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화>

전화를 끊은 그녀는 심란한 마음에 텔레비전을 끄고 엎치락뒤치락했다. 모처럼 딸 식구가 온다니 반가워야 하는데 바위가 짓누른 듯 마음이 무거웠다. 딸을 생각하면 미안함이 앞선다. 갓난아이 때는 마른 젖을 빨며 칭얼대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아예 젖을 찾지도 않았다. 남들은 젖을 떼느라 고생했다는데, 그녀는 오히려 풍족하게 먹이지 못해서 미안한 마음에, 피라도 주고 싶었다. 피가 부족하면 골수라도 짜내 빨게 하고 싶었다. 그런 딸인데 시집가서도 그녀 때문에 고생하는 것이 마음 아파 차라리 다른 사람의 딸로 태어났으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다.
  딸이 찾아와도 해줄 만한 게 별로 없다. 물 빠지면 호미, 괭이, 지렛대를 들고 나가 갯가를 파헤쳐 홍거시를 잡고, 낚싯대나 빌려다 주면 끝이다. 그리 어렵지 않다. 그런데도 고민이 깊었다. 모처럼 놀러 왔는데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굳이 전할 필요가 있을까. 그래도 전화로 하기보다는 얼굴을 보고 말해야 하는 거 아닐까. 딸에게 말하면 딸은 또 얼마나 가슴 아파할까. 고민했지만 이번에는 하지 않기로 마음을 굳혔다. 폭탄이 떨어진 가정에 핵폭탄까지 투하하고 싶지는 않았다.
  
한 달 전이었다. 동네 동생이 허리 통증으로 요양병원에 입원했다. 사 년 전에 남편 장례를 집에서 치렀는데, 동생이 장례를 치르는 내내 음식 장만에 설거지까지 도맡아 하는 등 몸 사리지 않고 일손을 거들었다. 장례가 끝나고 고마움을 전하려 했으나 마음뿐이었다. 자주 만나기는 했지만 언니로서 역할을 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한 살 많은 언니지만, 언니답게 지갑을 열어 대범하게 경비를 지출한 적도 없었다. 그게 걸렸다. 농사를 지으면 농사를 돕고, 바닷일을 하면 허드렛일이라도 도왔을 텐데, 동생은 농사도 바닷일도 하지 않은 예비군 중대장 부인이었다. 동생이 입원했다는 말에 서둘러 병문안을 갔다. 동생은 언제 허리가 아팠는지 모를 정도로 건강한 모습으로 입원하고 있었다. 입원 일당 때문이라고 속말을 했다. 그리고는 모처럼 왔으니 건강검진이나 한 번 하고 가라고 그녀를 부추겼다. 그녀는 바쁘다는 핑계로 거절했지만 완강하게 밀어붙이는 바람에 마지못해 피검사를 했다. 의사가 콜레스테롤 수치가 너무 높다며 당장 큰 병원으로 가라고 했다. 의사가 너무도 심각히 말하는 바람에 그 길로 대학병원으로 갔다. 급성간암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그녀는 머리가 하얗게 되어 동생에게 내려간다는 말도 없이 고향으로 돌아왔다. 진단을 받은 일주일 후부터 통증이 느껴져 진통제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이전보다 확연하게 살도 부어올랐다.
  
딸의 방문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고로 갔다. 불을 켜고 창고를 뒤졌다. 갯가에서 뜯은 청각, 우뭇가사리, 톳, 갈파래 등을 있는 대로 자루에 눌러 담았다. 김장철에 주려던 말린 고추를 담았고, 택배로 부쳐주려 했던 참깨를 빈 플라스틱 물병에 채우고 또 채웠다. 멸치젓갈도 냄새나지 않게 비닐봉지를 세 겹으로 하여 양동이에 담았다. 쌀도 몇 됫박만 남기고 자루에 담았다. 창고를 탈탈 털었지만 양이 별로였다. 차가 없더라도 딸 식구가 넷이니 나누어 들고 나가 버스에 실을 수 없는 짐은 아니었다.
  그녀는 방으로 돌아와 문구멍으로 마당을 보았다. 손님이 오면 내다보곤 했던 습관이 되살아났다. 그러나 지금은 다른 이유도 있다. 외손자들이 낚시 온다는데 고기가 잘 잡히는지 그렇지 않은지 알아보고 싶었다. 마당을 밝힌 조명 때문에 남자의 행동 하나하나가 뚜렷하게 눈에 들어왔다. 남자는 아이스박스에 걸터앉아 네 개의 초릿대에 시선을 박고 초릿대의 움직임을 살피고 있었다. 초릿대에 장착된 케미라이트가 파란빛을 은은하게 비추고 있었다. 검은 바다 위의 파란빛이 반딧불처럼 보였다.
  
케미라이트가 깐죽거리듯 움직이자 남자가 낚싯대 손잡이를 잡고 챔질을 준비했다. 예신에 이어 본신으로 초릿대가 바다를 향해 살짝 처박혔다. 남자가 날쌘 동작으로 챔질하여 낚싯대를 올리고 내리며 서서히 릴을 감았다. 엄지손가락 두 배 굵기의 갯장어가 바늘에 딸려 나와 허공에서 몸을 꼬았다. 남자는 낚싯줄에 몸을 꼰 갯장어 아가미에서 바늘을 빼 갯장어를 바다로 돌려보냈다. 그리고 바늘에 홍거시를 끼워 다시 바다에 투척했다. 릴을 감아 느슨한 원줄을 팽팽하게 하고 아이스박스에 걸터앉아 수건으로 손을 닦았다. 그 사이 오른 쪽 두 번째 케미라이트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조금 전의 깐죽거림과는 달랐다. 남자는 수건을 바닥에 던지듯 내려놓고 바로 챔질했다. 바늘에 복어가 물려 나왔다. 크기가 작은 졸복이었다. 남자는 갯장어와 달리 졸복을 아이스박스에 넣었다. 
 
 한참을 지켜보니 주로 갯장어와 졸복이 간간이 물었다. 외손자들이 심심치 않은 손맛을 느끼기에 충분해 보였다. 외갓집에서 유의미한 추억을 쌓을 수 있을 듯했다. 남자는 크기와 상관없이 갯장어를 바다로 돌려보냈고, 졸복만 아이스박스에 넣었다. 그녀는 문구멍에서 눈을 떼고 이불을 덮었다. 하지만 졸복만 챙기는 남자가 머릿속에서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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