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화>

명환은 대로변의 좀 큰 유곽을 지나자마자 몽린을 끌고 재빨리 골목에 숨었다. 백여 보 차이를 두고 뒤따르던 자들은 골목을 지나쳤다가 상대가 안 보이자 아차! 하고 숨을 죽였다. 명환은 그들 앞에 불쑥 나서며 왜어로 말했다.
“우리를 따르는 이유를 말해라.”
긴 칼을 찬 두 왜인은 말없이 주위를 살폈다. 덩치가 큰 쪽이 나직이 답했다.
“누구를 만나고 오는 길이냐?”
“왜 그것을 묻는가?”
“묻는 말에만 대답해! 살고 싶거든.”
“흐응.”
명환이 부러 소리 내 코웃음을 쳤다. 그 태도에 욱했는지 키가 작은 쪽이 한 발 앞으로 나섰다. 몽린은 느긋한 말투로 얼렀다.

“그대들이 빤히 보고 있었을 터이니 사실대로 말해 주지. 조선의 사신을 뵙고 오는 길이야.”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느냐?”
“허허, 무례한 자들이로군. 남의 이야기를 묻는 것은 예의가 아닌데.”
두 왜인은 동시에 칼을 빼들었다. 먹장 속에서 푸른 칼날이 희부옇게 빛났다. 그러나 몽린이 보기에 중단 자세로 놓인 상대의 칼에 살기는 없었다. 죽일 생각은 없는 모양이었다.
“말을 안 하면 너희는 죽는다.”
“그대들은 우리를 죽이지 마라는 명령을 받을 듯한데 가서 주인께 전해라. 오늘 밤의 일은 비밀에 부치겠다고.”
말하고 나서 몽린은, 이런! 하고 후회했다. 돌연 상대방이 칼끝을 꼿꼿이 세우고 곧 들어올 태세로 바뀌었다. 두 자객을 보낸 주인은 만일 자신의 정체를 눈치채면 죽여도 된다고 명한 듯했다. 우직한 상대방은 그렇게 판단해 진짜 죽이려는 것이다. 아무래도 주인은 죽일 생각이 없는데 자신만만한 몽린의 태도에 비위가 거슬린 자객은 살의를 보였다.

어느새 칼을 빼든 명환은 오른발로 스르르 땅을 밀었다. 그가 강한 상대와 싸울 때 취하는 안자세(雁字勢)였다. 칼을 왼쪽 어깨에 걸머멨는데 칼날은 하늘을, 눈은 바른쪽을 향하고 있어 조선의 검법을 모르는 상대에게는 허술해 보였을 터. 본국검법은 칼을 쓰기 전에 현란한 기예로 상대를 제압한다.
“오잇!”
명환이 백사롱풍세로 먼저 찌르고 들어갔다. 그것은 뱀이 상대를 공격할 때 머리를 상하좌우로 흔들 듯 칼끝을 현란하게 움직여 순간적으로 적의 눈을 흐트러뜨리는 세법이었다. 말 그대로 칼춤을 추는 듯했다.
“허, 헉!”
두 자객은 기겁해 대여섯 보를 물러났다. 눈 깜짝할 사이에 칼날이 십여 차례나 번쩍였다. 검깨나 놀린다는 그들도 명환의 칼을 거의 못 볼 만큼 칼이 어지러웠다. 몽린은 낮게 소리쳤다.
“죽이지 마!”
“하아잇!”
명환은 한 걸음에 네댓 보를 뛰더니 앞선 자의 어깨와 양쪽 허리를 칼등으로 서너 차례 때렸다. 안자세는 기러기가 걸어 가듯이 낮은 자세로 순식간에 접근해서 상대의 양쪽 허리를 베는 기법이다. 중단 자세로 상대의 머리와 가슴을 노리던 자객은 쿵, 소리를 내며 앞으로 고꾸라졌다. 남은 자객은 낯선 검법에 질렸는지 공격을 못하고 주춤거렸다. 몽린은 부드럽게 타일렀다.

“돌아가서 전해라. 다음에 이런 얕은 수를 쓰면 조선국 사신 나리께 직접 고할 것이라고.”
몽린은 허겁지겁 사라지는 자객을 보며 쯧쯧거렸다. 보나마나 오윤겸을 수행하는 대마도의 왜인이 보냈을 터. 주군인 소 요시나리와 중신인 야나가와 시게오키는 얼마 전에 가독을 이어 받아 가문을 이끄는, 열네댓 살의 젊은이였다. 각자 가신의 도움을 받아서 쇄환사 일행을 돕고는 있는데 나이가 어려서 허둥대고 생각이 얕았다. 며칠 전에도 오윤겸은 요시나리가 도무지 피로인 모집을 도울 뜻이 없다고 질책했었다. 쇼군의 명으로 사신을 안내하는 척하고는 있지만 다른 영주의 눈치를 살피며 포로의 송환을 오히려 방해하기도 했다. 시모노세키나 히로시마에서도 사신을 보러 오는 피로인이 간간이 있었는데 문밖에서 대마도 왜인들이 가로 막아서 돌아서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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