옆에서, 바닥에 눈 처박고 걸레질을 하면서도, 예쁘고 공부 잘하는 정애를 생각하면 온갖 더러움도 사내들의 칙칙하고 음습한 눈길도 얼마든지 참아낼 수 있었다. 오동례는 가슴에 딸에 대한 꿈을 심고 얼굴에는 철판을 깔고 살았다. 그 무렵 그녀의 얼굴은 불에 달구어지고 쇠망치질에 납작하게 펴진 네모꼴이 되었다. 동그라미 얼굴의 인생이 고통 속의 기다림이었다면 세모꼴은 절망과 포기였으며 네모꼴은 인내와 꿈이었다.

 오동례 여사는 거울에서 빠져나와 다시 화장을 서둘렀다. 그녀는 화장을 끝내고 자신의 방으로 돌아와, 입고 있던 헐렁한 밤색 고무줄 바지와 낡은 쥐색 스웨터를 벗고 장롱 속에서 외출복을 꺼냈다. 한 벌 밖에 없는 베이지색 투 피스였다. 20년 전, 회갑 기념으로 딸과 같이 일본여행을 갈 때 맞춰 입은 옷이다. 그녀는 일본 여행에서 돌아온 후 한 번도 이 옷을 다시 입은 적이 없었다. 양장을 차려입고 밖에 나갈 일이 없어, 냄새 나도록 장롱 속에 처박아 두었다가 최근에 다시 꺼내 입게 된 것이다. 기장이 짧은 듯하고 몸집이 불어 품이 맞지 않는데다 색깔도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골라 입을만한 다른 옷이 없었다. 그렇다고 치렁치렁 한복을 입고 싶지는 않았다. 오동례 여사는 딸을 졸라 좀 화려한 원피스를 한 벌 사달라고 해야겠다고 마음을 다독이며 오래된 베이지색 투피스를 입었다. 옷매무새를 고치고 나서 시계를 보니 어느새 10시가 다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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