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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뉴스 창간기념 기획연재(소설)/소쇄원에서 꿈을 꾸다(15)

“그 집안과 혼인이 성사된다면야 우리 가문으로서는 큰 광영이 아니냐.”
 양산보 아버지 창암공은 한 집안의 성쇠지리는 자식들의 출사가 첫째요, 그 다음이 혼사라고 생각했다. 아버지가 두 아들과 함께 영변으로 이주한 후 어머니를 모시고 창암촌에 터를 닦은 창암공은 면화를 제배하여 어느 정도 가산은 넉넉해졌으나, 출사한 피붙이 하나 없는 것을 한탄해왔다. 다행히 산보가 영민하여 장차 벼슬길에 나가 집안을 일으킬 것으로 크게 기대를 했으나, 기묘사화로 정암이 세상을 뜨자 크게 낙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해서 생각해낸 것이 석저촌 김 진사 댁과 혼사를 맺는 일이었다. 김 진사 댁과 혼사만 이루어진다면 한미한 그의 가문이 흥복을 찾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 것이다.
 
김후가 석저촌으로 옮겨온 것은 그의 아버지 때였다. 김문손이 노씨 처가 마을인 이곳으로 이주해 오기 전까지만 해도 석저촌은 보잘 것 없는 작은 촌락에 지나지 않았다. 김문손이 이곳에 와서, 무등산자락에 논밭을 일구고 석보평 들 넓은 땅을 구입하였다. 그는 증암천에 보를 만들어 가뭄 걱정 없이 석보평에서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했다. 석저촌 광산김씨 일가는 이곳의 토지를 이용하여 지금의 부를 이루게 된 것이다. 김문손은 석저촌에서 두 아들을 두었는데 둘째아들 감이 문과에 급제하였다. 감의 아들이 서하당과 식영정을 지은 김성원으로, 훗날 임억령의 사위가 되었다. 감의 둘째 딸은 고경명의 장인인 김백균에게 출가했다. 그런가하면 김문손의 첫째인 김후는 11남매나 되는 많은 자녀를 두었는데 그의 둘째아들이 양산보와 친한 김윤제이고 창암공이 며느리감으로 생각하고 있는 윤덕은 장녀이다. 아버지 때 석저촌으로 이주해 온 광산김씨는 김 진사 대에 와서 크게 번창하여 근동에서는 명문가로 가세를 떨치게 되었다. 창암공으로서는 양산보가 김 진사 댁 사위만 된다면 창암촌 양씨 집안도 석저촌 광산김씨의 인맥을 기반으로 다시 융성해질 수 있으리라고 믿었다.

“며칠 기다렸다가 진사 댁에 정식으로 청혼서를 보낼 터이니 그리 알거라.”
아버지 말에 양산보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고 휭 하니 밖으로 나가 버렸다. 수박등을 내려와 증암천까지 무작정 걸었다. 그는 김윤제 동생 윤덕이가 마음에 들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나 지금의 처지로서는 혼인을 하고 싶지가 않았다. 쌍봉사 옆에 임시 안치되었던 스승을 고향 용인으로 운구하여 묘를 쓴 것이 얼마 되지도 않아, 그의 마음이 아직 비통에 젖어있는데 어찌 개인의 복락만을 위해 혼인을 한다는 말인가. 군사부일체라고, 스승도 어버이와 진배없거늘, 3년상도 지내지 않아서 혼인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양산보는 심란해진 마음을 달래기 위해 증암천 상류 물가에 앉아 있었다. 유둔재 아래 가암에서 흘러내려온 냇물은 제비내를 지나면서 그 흐름이 빨라졌다. 물 흐르는 모습에 정신을 팔고 있던 양산보는 바람이 불어오자 고개를 들어 무등산 동쪽 등성이를 바라보았다. 산과 냇물은 그만한 높이와 깊이로 변함없이 흐르는데 그의 마음은 텅 빈 듯 공허하기만 했다. 아버지한테 끌려 한양 길을 떠났을 때까지만 해도 그의 꿈은 창창했었는데 지금은 창공의 구름처럼 산산이 흩어지고 말았다. 심신이 늙어버리기라도 한 듯 꿈도 욕망도 사그라져버렸다. 저절로 한숨만 나왔다. 스승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으로 상심만 더 커졌다.

