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대 바람 소리(5화)

그날 저녁 ,오동례 여사는 몸져눕고 말았다. 사지에 힘이 빠지고 몸과 마음이 천길 물길 속으로 납작하게 가라앉은 기분이었다. 그러면서도 가슴에서는 불잉걸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정신마저 흐릿해졌다. 혼몽한 속에서도 노랑점퍼 모습만은 선명하게 떠올랐다. 눈을 감을수록 얼굴 윤곽이 더욱 뚜렷하게 보였다. 밥 염이 없어 한 숟갈도 뜨지 않았다. 밤늦게 퇴근하여 집에 온 딸 정애가 어머니가 누워 있는 것을 보더니 당장 병원에 가자고 성화였다. 오동례 여사는 병원에 가기 싫다고 버텼다. 어디가 아픈 거냐고 물어도 연신 고개만 가로저었다. 딱 집어 어디가 아픈 것인지 그녀 자신도 알 수가 없었다.
 밤새내 몸을 뒤척이며 앓았던 오동례 여사는 희번하게 날이 밝아 와서야 가까스로 몸을 추스르고 일어났다.

“엄마, 일어나지 말고 누워계셔요. 많이 아프면 전화하고.”
정애가 말했지만 어머니는 듣지 않았다. 오동례 여사는 우유 반 컵으로 아침을 때우고 딸이 출근하기를 기다렸다가 화장대 앞에 앉아 화장을 시작했다. 화장을 끝내고 베이지색 투피스로 갈아입었다. 정애는 마을회관 앞에 차를 세우고 앉아서 어머니가 집에서 나오기를 기다렸다. 오늘은 기어코 어머니의 뒤를 밟아볼 생각이었다. 예상했던 대로 어머니는 서툰 화장에 한껏 몸단장을 하고 집에서 나왔다. 정애는 뒤를 밟기 시작했다. 몸이 편치 않은 듯 걸음걸이가 불안했다. 마치 보이지 않은 밧줄에 묶여 끌려가고 있는 것처럼 비척거리면서 빠른 걸음으로 위태롭게 큰 길을 건너 담양천 쪽으로 꺾어들더니 잠시 주춤거렸다. 노랑 옷에 노랑 모자를 쓴 한 무리의 유치원 아이들이 여자 선생의 호루라기 소리에 맞춰 하나 둘을 외치며 지나갔다. 병아리들이 어미 닭을 따라 봄나들이 하는 것 같다. 빨간 자동차가 부옇게 먼지를 날리며 미친 듯 달려오다가 아이들을 보자 끼익 소리를 내며 급정거했다. 아이들은 전혀 놀라지 않았다. 놀란 것은 오히려 정애였다. 오동례 여사는 아이들의 꽁무니에 바짝 붙어서 여전히 위태로운 걸음으로 걸었다. 정애의 눈에, 어머니가 바람만 좀 거칠게 불어도 검불처럼 허공으로 날려 가버릴 것처럼 가벼워 보였다.
 
정애는 잠시도 어머니를 놓치지 않고 뒤를 밟았다. 어머니는 관방제에 이르자 누구인가를 찾는 듯 사방을 두리번거리면서 숲이 끝나는 곳까지 바쁘게 내려갔다가 다시 기진한 걸음걸이로 천천히 올라왔다. 곧 쓰러질 것만 같았다. 정애는 어머니가 비척거리다가 벤치에 앉는 것을 보고서야 안도했다. 도대체 어머니는 성하지 않은 몸으로 관방제에서 누구를 찾고 있는 것일까. 당장 달려가서 어머니를 붙들고 누구를 찾느냐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참았다. 정애가 알고 있기에는 담양에는 어머니 친구가 한 분도 없었다. 평소에 어머니는 외출도 하지 않고 집 안 일을 하고 화초 가꾸는 일로 시간을 보냈다. 어머니는 늘 혼자 있기를 좋아했다. 여생을 딸과 함께 살면서 뒷바라지 하는 것을 행복으로 여기며 살았다. 외동딸 정애를 시집보낸 후 광주에서 혼자 살던 어머니는 몇 년 전부터 천식으로 고생을 했다. 정애는 7년 전 남편과 이혼하고 남매와 함께 서울에서 살았는데, 자식들이 미국으로 이민 간 아버지를 따라 떠나자, 이곳 담양에 한지 공예 공방을 마련해서 내려오면서부터 어머니를 모셔왔다. 어머니는 담양으로 내려온 후 천식이 나았고 기력도 한결 좋아졌다. 정애 역시 어머니와 함께 살면서 몸도 마음도 건강해졌다. 하루하루 허공을 딛고 서 있는 것처럼 늘 허전한 마음이었는데 어머니가 옆에 있으니 외롭지도 않고 의지가 되어 좋았다.     
   
* 이 소설은 담양 죽녹원과 관방제를 무대로 쓴 작품으로, 2006년 ‘문학사상’에 발표한 것을 작가의 양해를 얻어 재수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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