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성자 귀농인

담양뉴스는 ‘주민참여보도’ 일환으로 본지 시민기자의 전지적 시점에서 취재한 【귀농일기】 코너를 신설해 지면에 보도합니다. 
‘귀농일기’는 도시에서 담양으로 귀농해 지역사회와 공동체에 적응하면서 농촌생활에 정착해가는 귀농인들의 일상을 기록해가는 지역밀착형 기사입니다.   

나는 아직 침대에서 꼼지락거리는 남편에게 조금 더 자라는 말을 남기고 농장으로 향한다. 귀농 5년째인 남편은 어제 저녁에 귀농귀촌협의회 모임에 참석해 늦게 돌아왔다. 모처럼 외출이고, 부회장이란 책임감 때문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남편을 기다린 탓에 자정이 다 되어서야 잠이 들었고 다섯 시가 조금 넘었지만 그렇게 피곤함을 느끼지 않는다. 서울에서는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나려면 몸이 천근만근이었는데 그전과는 확연히 차이가 난다. 공기가 좋아서인지 꽃벵이 때문인지 모르지만 아무튼 이전보다 몸이 젊어졌다는 것을 실감한다. 환갑이 넘었는데도.

나도 5년 전에 남편을 따라 서울에서 담양으로 귀농했다. 수구초심이라고 나이가 들어갈수록 남편은 고향을 그리워했다. 젊어서 누렸으니 농사로 몸도 가꾸고 베풀며 살자는 말에 혹 해서 따라왔다. 하지만 농사는 만만치 않았다. 새벽부터 남편을 거들다보니 저녁이면 파김치가 되어 남편 밥도 차려주지 못하고 곯아떨어지곤 했다. 새벽에 일어나기 힘들어 얼마나 미적거렸는지 모른다. 남편이 더 자라고 했지만, 혼자 드러누워 뒹군다는 것이 남편에게 미안해 또 힘겹게 몸을 일으켜 세우곤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힘들지 않았다.
먼저 꽃벵이 농장으로 들어선다. 습관처럼 온도와 습도를 확인하고 꽃벵이를 살핀다. 밤새 탈은 나지 않았는지 꼼꼼히 들여다본다. 녀석들이 꿈틀꿈틀 기지개를 켜며 문안 인사를 건넨다. 잘 잤지? 안 추웠어? 건조하진 않았구? 나는 녀석들에게 따스한 눈길을 던진다. 녀석들은 말이 없다. 대신 몸으로, 움직임으로 반응한다. 내 목소리에 녀석들의 동작이 더욱 빨라진다. 그래봤자 굼뜨지만 말이다.

▲꽃벵이 사육장

나는 굼벵이를 사육한다. 굼벵이는 식약청에서 식용으로 허가했다. 약 7년 전이다. 혹자는 굼벵이를 미래 먹거리라고 한다. 혹자는 약효가 뛰어난 건강식품이라고 한다. 나도 처음에는 가족이나 친지의 건강과 내 자신을 위해 사육을 시작했다. 남편이 버섯을 재배하고 남부럽지 않은 소득을 올리기 때문에 부업보다는 내 자신을 위해 뛰어든 것이었다. 육체적으로 힘들 것 같지 않았고, 가족이나 친지 및 이웃들에게 선심 써도 괜찮을 듯했다. 가족들이 먹는다는 생각으로 깨끗하고 질 높은 사료를 공급하고 싶었다. 멀리서 찾을 필요도 없었다. 남편이 답이었다.
남편은 송화버섯을 재배한다. 발육이 저조한, 그러니까 상품으로 낼 수 없는 버섯을 사료로 활용했다. 사람이 먹어도 좋은 고급 버섯을 먹은 녀석들이라 하루가 다르게 무럭무럭 자랐다. 상품으로 만들어 지인에게 돌렸더니 효과가 좋단다. 물론 단기간에 효과가 나타나지 않기에 한참 뒤에 들은 말이다. 앞으로는 사서 먹을 테니 꾸준히 공급해 달라는 요청이 여기저기서 들어왔다. 뜻밖의 요청에 보람을 느꼈고 또 다른 희망이 생겼다. 녀석들이 말년에 효자가 될 것 같았다. 나는 남편과 곤충 연구실을 별도로 만들어 다양한 환경과 사육에 대한 실험을 곁들였다. 실험을 더해가니 따라오는 건 발전이었다. 녀석들에게 욕심이 생겼다.

남편 말대로 베풀며 살자는 말은 뒷전이었다. 사실 내려오면서 두려움도 있었다. 남편은 고향이지만 나는 시댁이고 타향이었다. 누구에게 베푼다는 것을 꿈도 꾸지 못했다. 그저 진솔하고 진심으로 마음을 전하려고 했다. 내가 마음을 열면 주변 사람들도 마음을 열 것이라고 보았다. 시댁의 시자만 들어가도 어려웠기에 묵묵히 노력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생각처럼, 다짐처럼 농촌 삶이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얼마나 많은 한숨을 내뱉었는지 모른다. 그런데 어느 순간 머리에 번뜩이는 게 있었다. 정말로 내가 베풀려는 자세로 살고 있는 게 아니라 나를 중심으로 생각하고 행동했다는 것. 마음을 비우기로 했다. 무언가를 해야 마음을 비울 것 같아 시작한 것이 굼벵이 사육이었다. 

녀석들을 살피고 나오니 아침이 활짝 열렸다. 저 멀리 숲에서 산새들이 요란하게 울어댄다. 싱그러운 소리다. 농장 옆 은행나무에는 까치 두 마리가 부리나케 오간다. 우듬지 근처를 보니 까치가 둥지를 틀고 있다. 오늘 아침부터 시작한 듯 나뭇가지가 몇 개 없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까치들을 지켜본다. 나뭇가지를 물어다 둥지를 트는데 자꾸 가지가 밑으로 떨어진다. 기초 잡기가 어려운 모양이다. 까치는 경계의 눈으로 두리번거리며 조심스럽게 내려와 나뭇가지를 물고 날아 올라간다. 둥지의 기초공사를 위해 부리를 바삐 움직인다. 나뭇가지가 또 떨어진다. 까치는 다시금 경계의 시선으로 사방을 확인하고 밑으로 내려가 나뭇가지를 물어 나른다. 저 둘은 작년에 저 옆 은행나무에서 태어난 까치일 것이다.

식물이든 동물이든 오랜 기간 기르다 보면 정이 들 수밖에 없다. 굼벵이를 사육하다 보니 굼벵이에 푹 빠졌다. 취미였던 스포츠댄스는 잊은 지 오래다. 건강을 위해 스포츠댄스 학원에 매일 드나들었던 그때보다 나이가 더 들었는데도 지금의 건강이 더 좋다. 녀석들에게 무엇을 먹여야 튼튼한지 생각하고 깨끗한 먹거리를 만들기 위해 연구하고 실험한 것이 나를 젊게 했다. 거울을 보면 예전과 다르다. 화장을 진하게 하지 않아도 윤기가 흐르고 탄력이 느껴진다. 아마 굼벵이 때문일 것이다. 해서 나는 녀석들을 함부로 부를 수 없다. 녀석들은 굼벵이가 아니고 꽃벵이다. 나의 또 다른 자화상이다./ 강성오 군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 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강성오 군민기자  webmaster@d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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