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양뉴스는 ‘주민참여보도’ 일환으로 본지 시민기자의 전지적 시점에서 취재한 【귀농일기】 코너를 신설해 지면에 보도합니다.
‘귀농일기’는 도시에서 담양으로 귀농해 지역사회와 공동체에 적응하면서 농촌생활에 정착해가는 귀농인들의 일상을 기록해가는 지역밀착형 기사입니다.  

<낯선 곳, 낯선 직업>

허리를 숙여 토마토를 바라본다.
하루가 다르게 붉게 익어가는 토마토. 나를 유혹하는 매혹적인 색이다. 나는 잘 익은 토마토를 보면 가슴 깊은 곳에서 묘한 설렘이 일렁거린다. 자세를 더 낮추고 아이 다루듯 조심스레 토마토를 가만가만히 만져본다. 손에 느껴지는 매끈한 촉감. 탐스럽게 나를 유혹하지만 내가 공들여 길렀다는 생각 때문일까. 군침은 돌지 않는다. 내가 빨간색을 좋아하는 건 유년의 기억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는 중국에서 태어났다. 중국은 빨간색을 귀하게 여겼다. 사방이 빨간색 일색이었다. 국기도 빨간색이 바탕이었으니 더 이상 말해 무엇하랴. 눈을 돌리면 시야에 들어오는 빨간색이 정감 있게 느껴졌다. 사상이니 뭐니 하는 것은 생각조차 없었다. 그 빨간색을 인생2막까지 접하게 될 줄 상상도 하지 못했다.
나는 봉제공장에서 잔뼈가 굵었다. 중국의 봉제공장에 발을 들인 후 러시아와 방글라데시에서 관리자로 보낸 세월이 30년 이상이었다. 방글라데시 공장은 직원이 3,000명 넘었는데 관리자는 6명뿐이었다. 그러니 관리자를 특급 대우했다. 나도 남 부럽지 않은 대우를 받으며 직장생활을 했다. 사원들도 잘 따라 회사에서 기대하는 바도 컸다.

그런 내가 아무 준비도 없이, 직장의 간절한 만류를 뿌리치고 한국행을 택했다. 남편 때문이었다. 남편은 회사 대표의 친구였다. 좀 마른 체격에 말수가 적은 분이었다. 대표의 소개로 만났는데 그만 눈에 콩깍지가 씌워졌다. 남편이 무일푼이나 마찬가지였는데 그런 것쯤은 상관없었다. 사람만 좋으면 된다는 신념 때문이었다.
사람만 보고 무모한 결정을 하게 된 건 친정 때문이었다. 친정은 누가 봐도 부러워할 정도의 집안이었다. 자라면서 가난이 뭔지, 배고픔이 뭔지, 고생이 뭔지 몰랐다. 틈틈이 책을 읽었는데 그 습관이 직장 생활하는 동안에도 이어질 정도였다. 뼈저리게 공생하지 않았으니 사람만 좋으면 된다는 관념이 생겼다. 게다가 나의 자신감 때문이었다. 무엇을 해도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감. 그래서 남편을 따라 막무가내로 한국을 택한 것이었다.

남편 고향이 담양이었다. 나는 남편을 따라 담양에 둥지를 틀었다. 남편 본가에 자리를 잡았지만, 막상 살려고 보니 앞이 캄캄했다. 몇 가구 되지 않은 작은 마을이라 장사하기도 그렇고, 봉제 공장이 없으니 특기를 살려 취직하기도 불가능했다. 고민 끝에 농사를 짓기로 했다.
다음 해 중국에서 담양으로 여행 온 친구들이 농사짓는 나를 보고 어떻게 그런 결정을 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친구들은 기사 딸린 벤츠를 타고 다니는 부류에 속했다.
내 수중에 1억이 있었다. 직장생활하며 모은 돈이었다. 그 돈으로 농지를 샀다. 본가를 사려했지만 시집 식구들의 반대로 살 수 없었다. 구입한 논에 비닐하우스를 설치해 토마토 재배를 시작했다. 농사가 처음이었다. 남편도 농사에 익숙하지 않았다. 주위 비닐하우스는 딸기 재배 농가가 월등히 많고 다음으로 방울토마토 농가가 많다. 내가 재배한 완숙토마토 재배 농가는 흔하지 않다는 말이다. 때문에 기술을 배우는데 난관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농업기술센터, 농약사, 재배농가 등을 찾아다니며 묻고 또 물었다.

토마토를 재배하는 동안 내 관리는 등한시 했다. 관리를 해야 하는데, 하고 마음을 다잡곤 했지만 다음날로 미루기 일쑤였다. 책도 좀 읽어야 하는데, 하고 날마다 각오를 새기지만 허사였다. 비닐하우스에서 쭈그려 앉아 온종일 일하다 집에 오면 퍼질러 자기에 바빴다. 사실 우선 피곤한 몸을 누이기에 급급했지, 몸 관리는 안중에도 없었다. 그렇게 5년 째 농사를 짓다보니 어느덧 몸무게가 두 배로 불어 있었다. 친정어머니가 본다면 몰라볼지도 모르겠다.
 
외출하기 전에는 거울을 잘 보지 않는다. 거울 속에 비친 나를 가꾸려다 토마토에 신경을 덜 쓸지 모르기 때문이다. 나는 자식이 없는데, 토마토를 자식처럼 대한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잘 잤는지 묻고, 내가 왔다고 밝은 목소리로 알린다. 나만의 착각인지 모르겠지만 마치 토마토들이 나를 눈 빠지게 기다리고 있다가 반갑게 대답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식물과 대화를 했다는 글을 읽으며 그럴 수 있는지 의문을 품었는데, 지금은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을 바꿨다.

나무 마다 주렁주렁 달린 토마토. 하루가 다르게 빨갛게 상기되는 건, 내 사랑을 느끼고 얼굴을 붉힌 것은 아닐까. 나는 그들이 어떤 말을 건넬지 바투 다가앉아 귀를 기울인다./ 강성오 군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 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강성오 군민기자  dn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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