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화
<신의 찻사발>

“이곳 날씨는 왜 이리 후줄근하나…….”
오윤겸은 목에서 흐르는, 소금기 눅눅한 땀을 닦았다. 팔월의 오사카에 내리쬐는 태양은 쇠여물통을 벌겋게 달구는 불꽃이었다. 그 덕택에 바닷물이 부글부글 끓었으니 포구가 온천탕에 잠긴 듯했다. 해시쯤(저녁 열시)일 법한데 밖은 여전히 떠들썩했다. 며칠 전부터 교토로 가는 길목인 요도의 다옥에 조선 사절단이 묶는다는 소문이 퍼져 잡상인에, 구경꾼에, 광대에…… 수천의 인파가 북적댔다고 들었다. 잠잠하고 고요한 한성에 비하면 오사카나 요도의 포구는 시전의 장터 같았다. 왜경으로 향하는 요도가와강을 따라 오르는데 양편으로 수십 리가 가옥과 행인으로 넘쳤다. 
이토록 흥청거리는 세상에 맛을 들이면 늘 잠잠한 조선 땅에서는 못 살 듯도 하구먼…….
일본의 실질적인 통치자인 쇼군(대장군)이 보내준 가마를 타고 숙소로 오는 동안 오윤겸은 내내 강우성이 일러준 계책을 떠올렸다.
“그래. 이 신의 찻사발인가 뭔가 하는 그릇을 쇼군의 측근에 상납하면 유시문을 줄 것이다…… 이 말이렸다.”
“예. 이 다완을 잘 아는, 여기 몽린이 분명하다고 하더이다.”

강우성은 다소곳이 앉아 있는 친구를 곁눈질로 가리키며 답했다. 몽린은16년 전에 강우성이 일본을 탈출할 때도, 10년 전쯤에 여우길이 쇄환사로 왔을 때도 귀국하려 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요(伊予) 오즈번의 영주인 와키자카 야스하루 곁에서 다방주로 있었기 때문이다. 왜인이 다두라 칭하는 그 직책은 다인의 우두머리라는 뜻인데 조선의 도승지와 비슷한 역할이다. 늘 영주 곁에 머물며 명령을 전달하고, 가신들의 의견을 모아 주군에게 전달하고, 면담이나 모임를 주선한다. 그런 일을 할 때 일본에서는 으레 말차(가루차)가 등장한다. 차를 가운데 두고 모여 대화하는 방식이다. 이때 차를 끓이고 나누어 주면서 일이 잘 되도록 유도하는 사람이 다두다. 때로는 외부의 첩보를 수집해 주군에게 보고하기도 하고 때로는 영주와 그 자녀를 교육시키는 역할도 맡기 때문에 영주가 절대적으로 신임하는 가신이 다두다.

일본의 영주들은 평생 글을 배우지 않는다. 칼과 창이 목숨을 지켜주기 때문에 서책 따위를 볼 필요가 없다. 그래서 몽린 같이 유식한 승려를 곁에 두고 서찰 등 문서를 작성하고 해석하는 역할을 맡긴다. 전쟁에서 적과의 협상과 회견에도 다두를 필수적으로 대동한다. 그러다 보니 다두는 거의 평생을 영주의 지근거리에 머물고 주인의 약점까지 꼬치꼬치 알게 된다. 그래서 한번 다두에 임명되면 평생 한 주군을 모셔야 한다. 

다두가 주군의 뜻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중신들도 다두를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 되레 굽신거리며 뭔가를 부탁하거나 뇌물을 주는 경우도 많다. 그러다 보면 다두의 영향력이 주군을 능가하는 경우마저 있다. 조선을 침략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다두였던 센 리큐가 그 예다. 일본 다도의 교조로 불리는 그는 나중에는 수십의 영주가 다도 스승으로 모시는 바람에 히데요시조차 함부로 대하기 어려운 존재가 됐다. 그가 신격화되는 것에 질투와 위협을 느낀 히데요시는 결국 그를 자결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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