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기술의 발달이 빛의 속도로 이루어지는 시대다. 특히나 기계 분야의 발전 속도가 눈부실 정도다. 기계나 장비가 발전할수록 사람들이 설 자리는 정비례하여 줄어들 수밖에 없다. 운영자에게는 희소식이겠지만 일자리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는 결코 희소식일 수 없다. 시대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일자리 구하기도 힘들다. 적응하더라도 수명이 그리 길지 않다. 숙련된 기술자 또한 마찬가지다. 산업기술 발전 정도가 워낙 빠르니까 말이다.
 
나는 광주 하남공단에서 방전기사로 직장생활을 했다. 방전기사란 와이어 커팅을 전담하는 기술자를 일컫는다. 0.25mm 전후의 얇은 와이어를 전기로 가열해 절삭이 쉽지 않은 금속을 커팅하곤 했다. 내가 갓 입사했을 때 1인당 기계 1대를 잡고 일했다. 하지만 8년이 지나니 혼자 5대를 잡고 일해야 했다. 정들었던 분들이 하나둘 떠났고, 나도 언제 잘릴지 몰랐다. 아무리 넉넉하게 잡아도 10년을 넘기지 못할 것 같았다. 아무리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해도 방전기사로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10년 후에는 나이가 찰대로 차서 직장을 다시 잡는 것이 불가능할 것이었다.

  방전기사 8년을 마감하고 담양으로 직장을 옮겼다. 축산업에 입사했다. 쉴 때 틈틈이 이모를 찾아가 일손을 거들었다. 이모가 순창에서 복분자를 재배했는데, 일손을 거들다 보니 자연스럽게 농업에 관심을 가졌다. 지켜보니 잘만하면 농사도 돈이 될 것 같았다. 작목을 눈여겨보기 시작했다.

  담양으로 직장을 옮긴 2년 후나 될 것이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블루베리를 배웠다. 내가 블루베리를 선택한 것은 복분자 경험이 참고가 되었다. 이모를 도와주고 느낀 점은 복분자는 생과를 판매하는 것보다 가공하여 판매하는 비율이 높다는 점이었다. 수확 후 판매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가공까지 해야 하니 젊은 나의 눈에 불편한 점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런데 블루베리는 씻을 필요도 없고, 깎을 필요도 없으니 먹기 편했다. 맛도 다양했다. 달고, 시고, 새콤하고. 가격도 타 과수와 비교해도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블루베리를 배우고 나서 귀농을 결심하고 블루베리 재배를 시작했다. 내가 귀농을 결심한 건 잘릴 일이 없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고용 때문에 불안한 삶을 이어가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혼자 농사지어서 얻을 수 있는 소득과 연봉을 따져보니 엇비슷했다. 나는 땅을 임대하여 블루베리를 심었다.
 
 내가 블루베리를 선택한 이유가 맛이나 편리성 때문만은 아니었다. 블루베리는 어떤 장비로도 수확할 수 없다는 것을 고려했다. 현재도 과실이 큰 것은 장비로 수확 가능하고, 시간이 흐를수록 성능이 우수한 장비가 개발되어 다양한 농장에서 사람보다 몇 배의 일 할 것이다. 하지만 블루베리는 그 어떤 장비로도 수확하기 힘들 것 같았다. 오직 노동력에 의존해야 하니 가격이 안정적일 것 같았다. 블루베리 파동으로 묘목을 뽑아낸 농부가 많다는 것도 알고 있었지만 말이다. 그런 이유가 블루베리를 선택하는데 한몫했다. 나도 모르게 기계에 피해의식을 갖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귀농한 지 올해로 2년째이니 초보 농부나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나름 미래를 설계했다. 내 설계의 기준은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직장의 급여다. 직장은 오래 다닐수록 급여가 올라가므로 그와 비슷한 소득을 올리려면 투자를 반드시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블루베리를 노지에 작목하여 4천만 원의 소득을 올리는 것보다 하우스를 짓고, 가온비로 이삼 백 더 투자하여 5천만 원 이상을 올리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 땅은 필수다.
  땅을 구입하고, 하우스를 짓고, 관정을 파고, 승압을 하는데 2억이 필요했다. 모아 놓은 돈이 없으니 대출을 받는 방법 밖에 없었다. 담보가 있으면 좋겠지만 마땅한 담보도 없었다. 나 같은 사람에게 귀농창업자금은 요긴했다. 창업대상자로 선정되어 계획을 추진 중이다. 더불어 다른 작목도 공부 중이다.
 
 나는 지금 선도농가에서 샤인머스켓을 배운다. 샤인머스켓은 고품질 포도다. 블루베리 수확은 6월이면 끝나고 샤인머스켓은 10월 중순을 전후해 수확을 시작한다. 블루베리와 샤인머스켓의 수확 시기가 겹치지 않는다는 말이다. 블루베리와 마찬가지로 포도 역시 혼자 관리 가능한 품종이다. 손길을 많이 필요로 하는 수확기에는 예외지만 블루베리와 겸해도 얼마든지 혼자 가능하다. 당장은 블루베리에 전념하겠지만 여유가 생기면 샤인머스켓까지 재배할 요량으로 열심히 공부 중이다. 고용에 대한 불안으로 농사를 시작했지만, 괜히 농사를 지었다는 후회를 하지 않도록 하루하루 최선을 다한다. 1인 기업을 운영한다는 마음으로 매사에 임한다. 그래서일까. 설핏 가능성이 보인다. 희망이 보인다. 방전기사 때는 보이지 않았던 희망이 있다는 게 무엇보다 좋다. / 강성오 군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 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강성오 군민기자  webmaster@dnnews.co.kr

<저작권자 © 담양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