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화>
 그녀는 벌떡 일어나 수돗가로 나갔다. 남자는 수술용 장갑을 끼고 쭈그려 앉아 졸복을 손질하고 있었다. 냄비 뚜껑이 수증기에 밀려 올라가고, 중력에 끌려 내려오느라 달그락 소리를 냈다. 남자는 손질한 졸복을 냄비에 넣었다.
 
“잡술라고요?”
  화들짝 놀란 그녀를 남자가 태연히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메, 오메, 시방 이거이 뭔 소리다요? 복쟁이를 잡순다고라우? 또 초상칠 일 있소? 집에 가서 잡술라면 잡수시고, 여그서는 잡수지 마씨요!”
 
다다다 쏘아붙이고 나서 잽싸게 가스레인지 불을 끄고, 뜨거운 냄비를 냉큼 들어 수돗가에 버리려 했다. 남자가 황급히 그녀를 막았다. 그녀는 남자의 만류를 무시하고 내용물을 수돗가에 몽땅 쏟아버렸다. 이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손님의 의사와 반하는 일을 저질렀지만 걱정보다 안심이 되었다. 남자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더니, 텐트 안으로 들어가 작은 생수병 하나를 꺼내왔다.
 
 “이게 뭔 줄 아세요?”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물 같은데 물이라면 남자가 물어보지 않았을 것이다.
  “해독젭니다. 복어독 해독제!”

  남자가 으스대며 그녀를 보았다. 해독제가 있으니 괜한 걱정도, 호들갑도 떨지 말라는 뜻이 표정에 진하게 담겨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우쭐대는 남자를 이해할 수 없었다. 해독제도 금시초문이고, 해독제를 믿고 졸복탕을 먹으려 한다는 것이 마치 죽으려고 작정한 사람처럼 보였다. 남자가 어떻게 죽는 건 알 바 아니나, 그녀 집에서 죽는 것만큼은 막고 싶었다.
 
 “그렇게 잡숫고 싶으면, 텐트 걷어서 다른 디로 가서 잡수씨요.”
  남자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랜턴이 없다고 했잖습니까? 이 깜깜한 밤에 제가 어디로 가겠습니까?”
  “그럼 날 밝을 때까지 참았다가 다른 디로 가시던지라우! 굳이 지금 잡수지 않애도 되지 않겄소? 정 배고프면 라멘이라도 하나 끓여 드릴텐께 복쟁이탕은 잡수지 마씨요.”
 
 남자가 배고프다면 라면은 물론 밥상이라도 차려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남자는 그런 요구는 하지 않고 자세를 고쳐 잡았다.
  “아주머니, 릴렉스하시고 제 말 좀 들어보세요.”
  “릴렉슨지, 릴슨인지는 때려치우시고, 여그서는 절대 안 된당께라우!”
  그녀는 험악한 인상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그녀의 거친 호흡이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리던 남자가 다시 입을 열었다.
  “저는 제약회사에 근무하는데요, 회사의 명운을 걸고 수년간 복어 독을 집중적으로 연구했습니다. 복어 독으로 피해를 입은 사례가 세계적으로 수만 명은 되거든요? 해독제가 있었다면 그 많은 분들이 피해를 당하지 않았을 거 아닙니까? 그래서 명운과 사명감으로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남자 말에 그녀는 남편이 떠올랐다. 그때 해독제만 있었어도 남편이 죽지 않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도 들었다. 남자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졸복탕을 끓이지 말라고 해도 되지 싶었다. 그녀는 은근히 다음 말을 기다렸다.

  “복어 천적은 복어밖에 없다는 사실에 착안해 복어 습성부터 연구했습니다. 복어 이빨이 튼튼하잖아요? 그런데도 복어는 아주 간사하게 조금씩 먹어요. 낚시할 때 입질을 파악하기 어려울 정도로 말입니다. 그 튼튼한 이빨로 간사하게 먹는 이유가 무엇일까. 초기 연구는 거기에 포커스를 맞추었습니다. 복어가 복어를 먹는데 독 때문에 죽을 수 있잖아요? 그걸 알고 복어가 복어를 잘근잘근 씹으며 아가미로 바닷물을 빨아들여 일차적으로 세척하는 과정을 거친다고 판단하여, 복어 독과 나트륨이 상관관계가 있을 거라는 가설을 세웠습니다. 가설에 따라 피해 사례를 조사했더니 복어를 손질하여 바닷물에 세척한 것보다 민물로 세척해 탕을 끓인 사람들의 피해가 훨씬 크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나트륨과 독의 상관관계를 연구했습니다.”
 
 남자가 말하는 동안 아이스박스 안에서 졸복이 울어댔다. 드넓은 바다에서 살다가 좁은 곳에 갇혔다는 게 서러운지, 운명을 다했다는 사실이 서러운지 졸복이 우는 소리가 끊임없이 아이스박스 뚜껑을 비집고 나왔다. 개구리울음 소리 같은 중저음으로 복, 복, 우는 소리. 참으로 오랜만이다. 남편 따라 배에서 낚시할 때, 바닷물이 드나드는 어창에서 복, 복 우는 졸복 소리를 들었다. 그녀는 그때 처음 알았다. 졸복도 운다는 것을. 아이스박스 안에서 끊임없이 울어대는 졸복 소리가 저승사자에게 인도하는 전령사의 주술 같아 오싹한 기분에 잠깐 몸을 떨었다.
  남자가 또 졸복으로 탕을 끓일까 두려웠다. 그녀는 아이스박스 뚜껑을 열어 졸복을 수돗가에 쏟아 부었다. 남자는 그녀의 돌출행동에 당황하여 입을 닫았다. 졸복 여덟 마리가 바닥에서 나뒹굴었다. 남자가 졸복을 주우려고 허리를 숙였다. 그녀 발이 남자 손보다 빠르게 졸복을 하수구 속으로 밀어 넣었다. 남자가 짐짓 화난 표정으로 쏘아보듯 그녀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래서요, 라며 그녀는 다음 말을 재촉했다. 남자가 입을 열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흘렀다.
 
“나트륨 연구에 만족하지 않고 복어 독도 연구했습니다. 이열치열이란 말 들어보셨지요? 우리는 이독치독을 염두에 두었습니다. 복어 독의 어떤 성분이 복어 독을 중화시키기에 복어를 먹어도 죽지 않는지, 막대한 비용과 시간을 투자해 원인을 찾았습니다.”
  “알아냈소?”

  찾았다는 말에 자신도 모르게 질문이 튀어나왔다. 남자는 입을 닫아 닫고 뜸을 들였다. 그녀의 궁금증을 극대화하려 했다면 성공이다. 정말로 결과를 궁금해 하고 있으니까. 그녀는 눈으로 대답을 다그쳤다. 남자가 물론이죠, 라고 대답하고 플라스틱 병을 그녀에게 보여주었다. 작은 생수병이었다. 남자는 마치 이 안에 연구 결과물이 들어있다는 듯한 표정으로 병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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