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화>
신의 찻사발

“정사 나리. 일전에 은자를 주어 보냈던 금강이라는 자가 아직 돌아오지 않았는데 수소문해 볼까요?”
“그만 두어라!”
더위를 못 이긴 오윤겸이 버럭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강우성이 멀뚱히 바라보았다. 소리 없이 문을 열고 고했던 군관 정충신은 머쓱한 얼굴로 얼른 뒤돌아서 나갔다. 광주 출신으로 권율 휘하에서 공을 세웠던 그는 오윤겸이 지명해 이번 사행길에 나선 심복이었다.

대마도를 떠나 시모노세키, 히로시마, 오사카에 이르는 여정에서 금강 같은 자를 몇 차례 만났었다. 임금이 막대한 은전을 보내 납치된 조선인을 데려가려 한다는 헛소문이 퍼져 공공연히 금전을 요구하는 자들이 있었다. 어렸을 때 피납돼 조선 말을 모른다는 금강도 주인에게 빛을 진 피로인을 몇 사람쯤 데려온다고 여비를 뜯어 갔는데 아니다 다를까 잠적한 모양이었다. 한데 열다섯 살에 끌려와 스무 해를 일본에서 지낸 이 자는 무슨 사연이 있어 금덩이보다 비싸다는 이 찻사발을 선뜻 내놓으려는 것일까…….

오윤겸은 문득 몽린의 진의가 의심스러워 그를 찬찬히 뜯어보았다. 한여름에 팔목까지 내려오는 도톰한 승복을 입고도 그의 얼굴에는 땀방울이 없었다. 이런 무더위와 침묵의 일상에 단련된 느낌이 물씬 풍겼다. 한편으로는 조선에서는 시골 출신인 주제에 종3품 대감 앞에서 조금도 꿀리지 않는 자태가 괘씸스럽기도 했다. 비록 조선인이었지만 몽린도 10여 년 넘게 야스하루의 측근에서 다두로 일하다 보니 오즈번에서는 누구도 그를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 덕분에 함께 납치된 어머니 함풍 이씨, 동생 몽인과 혜란도 성내에서 편히 지내왔다. 한데 몽린이 글재주가 뛰어나고 그 때문에 야스하루에게 꼭 필요한 부하인 점이 문제였다. 그런데다가 와키자카 가문의 적자인 야스모토까지 몽린을 가까이 두려고 했다.

몽린보다 두 살 아래인 야스모토는 어려서부터 몽린을 따랐다. 유학에 박식하고 서예, 화서까지 소질이 있는 몽린을 곧잘 불러 소학이나 사서오경의 내용을 이것저것 묻곤 했다. 일본 영주의 자녀치고는 특이하게 글을 배우고 서적을 사 모으더니 종내는1600년 쯤부터 일본에서 본격적으로 유행하게 된 유학 서당까지 드나들었다. 이윽고 쇼군의 측근에서 유학을 강론하는 하야시 라잔의 눈에 들어 그의 제자로 인정 받을 정도였다. 와키자카 가문이 오사카에서 3백 리나 떨어진 섬, 오즈를 떠나 이번에 에도에서 가까운 시나노로 이봉된 것도 야스모토를 지척에 두려는 쇼군의 의중이라는 소문이 있었다. 쇼군의 눈에 들었다는 것은 가문의 출세를 의미했고 야스하루도 문무를 겸비한 아들을 대견해 했다. 그런 판국에 향후 야스모토의 출세가도에 큰 도움이 될 몽린을 놓아줄 리 없었다.

“쇼군이 예하 영주들에게 조선인 포로를 풀어주라는 유시를 내리면 야스하루도 어쩔 수 없이 그대를 돌려보낼 것이라…….”
“그렇습니다.”
저간의 사정을 전해 들은 오윤겸이 확인하듯 묻자 몽린이 선선히 답했다.
“그 유시문을 가지고 우리 통사들이 오사카와 왜경에 있는 오십 여 영주의 집을 방문해 백여 명쯤 모으고, 그대 친구가 오즈에 가서 그대 동생과 그대를 따르는 조선인, 사십여 명을 데려오고, 야스하루 등 그대가 아는 영주에게 예속된 오십 명은 그대가 직접 챙기고, 강우성이 우리가 배로 지나왔던 나가토, 아키, 비젠 지역에서 백여 명쯤 모집하면 그럭저럭4백여 명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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