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화>
  “나트륨이 소금이잖습니까? 나트륨이 복어독을 중화시키지 않더라도 사람에게는 도움이 됩니다. 북어독을 먹으면 무엇보다도 빨리 토하는 게 중요하거든요? 진한 소금물을 마시면 금방 토하잖아요? 거기에다 복어 독을 중화시키는 성분을 찾아 여기에 농축해 놓았습니다. 복어 독에 중독되었다 싶을 때, 이 해독제를 마시면 일차적으로 구토를 일으켜 위에 들어있는 독성분을 배출시키고, 이차적으로 독을 중화시켜 인체에 해가 없도록 만들었습니다.”
 
남자가 정말 대단한 결과물이라는 듯 영탄의 표정으로 다시 해독제로 눈길을 돌렸다. 그녀는 남자가 그녀 집에 온 이유를 짐작했다. 남자가 제약회사에 근무한다면 환자들의 정보를 수집하는 것은 일도 아닐 것이다. 연구했으니 임상시험을 하고 싶을 텐데, 목숨을 담보로 하는 실험이라 희망자 찾기가 쉽지 않아, 거래하는 병원에 부탁해 정보를 얻어 그녀 같은 사람을 찾아다닌 듯했다. 아이스박스에 도마며 가스레인지와 식기까지 준비한 남자가, 랜턴과 갯바위장화를 깜빡했다기보다 의도적으로 챙기지 않았거나, 있으면서도 없는 척하며 그녀 집에 머무를 이유로 써먹은 듯했다. 마당에 불을 밝히면 어둑한 방에서도 남자의 일거수일투족을 선명하게 관찰할 수 있다. 남자는 마치 무대에서 조명을 받는 연기자처럼 행동할 테니 지켜보라는 의미로 불을 밝혀달라고 요청했을 듯했다. 수돗가에서 시끄럽게 부산을 떠는 것도 그녀를 깨우려는 의도된 행동일 것이다. 만약 그녀가 산에 살고 있다면 남자는 반 건조한 졸복을 생선으로 둔갑시켜 어떻게든 먹게 했을 것이다.
 
그녀는 해독제를 갖고 싶었다. 병을 진단받고, 다양한 치료법을 알아보았으나 별다른 약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졸복을 생각했다. 이독치독이라며 졸복을 권한 사람도 있었다. 그 비루한 삶이라도 연장해보고 싶어 졸복을 먹으려 했는데 남편이 떠올라 도저히 끓일 수 없었다. 그녀는 손질한 졸복을 냉동실에 넣고 말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틈나는 대로 냉동실에 눈길을 돌렸지만 열어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런데 해독제라니. 남자가 솔직하게 임상시험에 응할 수 있는지를 타진하면 더 좋겠는데, 그런 기미가 느껴지지 않았다. 임상 테스트 도중 죽는다면 장례비 걱정은 없을 거 아닌가. 딸에게 장례비까지 떠넘긴다면 죽어서도 눈을 감지 못할 듯했다.

  “시중에 나왔다요?”
  남자가 고개를 가로로 흔들자 그녀는 심한 낭패감이 일었다.
  “그람, 그걸 나한테 좀 팔 수 있소?”

  남자가 답하지 않고 어디에 쓸 건지 물었다. 팔지 않겠다는 말 대신 어디에 쓸 것인지 묻는 걸 보니 한 가닥 가능성이 엿보였다. 남자는 그녀가 사용할 거라는 걸 이미 알고 있을 테고, 그녀도 남자가 은근히 그렇게 유도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남자에게 심적 부담을 주기 싫었다. 사실대로 말했다가 부담을 느껴 팔지 않을지도 몰라, 민박집이나 동네에서 누군가가 졸복을 먹고 탈이 날 경우를 대비해, 비상용으로 비치해놓고 싶다고 했다. 남자가 고개를 무겁게 끄덕였다.

