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양뉴스 창간4주년 기획연재 Ⅳ(소설)/졸복(2화)

<제2화>

애초 그녀 집은 ‘멸막’이었다.
멸치는 신선도가 중요하기에 멸치를 잡으면 곧장 데치려고 어장과 가까운 곳에 자리 잡았다. 해수욕장 뒤편이고, 마을과 상당히 먼 거리였다. 지금이야 배들이 빠르지만 멸막을 시작했을 때는 노를 젓고 다녔기에 가깝고 안전한 곳에 터를 잡아야 배가 터지지 않은 싱싱한 멸치를 데칠 수 있었다. 그녀는 멸막에서 멸치를 삶고, 건조하고, 선별하고, 포장하는 일을 거들었다. 남편이 죽고 나자 생계유지 수단으로 민박을 시작했다. 민박은 경치와 전망이 경쟁력인데, 그녀 집은 원시의 경관만 눈에 가득 들어올 뿐이라 찾는 이가 드물었다.
남자가 주변으로 눈길을 돌렸다. 오른쪽 언덕에는 바다가 보이는 펜션이 우뚝 서 있고, 왼쪽에는 하얀 등대가 곶부리에 자리하고 있었다. 무인등대가 이른 불빛을 밝혔지만 석양 때문에 희미해 보였다. 바람이 없어 호수처럼 잔잔한 바다는 석양으로 점차 붉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육지의 항구는 아스라이 보였다.

“구름 한 점 없는, 기막힌 날씬데요? 쏟아지는 별빛을 맞으며 밤낚시라니. 이렇게 안전한 곳에서 낚시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하고 발길 닿는 대로 왔는데 이런 곳이 있다니! 아주머니는 하루하루를 낭만에 젖어 사시겠군요?”

남자의 부럽다는 말투에 그녀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쾌청했다. 이런 날이면 하늘에 빼곡하게 박힌 영롱한 별과 은하수가 선명하다. 도시에서 쉽게 볼 수 없는 밤하늘이고, 낭만적인 밤하늘이겠지만 작금의 그녀에게는 사치스러운 하늘이었다. 한 달 전만해도 별이 점점이 박힌 하늘을 보고 소녀적 감성에 빠지기도 했으나 지금은 아니다. 수정처럼 눈부시게 아름다운 별이 밤하늘에 너무나 많을 때면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그렁거렸다. 이런 기분을 남자에게 전가할 수는 없다.

  “별은 불을 안 키야 잘 보인께 별을 볼라먼 쩌그 기둥에 스위치 있능께 끄고 보씨요.”
  “랜턴을 안 챙겨 왔다고 했잖습니까? 별보다는 낚시가 더 중요하니까 불을 계속 켜놓고 싶은데 혹시 수면에 방해가 되겠습니까?”
  남자가 조심스레 물었다.
  “그런 건 신경 꺼불고 안전하게 낚시나 하씨요.”

  그녀는 마당에 불이 켜져 있다고 잠을 못 잔 적은 없었다. 민박집을 운영하면서 익숙해지기도 했고, 창호지를 통과한 희미한 빛이 수면을 방해할 정도도 아니었다. 그보다는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더 민감했다. 바다가 마당 바로 앞인데 난간이 없어 애들이 놀다가 바다에 빠지거나, 어른들이 술에 취해 바다에 빠질지도 몰라 자면서도 귀는 활짝 열어놓곤 했었다.
  남자는 그녀 말에 홀가분해진 듯 낚시 가방을 열었다. 사각형 가방 양쪽의 지퍼를 여는 남자의 손은 희고 고왔다. 손가락은 가늘고 길어 예술가의 손가락을 연상케 했다. 남편의 거칠고 투박한 손과 대조적이었다. 얼굴도 하얀 사기그릇처럼 깨끗하고 윤이 났다. 기품이 넘친 얼굴 탓에 귀공자가 앞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하지만 얼굴에는 옅은 그늘도 드리워져 있었다. 아내와 싸우고 왔기 때문인 듯했다. 저런 남편과 무엇 때문에 싸웠는지 남자의 아내가 복에 겨워 객기를 부렸을 것 같았다.

  그녀는 밥을 물에 말아 풋김치 반찬에 저녁을 간단히 때우고 진통제 두 알을 입에 넣었다.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한 알로 여섯 시간은 너끈히 버텼는데, 이제는 두 알을 먹어야 그럭저럭 버틸 수 있다. 물을 마시고 고개를 흔들어 진통제를 삼켰다. 이불을 깔고 누워 내일 일을 떠올렸다. 첫 배로 나가 약국에서 진통제를 몇 통 사고, 장례식장도 알아봐야겠다. 가는 길에 팻말을 뽑아야 하니 평소보다 조금 서둘러 집을 나서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내일 입고 갈 원피스를 살폈다. 외출할 때마다 입었던 분홍 원피스인데 딸이 시집가기 전에 사 주었다. 신 년 전이었다. 한 달 전에 육지에 나갈 때도 입었는데 돌아온 즉시 빨아서 다림질해서 걸어둔 탓에 주름은 보이지 않았다. 남편은 이 원피스를 입을 때가 제일 예쁘다며 마음에 쏙 들어 했다. 남편은 옷 한 벌 마음대로 사 주지 못한 마음을 딸에게 과장해서 전했다. 역시 너는 내 딸이다. 내가 막 사주려고 했는데, 어떻게 알았냐. 안목도 좋고, 기특하고 대견하네. 남편은 그날따라 술을 많이도 마셨다. 꾸덕꾸덕 말린 갯장어 구이를 안주 삼아 소주를 두 병이나 비웠다. 평소에는 한 병을 넘기지 않았다. 주량 때문이 아니라 많이 먹어서 좋을 게 없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남편은 비루한 형편을 그렇게 둘러대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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