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화>
오윤겸은 대마도를 떠날 때부터 강우성과 몇 차례나 궁리했던 계략을, 그것을 직접 꾸민 몽린 앞에서 되짚어 보았다. 상대방이 그 책략에 얼마나 자신이 있는지 확인하려는 듯이. 정사의 속내를 눈치챈 몽린은 다짐하듯 말했다.

“쇼군의 유시가 없다면 가문에서 노복으로 부리는 포로를 내놓으려는 왜인이 거의 없을 것이며 종국에 정사 나리가 데려가는 조선인이 백 명도 안 될 것입니다.”
“허어, 그것참!”

곁에서 잠잠히 듣고 있던 부사, 이경직은 장탄식을 터트렸다. 4백이 넘는 관원을 거느리고 여덟 달에 걸쳐 왜국에 다녀왔는데 고작 몇 십의 피로인을 데려가 임금의 면전에 부복해야 한다니……. 몸이 달은 이경직은 말차를 꿀꺽 들이켰다. 녹차 잎의 씁씁한 맛이 혀에 맴돌아 뒤끝이 꺼림칙했다. 정박하는 포구마다 쇼군의 명이라 하여 그 지역을 다스리는 대관이 차를 접대하는데 일본의 가루차를 맛보지 못한 그에게는 차를 마시는 일도 고역이었다. 막부의 집정이 보내온, 말린 가물치를 안주 삼아 소주나 들이키면서 대화하면 흥이 더 날 터인데 하필 숙소가 절간인데다 상대가 승려 신분이니……. 울화통이 터진 이경직은 부채를 얼굴에 바싹 대고 휘휘 부쳐댔다.

“문제는 그대가 가져온 이 신의 찻사발…… 그 뭐, 정식 이름이 정호다완이라고 했던가? 이 그릇이 왜인에게는 대명물로 인정 받지 못했다는 건데……. 혼다 대신이 이 사발의 가치를 높이 평가해 쇼군을 움직이려 들까?”

오윤겸은 좌중을 휘돌아보며 웅얼거렸다. 정호다완에 대해서는 한 달 넘게 배를 타고 오면서 강우성에게서 신물이 나도록 들었는데 깊이 알수록 해괴한 이야기였다. 강우성은 이경직이 알아듣도록 정호다완의 내역을 조근조근 나열했다.
정호다완(일본명 이도다완)이 일본의 다회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1580년대에 들어서였다. 그때까지 다인들은 송나라의 천목다완을 최고 명물로 쳤고 찻사발의 황제로 불렀다. 당시 일본을 통치했던 오다 노부나가는 천목 같은 명품 차도구를 황금 육천 근에 사들인다고 큰소리쳤다. 그 돈은 3천 명이 주둔하는 성을 쌓을 만큼 어마어마했다. 노부나가에 이어 천하인으로 떠오른 히데요시와 그의 다두였던 센 리큐는 그동안 다도계를 지배해 온 천목에 맞설 새로운 명품을 찾았다. 그들의 눈에 띈 것이 조선에서 만들어진 정호다완이었다. 센 리큐는 과거에 귀족들이 즐겼던 서원차에서 벗어난다는 명목으로 검소한 초암다도를 창시했고 다회에서 정호다완을 주로 사용했다. 이후 조선의 정호다완이 찻사발의 황제라는 송나라의 천목을 제치고 일본 다도계의 주인장이 됐다. 임진왜란이 끝날 때쯤에 정호다완 중에서 가장 비싸다는 츠츠이즈츠이, 호소카와이도의 가격이 황금 6천 근 정도였다. 그 돈이면 3천여 병사가 주둔하는 큰 성을 살 수 있고 이름깨나 알려진 거상이 평생 모은 재물과 맞먹었다.

새 명물이 탄생하자 왜인은 너나없이 그것을 찾아 나섰다. 그것이 왔다는 조선 땅을 다 뒤져도 그 그릇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러자 조선의 사기장까지 끌고 와 본떠 보았지만 누구도 정호다완을 굽지 못했다. 비슷한 태토를 써 보아도, 장작불을 온갖 방법으로 바꾸어 보아도 흉내 낼 수 없었다. 그러자 왜인은 사발의 굽을 장식한 우유빛 매화피(梅花皮)와 몸체를 휘감은 빙렬은 도저히 사람이 만들 수 없는 신의 작품이라고 명명했다. 그런 어마어마한 천하의 대명물을 몽린이 가지고 온 것이다. 그 그릇을 쇼군의 집정으로, 며칠 후 사신을 접대하게 될 혼다 마사즈미에게 주고 유시문을 얻어 내자는 계책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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