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기획ㆍ특집 특집
담양천년 특별기획 Ⅳ/ 추억의 우리동네(1)-'차부동네'추억의 우리동네 ‘차부동네’

담양역, 버스터미널, 죽세공예센터, 농촌지도소, 산림조합
담양교육청, 담양중, 담양종합고, 담양성당, 
여인숙, 식당, 양복점, 양장점, 전파사, 인쇄소, 문구점 등 즐비
담양읍 교통과 상업은 물론 교육과 산업의 중심지로 자리매김

담양뉴스는 '2018 담양천년 특별기획'으로 <담양의 인물> <담양의 마을탐방> <추억의 우리동네> <담양의 근대건축물> <담양, 꼭 알아야할 100가지> 등 '담양 알기' 시리즈를 게재중입니다. 이번호에서는 <추억의 우리동네> 편을 게재합니다.
<추억의 우리동네> 편에서는 우리가 나고 자란 고향의 동네에 얽힌 사연과 추억들을 되새김 하면서 그시절 이야기와 기념이 될 만한 건물들을 기록으로, 또 미래유산으로 남기기 위해 소개하는 기획특집입니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군민여러분이 살던 동네와 관련한 추억거리와 들려주고픈 이야기, 간직해야 할 동네의 유산이 있다면 담양뉴스에 제보해 주시기 바랍니다.)
/ 편집자 주

담양버스터미널 일원 담양읍 천변리와 지침리를 아우르는 ‘차부마을’은 버스터미널이 이전해 온 이후 읍내에서 가장 발전이 빠른 동네로 자리잡아 갔으나 마을유래와 관련한 마땅한 동네 이름이 없다.
다만 1970년대 후반쯤 담양 공용버스터미널이 이곳으로 이전해 와 사람들이 ‘차부’ 가 새로 생긴 동네라는 의미로 ‘차부동네’라 불리기도 했다.(참고 : 차부는 버스정류장을 지칭하던 말로 기억된다.)

차부동네 중에서도 구.교육청이 있던 구역은 특별히 ‘또랑동네’ 라는 이름으로 부르기도 했다. 또랑동네는 구.교육청 앞과 옆으로 비교적 건너기 쉽지 않은 큰 도랑이 흐르고 있어서 60-70년대에는 물고기 잡고 목욕도 하는 장소로 자주 이용되기도 했었기 때문이다.

이와함께 차부동네는 차부, 즉 버스터미널과 담양중학교를 중심으로 동산병원 쪽(구.역전쪽) 구역을 ‘아랫동네’ 라 불렀고, 천주교 담양성당 쪽 마을을 ‘윗동네’ 라고 불렀다. 또 담양문화회관(구.죽세공예진흥센터)를 지나 래인보우아파트 쪽(구.유진창고) 옹기종기 모여있던 집들은  ‘또랑건너 미리산’ 이라고 불렀다.
차부동네는 이처럼 버스터미널을 중심으로 한 또랑동네와 아랫동네, 윗동네로 이뤄진 마을이다.

우리나라가 근대화에 눈을 뜨던 시기, 대략 1970년대 전후로 거슬러 올라가면, 예나 지금이나  차부동네는 담양읍의 중심지로써 교통은 물론 교육과 산업, 소비의 중심지 역할을 했던 동네였음을 알 수 있다.

우선 일제강점기엔 담양역이 있었던데다 근대화 시기에 옮겨 온 담양공용버스터미널이 있어서 교통과 상업의 중심지 였으며, 또 담양교육청을 비롯 담양중학교, 담양종합고등학교가 자리잡은 교육의 중심지 였을 뿐 아니라, 담양군죽세공예진흥센터, 담양군농촌지도소, 담양군산림조합이 이 동네에 들어서 농업과 산업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이외에도 동네에는 여인숙, 선술집, 식당, 양복점, 이발소, 양장점, 전파사, 잡화점, 수퍼, 빵집, 쌀집, 정육점, 농방, 주유소, 문방구, 인쇄소 등 당시 도회지에서나 볼 수 있었던 거의 모든 업종의 상점들이 도로를 따라 들어서 있어서 실로 담양읍 상업의 중심지였다.
이는 모두 과거에 담양역사가 이 동네에 있었던 것과 더불어 담양버스터미널, 그리고 학교와 공공기관들이 다수 이 동네에 있었던 때문이다.

