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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뉴스 창간기념 기획연재(소설)/소쇄원에서 꿈을 꾸다(18)

문인주는 집에 돌아갈 생각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겨 대숲 사이 길을 내려왔다. 그는 매표소 옆에 맥없이 쪼그리고 앉아 있는 최 선생을 발견하고 주춤했다.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진주 찾았어요? ”
문인주는 최 선생의 표정으로 보아 진주를 찾지 못했으리라는 것을 짐작하고 있으면서도 그렇게 물었다. 최 선생이 두 손으로 무릎을 짚고 힘겹게 일어서며 고개를 무겁게 흔들었다. 최 선생은 금방 눈물이라도 쏟을 것처럼 시울이 펑 젖어 있었다.
“오늘 오전에 유둔재 안통 마을을 다 둘러보고 오후에는 재 너머 정곡마을을 돌아다니다 왔네. 아무래도 개장수가 끌고 간 것 같어. 불쌍한 진주, 개고기 먹는 사람들 다 총으로 쏴버리고 싶다니께.”
"돌아오겠지요.”

최 선생은 문인주가 묻는 말에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문인주는 자전거를 끌고 와서 최 선생을 뒷자리에 태웠다. 그는 오토바이 대신 자전거로 출근했다. 일찍 일어나는 날은 시간이 충분하기 때문에 자전거를 타고 출근한다. 최 선생은 자전거에 탄 후로 한 마디도 입을 열지 않았다. 문인주는 느릿느릿 자전거 페달을 밟으면서 아무래도 진주를 찾을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진주를 찾지 못하면 최 선생이 계속 참담해 할 터인데 어찌 해야 좋을지 암담했다. 상심이 너무 커서 자리에 눕게 될지도 몰랐다. 문인주는 끝내 진주를 찾지 못하면 유기견센터에 가서 진주 대신 검정 강아지를 분양받아올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교육연수원 모퉁이를 돌아 떡집 앞을 지나는데 우체국 앞에 얼핏 검정 개 한 마리가 도로를 가로질러 가는 것이 보였다. 문인주는 혹시 진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두 다리에 힘을 주어 페달을 밟았다. 최 선생도 검정개를 보았는지 큰 소리로 진주를 외쳐 불러댔다. 개는 금방 모습을 감추어 버렸다. 최 선생은 자전거를 멈추게 하고 초등학교 모퉁이 골목으로 뛰어갔다.

문인주도 자전거를 타고 뒤따라갔다. 최 선생이 목청껏 계속 진주를 외쳐 불러대며 골목 안을 살펴보았으나 검정개는 다시 보이지 않았다. 문인주는 진주가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다. 조금 전에 보았던 검정개가 진주라면 주인의 목소리를 듣고 금방 달려왔을 것이었다. 두 사람은 면사무소가 있는 연천 마을 골목을 다 돌아다니며 진주를 찾아보았다. 어느덧 날이 어둑해졌다. 문인주가 그냥 돌아가자고 했으나 최 선생은 한사코 듣지 않았다. 그는 조금 전에 보았던 개가 틀림없이 진주라고 우기기까지 했다. 잠시 후 두 사람은 면사무소 앞 버스 정류소 의자에 앉아 있었다. 최 선생은 정류장에서 만난 마을 사람들을 붙들고 검정개가 누구네 개냐고 매달리며 물었다. 모두들 연천 마을에는 검정개가 한 마리도 없다고 했다. 이상한 일이었다. 그렇다면 조금 전 그들이 우체국 앞에서 보았던 검정개는 개가 아니었단 말인가.
“우리들이 잘 못 본 것 같네요. 그냥 돌아가지요.”
“아닐세. 자네도 분명히 보았지 않은가.”
“고양이일지도 모르죠.”
“ 틀림없이 우리 진주가 맞아.”
“마을 사람들이 연천에는 검정개가 한 마리도 없다는데요? ”
“거짓말을 하는 거겠지. 내가 주인이라는 걸 알고 거짓말들을 하고 있는 게야.”

그러면서 최 선생은 진주를 찾을 때까지는 집에 돌아가지 않겠다면서 꾸역꾸역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는 골목 안을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문인주는 참으로 난감했다. 그가 보기에 최 선생은 쉽게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갈 것 같지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최 선생 혼자 두고 그만 돌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문인주는 하는 수 없이 자전거를 끌고 최 선생 뒤를 따라 어둠이 깔린 골목을 이리 저리 헤집고 다녔다. 두 사람은 밤 아홉시가 될 때까지 연천 마을을 헤집고 다니다가 지쳐서 집으로 향했다. 최 선생은 돌아가지 않겠다는 것을 문인주가 날이 새면 다시 와서 찾아보자고 간신히 설득했다.

문인주는 최 선생과 헤어져 집으로 돌아왔다. 다른 때 같았으면 같이 최 선생 집으로 들어가서 저녁을 준비해주었을 터인데 그날은 그냥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자전거를 끌고 어두운 골목을 헤매느라 지쳐버린 그는 쉬고 싶었다. 괜히 헛되게 두 시간 이상을 헤맨 것을 생각하면 뿌질뿌질 울화가 치밀기도 했다. 그는 저녁밥도 뜨는 둥 마는 둥 하고 자리에 누웠다. 몸은 바윗덩이에 눌린 것처럼 무거웠는데도 막상 잠을 청하자 정신이 뙤록뙤록 살아났다. 그의 정신이 대봉대에서 잠이 들었을 때 만났던 양산보 생각으로 깊숙이 빨려들어갔다. 양산보 생각과 함께 문인주 자신이 살아왔던 지난 일들이 시간 순서대로 하나씩 되살아났다.

문인주는 양산보와 자신의 삶이 조금은 닮은 것 같으면서도 근본적으로는 아주 다르다고 생각했다. 양산보가 세상에 발을 들여놓기도 전에 절망을 안고 산골로 돌아와 은둔했었다면 문인주는 현실정치에 뛰어든 후, 자신의 입지를 찾기 위해 계속 현실정치를 비판하고 투쟁하다가 결국은 패배했다고나 할까. 80년 5월, 대학교 3학년이었던 문인주는 이른바 신군부독재 타도를 위해 온몸을 던져 투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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