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홍식 (본지 칼럼위원)
    광주 일동중 교장/前광주서부교육장
    담양봉산면 출신 

학교문이 열리는 봄은 희망과 설렘을 담은 또 하나의 시작으로 가슴 부푼 계절이다. 막 유치원과 초등학교에 입학하려는 아이와 이를 바라보는 가족들의 표정, 준비한 옷을 입고서 몇 번이고 가방을 매보며 입학식을 손꼽아 기다리는 모습, 이 하나만으로도 모든 시름 뒤로한 채 온 가족이 아이 기르는 기쁨 오지게 누리지 않았는가? 
  어디 이뿐인가? 상급학교 진학을 앞둔 아이들도 새로운 기대와 포부로 얼마나 가슴 벅찬 시간을 보내는가? 옆에서 이를 지켜보는 가족들의 마음 또한 마찬가지이고. 그래서 봄은 새로움과 기대감이 넘치는 때다. 새 학년, 새 학교, 새 친구, 새로운 선생님을 만나서 자신의 꿈과 희망을 키워가리라는 생각만으로도 우쭐하게 한껏 기분 좋아지는 일이다. 
  
 여기에다가 환한 봄꽃들이 하나둘씩 우리 곁에 다가오는 모습은 겨우내 지치고 우울했던 마음까지도 한순간에 날려 보낼 만큼 크나큰 위로와 밝은 기운을 넘치도록 선사해 준다. 부지런한 홍매화, 명자나무꽃 붉은 소식에 노란 영춘화가 겨우내 참았던 수줍은 꽃 웃음으로 화답하고, 지리산을 품고 흐르는 섬진강 주변의 꽃소식도 우리에게 바깥나들이를 재촉하며 좀 쑤시게 한다. 또 눈 밝은 사람들이 무등산 덕산골에 숨어있는 현호색, 꿩의 바람꽃까지 발싸심하며 찾아 전해주니 이만하면 봄은 우리 곁에 깊숙이 자리잡고도 남음이 있다.  
  
 그리고 학교도 겨울방학 내내 새학년을 준비하느라고 분주했다. 오래되어 퇴색한 복도를 환하게 도색하고, 계단도 안전한 재질로 새롭게 교체하고, 교정 이곳저곳을 세심하게 살펴서 보수를 끝냈다. 학교 밖 통학로 주변도 유관기관과 함께 무단횡단 방지용 울타리를 설치하고 학교 앞이라는 경각심을 일깨우려는 노란색 인도도 산뜻하게 단장했다. 도서관에는 새 책 냄새 가시지 않은 교과서가 분류작업이 끝난 뒤 주인을 기다리고 있고, 새학년 학급편성과 함께 담임선생님과 교실 배정도 모두 끝난 상태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평생 교단에서 3월을 맞이했지만 학교문을 열지 못하고 학생들을 만나지 못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3월에 장독 깬다는 겨울 같은 추위가 있었어도 개학만큼은 어김없이 지켜지던 약속이었는데 이렇게 기약 없이 4월마저 보내고 있다니! 한마디로 허탈하다. 우리가 이럴 때 아이들과 학부모들은 오죽하겠는가. 외출 자제에다가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려니 몸과 마음이 얼마나 답답하고 또 답답하랴. 교정 좁음을 탓할 만큼 생떼같이 뛰놀고 운동하며 하루하루 길어지는 봄날을 땀과 열정으로 채워가야 할 학교가 너무너무 적막하기만 하다. 학교는 주인공인 학생이 있어야 비로소 살아있는 유기체인데…….
  
 눈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말이 있다지만 이 모든 일이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 때문이라고 하니 문명의 눈부심 또한 허망하다는 생각이 도둑처럼 자리잡는다. 실제로 우리보다 앞서간다는 미국이나 유럽의 여러 국가들이 코로나19 앞에서 무참히 무너지는 모습을 보면서 빗나간 문명의 방향성이 가져다 준 철저한 보복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앞선다. 이는 모두 인간들의 지나친 욕망이 빚어낸 불편한 부산물이자 자업자득임을 치열하게 성찰하라는 무서운 경고가 아닐까? 
  
 비록 3, 4월을 이렇게 보내긴 해도 이번 봄이 주는 교훈과 가르침이 두고두고 오래오래 기억되었으면 좋겠다. 그러려면 왜곡된 시선이나 가짜에 휘둘리지 않고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보고 느끼고 판단할 수 있는 개인과 사회의 역량이 커졌으면 좋겠다. 코로나19는 정치나 종교, 이념이 아니다. 나아가 자칫 이번 재난이 우리에게 바이러스보다 더 나쁜 영향을 끼칠 수 있음도 경계해야 한다. 각자도생(各自圖生)이라는 야박한 개인주의에 더욱 함몰되는 사회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자신의 병원문을 닫고 대구로 달려가는 의병(義兵) 같은 의병(醫兵)이나 어려움과 고통을 함께 나누려는 분들의 헌신과 봉사가 우리 사회의 희망 바이러스요, 강력한 치료 백신이다. 바로 이런 부분을 우리 아이들과도 가슴뭉클하게 나누고 싶다. 
  
 코로나19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래서 여전히 힘들고 어렵다. 이런 때일수록 전문가의 목소리와 존재감이 더욱 크고 빛났으면 좋겠다. 지금 직면하고 있는 재난 위기는 우리가 너무나 값비싼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지만 기어이 극복해야 할 엄연한 바이러스일 뿐이니까.
  지금 학교에서는 선생님들이 온라인 수업준비와 생활교육, 학생들의 학습을 재촉하느라 더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다. 비록 궁여지책으로 온라인개학을 했다지만 하루속히 학교문이 열리고 아이들의 생기 넘치는 소리로 교정이 가득 넘쳐나기를 화단의 예쁜 꽃들과 함께 간절히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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