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고필 (문화기획가, 향토사전문책방 이목구심서 대표)

문화기획을 통해 현장에 체류하는 시간이 깊어졌다. 
아무래도 그 판에서 잔뼈가 굵었다고 말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여러 고장을 다니면서 제일 먼저 그 고장을 알기 위해 했던 것이 한국의 발견이라는 11권 시리즈의 지역편을 보는 것이었다. 1983년에 발행된 이 책은 뿌리깊은 나무출판사를 만든 보성사람 고 한창기선생의 작품이다. 최루탄이 난무하던 대학시절 은사님의 추천으로 도서관에서 책을 보며 제일 먼저 뽑아낸 것은 전라남도편이었고, 그중에 담양에 눈을 맞췄다.

담양의 소개는 헤드타이틀이 “한반도의 대밭”이었다. 그야말로 눈이 번쩍 뜨이는 구절이었다. 이보다 간명하면서 심도 있게 담양을 말할 수 있는 단어가 어디 또 있을까 싶어지며 이내 책속에 빠져 들었다. 부자가 많이 나는 담양, 연탄 한 장에 전조 딸기 한 알, 인재의 고장 창평, 문을 잠그고 몰래 빚어야 할 창평엿 같은 부제들이 내가 나고 자란 고서면이라는 한계를 넘어 읍내를 비롯해 담양 전부를 이해하는 동력원이 되었다. 
이후 차례로 각 도별로 집필된 책을 보며 각 지역별 특성을 공부하는 계기가 되었고, 상식적으로도 특정 지역이 어떤 역사와 삶의 내력을 지닌지 알게되고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는 역량을 갖춰가기 시작했다. 시간이 흘러 여행사에 근무할 때는 이 책이 밥줄이 되어 주었다. 각 군계를 지날 때마다 나는 마이크를 잡고 주변으로 펼쳐진 풍광을 보며 지역에 관한 이야기를 술술 풀어내게 되었다. 여행업을 접고 문화판에서 일하며 축제 기획과 컨설팅을 하면서도 이 책은 닳고 닳아지며 내 곁을 떠나지 않았다. 

그런 책이 거시사적 안목에서 다시 미시사로 들어와 지역의 특성을 족집게로 뽑아내듯 알려준다면 담양에는 그야말로 개인의 삶이나 특정 마을이나 유적의 가치와 내용을 깊고 넓게 연구하여 발행한 다양한 책들이 산재해 있다. 향토사 부분에서 우리 담양처럼 풍부한 자료와 서책을 가진 지역을 찾기는 쉽지 않다. 그 자랑스러움의 이면에는 오직 한길로 이것에만 생애를 바친 고.이해섭 선생님의 노력을 우리는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그리고 이를 뒷받침한 담양군과 담양문화원의 애정도 말이다.
필자는 한국의 발견 씨리즈로 시작하여 담양문화원을 들락거리며 얻은 자료로 지역사 공부에 몰입해 올 수 있었고, 언제고 그 토대위에 고향땅에서 무언가 필요한 제안을 드리고 싶어한다. 하지만 나갔다 온 사람이고, 창평현쪽 사람인지라 군청 언저리가 아직도 멀기만 하고, 고향을 지켜온 선배님들의 향토애에 비해 조족지혈도 안되는 지라 어줍잖게 말하는 것이 두렵기만 하다. 이제 천만 뜻밖에 말할 공간이 생겼으니 담양에서 오다 가다 만나며 느낀 감정을 진솔하게 고하고자 한다.

첫이야기다. 며칠 전 군청 녹색관광과에 들렀다가 대나무축제가 취소되었다는 소식과 더불어 코로나19가 극복이 되면 그 후속타로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는 어느 계장님과 이야기를 했다. 어느 계절에 이 상황이 종료될지 미지수지만 축소된 관광객들로 인해 전국을 넘어 세계가 움추려든 마당이어도 이 리스크를 이겨나가기 위한 고육책을 강구하는 것이 실무부서의 업무일 것이다. 잠시 망설이다 이런 말씀을 드렸다.
담양의 고유성은 지역의 자연에도 있고, 인물과 문화에도 넘쳐납니다. 이를 현대적으로 잘 각색하고 연출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를테면 요즘 아이들은 매직쇼를 무척 좋아합니다. 우리가 산타축제를 하면 어린이들이 부모와 함께 노니는 메타프로방스와 시내를 보듯, 어린이들의 구미에 맞는 경관연출과 맞춤한 공연이나 전시는 바로 인접한 150만의 도시 광주의 시장에 먹히는 것이 되지요. 담빛갤러리에서 예술산책을 통해 신진예술가들의 작품을 전시하고 경매하는 행사를 했을 때 전체가 다 팔리는 솔드아웃이 일어날 정도의 문화쇼크는 담양이 리드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 아닌지요. 

그래서 말인데, 우리 전우치를 한번 활용해 보시면 어떻겠습니까?  전우치는 활빈의 활동을 하고, 약간은 엉뚱 기발하고, 그러면서도 정의를 지킬려는 사도이면서 마술사 같은 일들을 눈깜짝 할 사이에 저지르지 않았습니까?. 역질을 도술로 막아낸 인물, 담양전씨라고 전해지는 그가 수북면에 황금들보를 떨어뜨려 황금리 마을을 만든 사람인데 우리는 전우치를 전설과 괴이한 민담 정도로만 여기고 거들떠보지 않았잖아요. 이제 전우치를 현시대의 관념으로 보면 우리 시대의 매직쇼를 하는 마술사 아닙니까. 마술사의 고장, 모든 마술사의 멘토인 전우치가 있는 마을. 바로 담양을 마술의 고장으로 만들면 어떻겠어요. 전국에 난다 긴다하는 마술사들을 이리 초대해 봅니다. 자웅을 겨루게 하고, 황금리가 보이는 곳에 마술학교도 만들고, 클라스도 운영해 보고, 상설 쇼도 만들어 보고, 그러다 내용이 쌓이면 마술축제도 열어보는 것은 어떤가요? 

이런 내용의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티끌만한 단서를 가져도 이를 각색하고 연출하는데 모든 지혜를 모으는 시대가 되었는데 우리는 엄중한 시문학과 가사문학의 틀에서 많은 시간을 할애하며 유쾌하고 발랄한 내용을 집중해 보고 활용하는 데에는 인색했던 것이 사실이다.
약간은 가볍게 하지만 결코 경솔하지 않게 지역을 바라보며 씨줄 날줄을 엮어 보는 기량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런 일에는 반드시 사람이 필요하다. 딱 한사람이라도 불광불급한 사람. 미쳐야 미친다는 그 말에 동의하며 생애를 사를 수 있는 사람, 이해섭 선생님과 같은 김동언 선생님과 같은, 고재종 선생님과 같은, 진옥섭 선생님과 같은 분, 마술에도 그런 분이 있어 담양을 더 매력적이고 신비한 곳으로 연출할 분이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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