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호 귀농인(2014년 귀농/010-3303-5615)

담양뉴스는 ‘주민참여보도’ 일환으로 본지 시민기자의 전지적 시점에서 취재한 【귀농일기】 코너를 신설해 지면에 보도합니다.
‘귀농일기’는 도시에서 담양으로 귀농해 지역사회와 공동체에 적응하면서 농촌생활에 정착해가는 귀농인들의 일상을 기록해가는 지역밀착형 기사입니다. 

눈을 뜨자마자 컴퓨터 앞에 앉아 주문을 확인한다.
자기 전에 보았던 양보다 700뿌리 늘었다. 야심한 시간에 주문하신 분들이 어떤 마음으로 주문하는지 알 것 같다. 아마도 건강을 심히 우려하고 있을 것이다. 본인뿐만 아니라 가족이나 친인척들까지도. 그런 걱정 때문에 자정이 넘은 시간에 주문을 넣은 게 아닐까.
요 며칠 전부터 코로나 19로 전국이 들썩인다. 텔레비전을 통해 바라본 도시 시가지는 적막감이 감돈다. 자영업자들은 손님들 발길이 끊겨 장사가 되지 않는다고 아우성이다. 어떤 이는 울상을 짓고, 어떤 이는 비장감 어린 태도로 인터뷰에 응한다. 마치 종말을 앞둔 것처럼 세상이 어수선하다. 뉴스의 시작과 끝이 코로나 19와 관계있다. 평론가나, 초청된 패널들도 바이러스 전문가들이 대부분이다. 그런 탓에 내가 생산한 새싹인삼 소비도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내 거래처의 8할이 식당이었다. 고깃집, 뷔페, 일식집, 한식집, 추어탕 전문점, 오리 전문점, 횟집, 비빔밥집, 국수집 등 딱히 어떤 식당이 주요 거래처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업소에 납품했다. 식당에서는 고객들에게 서비스 차원으로 한 뿌리씩 제공했다. 그런데 코로나 19로 식당을 찾는 고객이 줄자, 내 매출도 급감했다. 큰일이다 싶어 인터넷 판매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그동안 인터넷 판매는 뒷전이었다. 식당에서 대량 주문이 들어와 그걸 소화하기에도 벅찼기 때문이었다.

어제는 인터넷으로 130만원 어치를 주문받았다. 많을 때는 600만원을 넘는다. 하루의 주문 기준은 택배발송 준비가 가능한 4시까지다. 택배 차가 5시 무렵 오는데 그 차에 실려 보내야 하기에 4시 이후 주문 물량은 다음날 보내곤 했다. 요즘은 인터넷 판매와 기존 거래처에 판매하는 물량이 엇비슷하다. 코로나 19가 계속 기승을 부리면 머지않아 인터넷 주문이 앞설지 모르겠다. 개인 판매는 금전적으로 조금 이익이지만 이익을 떠나 코로나 19가 하루 빨리 종식되기를 바란다. 범죄자도 아닌데 두툼한 마스크를 끼고 살아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게 여간 힘든 게 아니다. 나는 그저 묵묵히 할 일만 할 뿐이다.

아침을 간단히 마치고 농장으로 향한다. 집을 나설 때마다 느꼈던 거지만, 비가 오지 않거나, 미세먼지로 탁하지 않으면, 시골 공기는 너무나 상쾌하다. 공기에서 상큼한 향이 묻어나고, 달콤한 맛이 감도는 듯하다. 공기만 먹어도 살이 찔 것 같은 포만감이 인다. 눈을 멀리 던지지 않아도 좌우에서 작물들이 눈인사를 한다. 여름에는 벼와 고구마, 고추, 블루베리 등이 새살거리고 겨울이면 하얀 비닐하우스들이 눈짓한다. 비닐하우스가 겨울 들녘의 황량함을 상쇄시킨다.
비닐하우스로 들어가 새싹삼에게 아침 인사를 건넨다. 삼들이 밀어를 속삭이며 반갑게 나를 맞이하는 듯하다. 나는 잰 걸음으로 농장을 한 바퀴 돌아본다. 하나하나 눈인사를 건넨다. 밤사이 별다른 이상은 없었다. 내가 식구처럼 귀하게 여긴다는 것을 알고 있을까. 뜨겁게 사랑한다는 것을 알고 있을까. 아마도 아는 듯하다. 기나긴 밤을 탈 없이 지새운 건 내 지고지순한 사랑에 보답하기 위함이 아니겠는가. 아니라면 철저한 관리 때문일지 모른다.
 
나는 오늘 심을 종삼을 가져와 오존수에 담근다. 소독 때문이다. 새싹삼은 오직 물로만 키워내야 한다. 뿌리부터 이파리까지 통째 먹는 식품이기에 도중에 약품을 칠 수 없다. 때문에 심기 전부터 철저히 소독하는 게 최선이다. 소독이 되는 동안 화분을 작업대 위로 나른다. 종삼을 안을 화분이기에 다양한 소독 과정을 거쳤다. 일광 소독 후 건조기에 넣어 또 한 번의 소독 과정을 거치고 우리 농장(아이니 새싹삼)만의 소독법으로 다시금 소독을 했다.
시간이 되니 어머니와 박 여사님이 들어오신다. 어머님은 수시로 나를 도와주고, 박 여사님은 주 5일 간 나를 도와준다. 두 분이 없으면 농장을 차고나가기 어려울 것이다. 작년까지는 어떻게든 식구들끼리 해보려 했지만 올해는 너무 힘들어 박 여사님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꼼꼼한 성격이라 천군만마를 얻은 듯하다. 작업대에 둘러앉아 커피를 마시며 내가 박 여사님께 택배로 오늘 발송할 양을 말하니, 커피를 마신 박 여사님은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가 수확을 한다. 팔순이 넘은 어머니는 나이에 걸맞지 않게 빠른 손놀림으로 종삼을 식재한다. 

오늘 일과가 드디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나는 박 여사님이 뽑아 놓은 새싹삼을 가져와 정성스레 포장한다. 박 여사님이 1차로 선별했지만, 조금이라도 애매한 크기는 옆으로 과감히 재껴둔다. 주문량에 맞게 포장을 하고, 재껴 놓은 새싹삼을 덤으로 몇 개 넣는다. 이렇게 작은 것이라도 베풀 수 있는 지금이 좋다. 귀농 전에 서울에서 직장생활 할 때나 중국에서 근무할 때도 베풀 기회가 적었다. 아니 거의 없었다. 기껏 베푼다는 게 밥이나 술을 사는 것이었다. 그것도 어쩌다 한 번. 지금은 매일이라도 베풀 수 있다. 그런 여유가 좋다. 흔히 귀농을 인생2막 이라고들 하는데, 인생2막이 아니라. 오히려 황금기이다. 농장에 황금이 가득하다./ 강성오 군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강성오 군민기자  webmaster@d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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