양산보는 한숨을 쏟으며 물 가 버드나무 밑에서 오리들이 떼를 지어 한가롭게 노닐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오리 떼가 자유롭게 노니는 모습을 바라보는 그의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흘렀다. 그 순간만은 세상사 허망함도 스승에 대한 그리움도 잊을 수 있었다. 오리들은 잠시 후 증암천에서 지석천의 조붓한 물줄기를 따라 올라가더니, 창암촌 뒷산 옹정봉에서 흘러내려오는 계류 입구 창암바위로 꺾어들었다. 창암바위는 양산보 아버지가 이곳에 터를 잡아 눌러 살게 되었을 때, 지석천 입구에 서있는 바위이다. 그는 바위 이름을 창암이라 하고, 마을은 창암촌, 자신의 호는 창암공이라 불렀다. 양산보는 오리떼를 따라 계류 안으로 들어섰다. 지석천 물은 하늘을 가린 왕대나무 숲 사이로 휘움하게 흘렀다. 계류 안으로 들어갈수록 양쪽에 오래된 소나무며 느티나무, 팽나무, 오동나무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어 햇살을 가려주었다. 오리떼를 따라 계류 깊숙이 들어가자 작은 웅덩이가 있고 물줄기가 쏟아져 내려 폭포를 만들었다. 물 떨어지는 소리가 마치 거문고 휘모리 가락처럼 들렸다. 돌확처럼 파인 조담 위로 노송이 누운 듯 어슷하게 서 있고 그 아래로 너럭바위가 펼쳐져 있었다. 너럭바위 위로 넉넉하게 물이 흘렀다. 대숲을 지나 산죽이 들어찬 언덕배기에 이르자 주변에 산죽나무며 단풍나무, 은행나무, 버드나무들이 에둘러 있고, 바깥세상과 완전히 차단되어 별세계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좁은 계곡을 휘돌고 소쿠라지며 흐르는 물소리와 대숲을 흔드는 바람소리, 여기저기서 낭자하게 우짖는 새소리만 가득했다. 사람의 때가 묻지 않아 ,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비로 쓸고 물을 뿌려놓은 듯 맑고 깨끗했다. 양산보는 오래된 오동나무가 서 있는 언덕배기에서 조심스럽게 계곡을 건너 더 높은 등성이 쪽으로 올라갔다. 비로소 계곡의 숲에서 벗어나자 하늘이 열리고 눈부신 햇살을 볼 수 있었다. 창암촌 위쪽 등성이에서 지석천을 내려다보니 나무에 둘러싸인 계곡의 경치가 오밀조밀하고 운치가 있어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질렀다.

 “아, 여기가 바로 무이구곡이 아닌가.”
양산보는 바위 등걸에 앉아 계곡의 경치에 취해 있었다.    
“아, 나도 여기에 무이정사를 지어 주희처럼 세상을 잊고 살았으면....”
양산보는 마음속으로 남송 때 중국 복건성 무이산 아홉 구비 계곡에 무이정사를 짓고 그곳에 은둔하면서 성리학 공부에 매진했던 주희를 생각했다.
 양산보는 지석천 계곡 속에 있다가 해질녘에야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내내 그의 머릿속에는 계곡의 물소리, 바람소리, 새소리로 가득했다. 계곡을 따라 낙하하고 소쿠라지며 흐르는 물이며 바람에 대숲 흔들리는 모습이 자꾸 눈에 밟혀왔다.
 그날 저녁 아버지가 양산보를 안채로 불렀다.
“조금 전에 매파가 왔다 갔다. 진사 댁에서 청혼서를 보내라는 기별이 왔다는구나. 내일 당장 청혼서를 보낼 터이니 그리 알아라.”
창암공은 기분이 좋아 술을 마셨는지 불콰해진 얼굴로 말했다. 양산보는 잠시 아무 말도 없었다. 그는 혼인을 서두르는 아버지의 속내를 알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아버지의 뜻을 거역할 생각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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