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인택(본지 기획위원)
  · 광주전남 문화재 위원
  · 前광주시립민속박물관 관장

담양은 자랑거리가 많은 고을이다. 가사문학의 산실, 무형문화재와 명인이 제일 많은 고장, 선비와 의병의 고장, 풍부한 먹거리, 영산강 삼백오십리의 발원지, 자연과 생태로 관광을 일궈낸 고장 등 전국적인 명성을 자랑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생태관광은 주목할 부분이다. 2005년에 완성한 죽녹원은 이제 15년이 지났고, 관방제림을 거닐며 메타세콰이어 길과 메타프로방스까지 이어지는 길은 일상에 지친 현대인들이 가장 떠나고 싶은 힐링공간이 되었고, 수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명소이다. 자연과 생태를 관광에 접목해 성공한 대표적인 경우이다. 이후 많은 지역에서 벤치마킹을 해갔다. 선각자들에 깊은 찬사를 올린다.
이는 전통을 기반으로 한 창조적 계승을 획기적 발상으로 수행한 결과이다. 원래 담양은 전남의 3백 3흑과 더불어 1청(대나무)의 고장으로 불렸다. 대나무는 쓰임새가 많은 자재로 고대로부터 사용되었으나 담양의 죽물은 400여 년 전 향교리의 참빗설이 전해지고 있고, 기록상으로는 1625년 중앙에서 부채장이 파견되었다고 적고 있으니 향교리의 참빗과 만성리의 부채에서 그 연원을 추측해볼 수 있다.

부채와 대바구니, 삿갓, 키, 죽석, 바구니 등 생활용품을 만들어 써왔던 담양인들은 채상(18세기), 낙죽(19세기) 등 세공품을 만들기 시작했고, 일제강점기를 통해서 대량생산체제를 구축하였으며, 해방이후에는 쟁반, 과일그릇, 핸드백, 브롯치, 침대 등 변화된 생활에 맞는 도구들을 만들어왔다. 담양인구의 30%인 7,000여 호에서 700여 종의 제품을 만들었다. 한마디로 담양은 대나무산업단지이자 대나무 제국이었던 셈이다.
여기에서 특이할만한 것은 전통적으로 죽물, 죽제품으로 불리던 대나무제품을 죽세공예품으로 발전시켰다는 것이다. 담양인의 예술적 감각과 정교한 손기술이 제품의 질을 한 단계 격상시킨 것이다. 또 담양의 죽물이 해외로 수출되었다는 사실이다. 일제강점기에는 1922년에 개통된 담양-광주 철도선을 통해 만주, 중국, 몽골까지 참빗이 수출되었다. 정식으로 서방으로 수출된 것은 1954년인데, 본격적으로 1960년대 후반부터 연간 350만점이 수출되었다. 또 하나 첨언하면 우송당 국채웅을 필두로 대나무 제품의 유통으로 큰 부자들이 나타났고, 정재계에 진출하여 담양발전에 기여하였던 것이다.
 
날로 번창하던 대나무산업은 프라스틱과 같은 대체 재료와 값싼 외국제품으로 인해 1970년대 후반부터 시들해지면서 동력이 약해졌다. 이제 극소수의 대나무 장인들만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다행인 것은 대나무축제, 대나무공예대전, 죽세공예진흥단지 조성, 대나무신산업화, 관광과의 접목 등 전통과 현대를 이어주는 각종 사업들이 새로운 활로개척을 위해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나무산업으로 활기를 띠었던 원도심의 상황은 대나무제국의 명성에 미치지 못함에 더하여 실망감을 준다. 중앙로와 시장통에는 온통 대나무 관련 시설, 회사, 상점들이 즐비했지만 현재 몇 개 남지 않은 점포에는 국적불명의 제품만 가득할 뿐 국내산은 쌀밥에 뉘가 되어 있다. 담양산업조합의 태동을 견인한 진소계(眞梳契) 비석은 어디에 있는지, 어떠한 상태로 있는지 일반인들은 관심없다. 일제강점기 대나무산업을 견인했던 담양산업조합, 1966년 1,000만원에 가까운 돈을 들여 세운 담양죽세공예센터, 해외수출을 많이 했던 유창공예사 등 땅과 건물의 역사를 새겨야 할 담양의 자존심이다.
또, 무정면 영천마을의 키, 칠전마을의 3합갱기, 내당마을의 이소쿠리, 봉산면 송산마을의 문발, 월산면 삼다마을의 말석, 회룡마을의 티갱기, 수북면 주평마을의 갱기, 금성면 원율마을의 죽피방석 등 면단위에서 이고지고 와서 죽세공품을 팔아 담양의 경제를 이끌었던 죽물시장 또한 마찬가지이다.
 
원도심은 담양의 발전, 대나무산업을 주도했던 담양의 핵이다. 대나무제품 생산량이 50%에 이르고, 죽세공품에 관련된 기관, 단체, 회사, 도매상 등이 포진해 있었고, 외지상인, 생산자, 소비자들이 넘쳐났던 곳이다. 원도심은 담양의 자긍심이고 발전의 원동력을 제공한 곳이다. 세계의 태권도인들이 국기원을 찾아 대한민국의 저력을 느끼듯이 외지인들이 담양인의 잠재력을 느낄 수 있는 곳은 원도심이다. 대나무 관련 유적지를 보존하고 복원하고 가꾸는 일은 후세를 위한 우리들의 사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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