  “팔 물건이 아니라 돈을 받을 수 없습니다. 아주머니 부탁을 거절할 수 없어 그냥 드리긴 하는데요? 너무 맹신 마시고 위급할 때는 바로 119부터 불러야 합니다.”
  남자는 해독제를 건네주기 전에 다짐을 받듯 강조했다. 복어를 먹지 않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고, 이상하다 싶을 때는 119를 불러야 한다는 말을 몇 번이나 했다. 그녀는 알았다고, 먹으려는 게 아니라 비상시를 대비한 차원이란 말을 남자가 강조할 때마다 반복했다. 그제야 남자가 해독제를 건넸다. 그녀는 고마운 마음에 라면이라도 드실 것인지 물었다. 남자는 낚시나 더 하겠다며 몸을 돌렸다. 그녀는 남자가 낚시에 집중하는 동안 하수구를 뒤졌다. 아이스박스에 담겼던 바닷물이 하수구 웅덩이에 고여 있었고 거기에 졸복이 있었다. 예상대로였다. 끓는 물에 넣었던 졸복은 아이스박스에서 나온 바닷물에 밀려가고 없었다. 그녀는 졸복 한 마리를 냉큼 건져 부엌으로 향했다.

  불을 켜고 졸복을 싱크대 도마 위에 올렸다. 졸복이 확충낭에 공기를 잔뜩 집어넣었다. 타원형 몸이 동근 공처럼 부풀어 올랐다. 원래보다 두 배는 더 커 보였다. 졸복이 조금만 더 공기를 마시면 뻥, 소리를 내고 터질 것 같았다. 그녀는 손질하려고 왼손으로 졸복 목을 잡았다. 검푸른 맨살에 윤활제를 듬뿍 발라 놓은 것처럼 목이 미끄러웠다. 부풀대로 부푼 하얀 가슴에는 돌기 같은 가시가 빽빽했다.
  양쪽 아가미를 누르니 졸복이 주둥이를 벌려 위아래 이빨 네 개를 드러냈다. 아가미를 잡은 손에 힘을 주자 졸복이 무딘 식칼처럼 튼튼해 보이는 하얗고 날카로운 이빨을 갈았다. 치아가 좋은 것이 오복 중 하나라고 했는데, 튼튼한 이빨 때문에 복 받은 고기라는 의미로 복어라는 이름이 붙었는지도 몰랐다. 남편은 복어 이빨을 흉기처럼 여겼다. 멸치 그물에 병치, 갈치 등 잡어 몇 마리와 월척은 훌쩍 넘어 보이는 복어가 걸려 나왔다. 버리기 아까운 크기였다. 남편은 날카로운 이빨로 다른 고기를 물어뜯을 수 있다며 펜치를 찾았다. 하지만 펜치가 배에 실려 있지 않아 이빨을 뽑지 못했는데 입속에 들어온 갈치 꼬리를 복어가 잘라버렸다. 낚싯줄 자르는 정도야 껌 씹기도 아니고, 복어가 작심하면 사람 손가락도 절단할 것 같았다.
 
 졸복 배를 가르려는 그녀 손길이 떨렸다. 남은 삶을 넉 달 예상했으니 의사 말대로라면 이제 석 달 남았다. 그녀는 망설였다. 어차피 가는 인생, 고통으로 석 달을 살다 가는 것보다, 지금 가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갑자기 가면 딸은 또 얼마나 슬퍼할까. 아니야. 석 달 뒤라고 슬픔이 줄어들 리 없잖아? 그래도 딸에게 이야기라도 하고 먹어야 하는 거 아닌가. 부모가 모두 졸복 때문에 죽었다는 게 딸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까. 그녀는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시간을 보니 새벽 두 시. 깊이 잠들어 있을 시간이다. 이 시간에 한 번도 전화한 적이 없으니 전화가 가면 큰일이 벌어진 줄 알고 깜짝 놀랄 것이다. 그녀는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담양뉴스  webmaster@dnnews.co.kr

<저작권자 © 담양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