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무게

자연을 개발과 성장의 논리로만 대하는 것은 자연의 아들인 인간이 자연과 함께하는 삶을 배반한 후안무치한 일입니다.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만 여겨 홀대하고 파괴하는 그 후안무치는 삼라만상의 생명의 무게를 인간의 척도로만 재는 어리석음 때문에 자행됩니다. 이는 인간의 생명마저도 돈과 권력의 유무에 따라 그 가치를 다르게 판단하는 현대 자본문명에 그 원인을 두고 있습니다. 한데 다음의 불교의 자연과 생명에 대한 인식은 어떤가를 한번 보십시오. 이는 석가모니가 전생에서 수도승으로 지내던 때의 일화인데 우리에게 생명의 무게에 대한 독특한 이해를 가져다줍니다.

    『하루는 명상에 잠긴 수도승에게 토끼 한 마리가 숨을 할딱이며 숨어들었다. 수도승은 호랑이한테 쫓겨 온 토끼가 가엾은 생각이 들어 품에 숨겨 주었다. 그러자 호랑이가 곧장 달려와 토끼를 내어달라고 요구했다. 일주일 내내 쫄쫄 굶다가 발견한 토끼를 잡아먹지 못하면 자기가 죽는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호랑이도 불쌍했다. 호랑이도 엄연한 생명 아니던가. 수도승은 난감했다. 하지만 수도승은 이내 딜레마에서 벗어났다. 토끼도 살리고 호랑이도 살리기 위하여 토끼와 같은 무게의 자기의 살점을 떼어주기로 한 것이다. 그래서 저울을 갖다놓고 한쪽에는 토끼를, 또 한쪽에는 자기 허벅지살을 베어 올려놓았다. 그런데 웬일인지 아무리 커다란 살덩이를 올려놓아도 저울추는 토끼 쪽으로 기우는 것이었다. 마침내 자기 몸 전체를 저울 위에 올려놓자 비로소 저울은 수평을 이루었다. 여기서 수도승은 모든 생명의 무게가 동일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자기 몸 전체를 던져 호랑이에게 보시함으로써 호랑이와 토끼를 살리고 자신은 죽는다.』

이 이야기는 불교설화이기 때문에 과장된 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야만과 무지의 시대라는, 무려 2,500여 년 전의 기축기(基軸期)에 이토록 생명에 대한 귀중한 인식을 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모든 생명의 무게가 같다는 생각은, 자신의 생명과 타자의 생명을 똑같이 존귀한 것으로 보는 것입니다. 이러한 기본적인 생명인식은 오늘날 직면한 생태계의 문제를 해결할 단초가 된다는 점에서 매우 고무적입니다.
그런데 이런 생명의 무게니 혹은 값어치를 따진다면 과연 얼마나 나갈까요? 먼저 고은의 다음 시 한 편을 감상해보겠습니다.

내 고향 새끼 사슴 두 마리가
한꺼번에 화살에 맞아 죽었습니다
거기 달려온 에미나이
얼빠진 채 맴돌다가 맴돌다가
그냥 죽어버렸습니다
화살도 맞지 않고
그냥 죽어버렸습니다

그 에미나이 배 갈라본 즉
기나긴 창자 열두 발
토막토막 끊어져
그것이 새끼 잃은 슬픔이었습니다

이 세상 만물 가운데
무릇 슬픔이 있어야 하거니와
어찌 그것이 새끼 잃은 슬픔만하겠습니까
예로부터 창자 끊어지는 아픔이 슬픔일진대
오늘밤 내 주전부리 슬픔 따위는
쉬쉬 흙구덩이에 파묻어버려야 합니다

내년이나 내후년 이맘때까지
누구 알세라 파묻어둔 채
거기 새 다복쑥 돋아나온들
어찌 그것이 어미 사슴의 죽음만하겠습니까
- 고은 「슬픔」

여기 보면 어미 사슴이 새끼 사슴 두 마리가 화살에 맞아죽자 거기 달려와 얼빠진 채 마냥 맴돌다가 죽어버렸다고 했습니다. 화살도 맞지 않았는데 죽은 걸 이상히 여긴 나머지 배를 갈라 보니 기나긴 창자 열두 발이 토막토막 끊어져 있더라고 했습니다. 새끼를 잃은 아픔 때문이었다는 걸 더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이걸 사람들은 단장(斷腸)의 아픔이라고 히지요. 그렇습니다. 생명이라는 건 하나의 생명의 훼손 앞에서 창자 열두 발이 끊어져 죽어버려도 모자랄 정도로 고귀한 가치와 무게를 지닌 것입니다. 아까 전생의 싯다르타처럼 자기 온몸을 던지는 것과 맞먹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생명의 무게나 값어치는 저울로 잴 수 없으며 값으로 매길 수 없습니다.
  유가의 여러 경전에서도 인간과 자연은 넓은 의미에서 하나의 존재라는 ‘천인합일(天人合一)’을 강조한 대목이 자주 눈에 뜁니다. 이러한 정신은 특히 북송의 유학자 장개가 쓴 『서명』에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하늘은 나의 아버지이고 땅은 나의 어머니이다. 나는 이렇게 보잘것없는 존재이지만 하늘과 땅의 한가운데 처해 있다. 그러므로 하늘과 땅 사이에 가득 차 흐르는 기운은 나의 몸뚱이이고, 하늘과 땅을 지배하는 주재자는 나의 성품인 것이다. 인류는 모두가 나의 자매이고 생물은 모두가 나의 동반자이다.”
  그리고 “촘촘한 그물로 잔 물고기까지 한꺼번에 다 잡지 않는다면 물고기는 남아서 다 먹을 수가 없을 것이며, 알맞은 시기에 산에 들어가 도끼로 나무를 벤다면 재목은 남아서 다 쓸 수가 없을 것이다.”(『맹자』- 등문공) 라거나 “성인은 풀과 나무가 한참 자랄 시기에는 산림에 도끼나 낫을 들고 가서 그 생장을 중간에 끊는 일이 없도록 하고, 어패류가 알을 배거나 그 알이 부화될 시기에는 연못에 그물이나 독약을 갖고 가서 그 생장을 중도에 끊는 일이 없도록 한다.”(『순자』-왕제)는 글들은 유가의 자연 사랑이 어떤 것인지를 잘 밝혀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나는 최근 한 마을을 갔다가 마을회관 귀퉁이에 심겨진 몇 아름이나 되는 느티나무와 은행나무가 초록시절이 다 되었어도 잎을 피우지 않은 걸 발견했습니다. 이상히 여겨 살펴본즉 두 나무 모두 둥치 아랫부분을 빙 둘러서 칼로 껍질을 오려놓은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에게 이유를 물어보니 바로 회관 옆의 밭주인이 밭에 그늘이 져서 농사에 지장을 주기 때문에 나무를 죽이려고 그랬다는 것이었습니다. 마을사람들과 한마디 상의도 없이 벌인 이 행위는 과연 온당한 것이었을까를 묻고 싶은 씁쓸한 일이었습니다. 위에서 말한 “성인은 풀과 나무가 한참 자랄 시기에는 산림에 도끼나 낫을 들고 가서 그 생장을 중간에 끊는 일이 없도록 한다.”는 말과 정면으로 배치된 이 행위는, 인간의 지적 성장이 순자 시절인 2,300여 년 전보다 퇴행했다는 사실을 전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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