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양이야기⑧삼인산(三人山)(상)

*삼인산

*삼인산(등산안내도)

수북면 오정리와 대전면 행성리에 접해 있는 삼인산은 많은 전설을 갖고 있는데 조선 태조 이성계에 얽힌 전설은 이 산이 명산임을 말해주고 있다. 나라를 세운 뒤로 태조 이성계는 이 나라의 장래와 사직을 위해 신에게 의지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조선 방방곡곡의 사찰을 찾아다니며 불공을 드리기로 했다. 이 나라의 모든 백성과 창업이 수백 세에 이르기까지 길이 번영하도록 불공을 드리는 것이었다.

어느 날 태조는 전라도 무등산에 이르렀다. 무등산에 올라 기도를 드린 지도 벌써 삼칠일이 지났다. 그러나 태조에게는 아무 영험도 나타나지 않자 매우 불안했다.
“벌써 삼칠이 지났음에도 아무 영험이 없으니 이건 필시 과인의 부덕의 탓인가 하오.”
태조가 시랑을 향해서 입을 열었다. 옆에 대령하고 있던 시랑은 태조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올 때마다 조바심이 났다. 뭐라고 위로해야 좋을지를 몰랐다.
“황공하옵니다. 마마께옵서 부덕하시다는 말씀 천부당 만부당하온 줄 아뢰오.”
시랑의 입술은 바짝바짝 타들어갔다. 이마에서는 땀방울이 솟고 등에는 식은땀이 감돌기 시작했다.
“그대는 과인의 마음을 안정시키려고 그런 말을 하는가. 기도의 영험을 얻지 못하는 것은 과인의 탓이요. 어찌 무고한 백성과 시랑에게 돌리겠소. 아무래도 과인이 부덕하여 신령께서 노하여 그런가 하오.”
태조의 어조는 탄식과 절망이 섞인 말이었다. 시랑은 태조의 그와 같은 자비심에 눈물이 나오도록 고맙기까지 했다. 창업하기 전에는 날아가는 새도 떨어뜨릴 만큼 무섭던 태조가 아니었던가. 싸움터에서는 어느 적군도 감히 덤비지 못할 만큼 무섭던 태조가 아니었던가. 그러한 태조가 어찌 저토록 자비로울 수가 있단 말인가. 시랑은 태조에게 지극히 감사할 뿐이었다.

“마마 다시 삼일기도를 드림이 좋을 것으로 믿사옵니다. 예부터 제당의 위력은 온 대지의 신령들을 영솔한다 하였사온즉 부디 다시 불공을 드리움이 지당한 줄로 아뢰오.”
시랑의 이 말을 들은 태조는 무슨 생각에서인지 안색을 고치며 입을 열었다.
“시랑, 과연 시랑의 뜻이 과인보다 깊구려. 과인은 불공을 그만 둘까 하였던 참인데 시랑의 말대로 삼일기도를 드릴까 하니 그리 아오.”

시랑은 곧 삼일기도 준비를 분부했다. 모든 준비가 갖추어졌다. 한데 태조가 시랑에게 물었다.
“시랑은 이곳 무등산 산신령에 관해서 아는 바가 있던가요?”
“소신의 얕은 지식으로 무얼 알겠사옵니까만 고서에 예부터 백팔 나한이 있었사옵고 삼배육십이나 되는 암자가 있었다고 하온데 수많은 사신들은 나한에게 공양을 바쳐왔다고 합니다.”
“백팔 나한이 있다니요? 그렇다면 이 곳에 부처님의 사자좌가 있다는 말인가요?”
“그런 줄로 아뢰오. 여러 부처님의 설법을 한다고 들었사옵니다.”
“그렇다면 과연 무학대사의 말이 참말이었구려.”

태조는 시랑에게 설명했다.
“한양에 도읍을 세울 때의 일이었소. 무학대사가 과인에게 이르되 한양의 북악보다는 전라도의 무등이 보살이라 하였소. 무등은 흡사 지단이 뻗은 것 같아서 보살의 거처로는 더 이를 데가 없다 하였소.”
태조는 멀리 무등의 봉우리를 바라보며 지난날을 되새기듯 말없이 시선을 던졌다. 아마 삼칠일의 기도가 끝났음에도 아무런 영험을 얻지 못한 것이 적이 서운한 모양이었다.

태조는 침전으로 들어가서 자리에 누워 지친 몸을 쉬었다. 그러나 잠은 오지 않았고 눈앞에는 숱한 환상들이 떠올랐다. 특히 희생당한 많은 고려 충신들의 모습이 어른거렸다. 그들의 모습은 한결같이 태조를 저주하는 표정들이었다. 태조는 견디다 못해서 옆에 있는 칼을 짚고 일어났다. 이마에서는 식은땀이 배어나왔다. 태조의 가슴 속은 무거운 것이 짓누르는 듯이 답답했다. 몽롱한 상태에서 벗어나 정신을 차려보니 옆에는 신하들이 머리를 조아리며 대령하고 있었다. 태조는 심한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꿈에서 깨어났던 것이다.
“마마 무슨 일이옵니까? 용안이 매우 피곤하시게 보입니다.”
“아니 아무 것도 아니고 과인이 꿈을 꾸었던 모양이오.”
태조가 꿈을 꾸었다는 말을 듣자 신하들은 안심하듯이 숨을 내쉬었다.

“시랑, 과인이 아무래도 부덕했던 모양이오. 꿈에 정몽주가 나타나서 과인을 저주하는 것을 보니 심히 괴롭소.”
“마마 모두가 지극하신 마마의 은덕을 소신들이 받들지 못하와 황공무지로 아뢰오. 옥체가 허약해지시와 그런 꿈을 보신 것이라고 아뢰오.”
“시랑의 말대로 내 침전에 들겠소. 한데 부탁인즉 시랑이 옆에서 지켜주도록 하오.”
“분부대로 거행하겠사옵니다.” (다음호에 하로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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