●담양교육청
담양교육청은 지침리 133번지에 있던 교육기관으로 1967년 4월에 지침리에 청사신축 기공식을 갖고 2년 5개월 공사 끝에 1969년 9월1일 준공했다. 연건평 208평에 2층 규모로 지어져 이후 40여년 가까이 담양군의 교육업무를 지원하다 현재는 강쟁리 신성마을로 이전했다.
구.담양교육청은 당시의 자리에 건물이 거의 원형상태로 남아있으며 현재는 원룸과 사무실 공간으로 사용중이다.

 ●담양군농촌지도소(담양죽세공예진흥센터)
담양군농촌지도소는 당초 담양읍 만성리 관어공원내 군립테니스장 옆에 있었으나 1978년 5월, 지침리 현.담양문화회관 자리에 있던 구.담양군죽세공예진흥센터를 인수하고 개조, 청사를 이전하고 업무를 보았다.
이후 농업기술센터로 개칭하고 현.담양경찰서 자리로 옮겼다가 현재는 대나무박물관 옆 천변리 396-4번지로 이전했다. 구.담양군농촌지도소 자리는 현재 담양문화회관이 들어서 있다.

●담양역
담양역은 광주-담양간  20.9km 기차 운행을 목적으로 1918년 12월에 착공해 1922년 12월에 완공한 후 개통했다. 개통 당시 1일 6회 왕복으로 철도가 운영됐고 담양-광주간 철도운임은 어른 35전, 어린이 및 학생은 15전, 통학생은 1개월에 5월 20전 이었다.
하지만 일제의 태평양전쟁으로 광주-담양간 철도는 1944년 10월 31일까지 모두 철거되고 말았다. 그 이유는 전쟁에 쓰일 철 부족으로 철로를 뜯어간 것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담양역은 이후 플랫폼만 남긴 채 역사건물은 철거됐으며 그 자리에 대한통운이 들어서 화물운송업을 대행하다가 몇 년전 이마저 헐리고 현재는 통운로타리로 변모했다.
담양역 바로 앞에는 역전여인숙을 비롯한 몇곳의 상점과 가게들이 1970년대말까지 있었으나 도로확장으로 철거되고 현재는 길 건너편에 역전여인숙 간판을 달고있던 건물이 남아있다.

●담양성당
담양성당은 천변리 174번지 현재의 위치에 자리하고 있다. 당초에는 양각리에서 양각공소가 설립된 후 1948년 광주 북동성당의 도움으로 현위치의 성당 부지를 마련했다. 광주대교구 담양공소로 포교를 시작했으며 1959년 현재의 위치에 성당을 짓고 봉헌식을 가졌다. 
지금은 옛 성당 본당건물만 남아있고 수녀들이 사용하던 숙사와 관리동은 철거되고 새 본당 건물이 들어섰다.

한편, 여름철이면 냉수마찰과 목욕을 즐겨하던 ‘양샘’ 또는 ‘양시암’(좋은 물이 나는 샘)은 낮에는 남자들의 놀이터로, 밤에는 여자들의 목욕장소로 애용되면서 이러저런 추억거리를 많이 만들어냈던 곳이었으나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아쉬움을 더해준다.
‘양샘’은 현재 담양문화회관 건너편 ‘1박2일 포장마차’ 자리에 있었으며, 담양읍에 상수도가 보급된 이후 물 부족을 우려해 양샘의 우물을 매립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시절 차부동네는 이처럼 담양의 교육과 산업, 교통과 상업의 중심지로써 활발한 발전을 해왔던 탓에 다른 동네보다 훨씬 빨리 현대화의 물결에 합류하게 돼 차부마을의 옛 추억의 건물들은 거의 사라지고 현재는 일부만 남아있다. / 장광호 국장

장광호 편집국장  dnnews@hanmail.net

<저작권자 © 담양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장광호 편집국장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