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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고필의 문화에세이(4)전고필(문화기획가, 향토사전문책방 이목구심서 대표)

6월 장마의 대숲에서 생각해 보는 인문학

장마가 오락가락하는 가운데 맞이하는 비는 생명을 살리는 비로, 만물의 생동을 부여하는 비로 생각하며 감사히 받아들이고 있다.

비가 내리는 날이면 조금은 움추려지며 활동을 제한하는 것이 대부분의 일상이라면 오히려 그런 날을 기다리는 사람이 내 주변에는 여럿이 있다. 비가 내리는 대숲에 들어가는 것이나 호젓한 누정에 들어가 낙숫물 소리에 스스로를 침잠하고 단도리 해보겠다는 이들이다.
내가 담양 출신인 것을 아니 응당 말하는 인사치례가 아니라 그들에게는 진심이 있다. 다른 곳이라면 쉬이 생각하지 못할 것인데 그 공간이 무척 마음에 들었거나 어떤 상징성을 부여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짐작을 하며 나도 이들의 대열에 합류해 본 적도 있으며 며칠전 또 기회를 잡았다.

대숲에 내리는 비는 직접 비를 맞지 않는 대신 댓잎에 모아진 물방울로 한방울씩 맞게 된다. 죽로차가 바로 그런 대숲의 정기를 모아 만들어진 것이니 당연히 귀한 대접을 받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귀를 쫑긋하고 들어보면 빗방울의 화음도 들려온다. 세차게 내리는 비나 는비도 모두 제 소리를 댓잎에 타전한다. 그런 소리를 들으면 모든 만물에게는 저마다의 발언이 있음을 또 생각해 보는 거다. 대통을 타고 흘러내리는 비는 어지간해서는 물고랑으로 물을 보내지 않는다. 제 발밑으로 저수를 한다. 마치 하늘과 직통하는 직수관 같아 보이는 대숲의 지혜를 엿보기도 한다.
비가 내렸으니 당연히 우후죽순의 모습과도 조우한다. 비를 거부하듯 갑옷을 입고 빗방울을 흘려보내는 겉모습의 이면에는 땅속에서는 혼신을 다한 순환의 몸짓이 내재되어 있다. 사는 곳이 보드라운 흙이건 딱딱한 흙이건 이를 뚫고 나오는 저력은 그야말로 의병의 정신과 닿아 있다. 왕과 왕실의 안위만 생각했던 시절, 의병들의 가슴에는 조국이 있었다. 병장기가 없었던 그들에게는 지근거리의 대숲이야 말로 무기의 숲이 되었다. 그런 생각을 하면 불쑥 처량한 마음이 인다.

소설가 김훈이 대숲에 와서 쓴 기행문에는 딱 한마디로 한반도의 대밭 담양을 정리했다. “무기의 숲, 악기의 숲”. 이 단호한 규정 앞에서 다른 말들은 미사여구에 불과할만큼 그의 문장은 힘을 갖는다. 비 내리는 숲에서 우중산책을 하며 이런 저런 사념들을 할 때면 대숲의 웅성거림도 들리는 듯하다.

할 말을 할 수 있는 대숲,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라는 옛적 이야기도 떠오른다. 전쟁과 질병을 물리치고 평화를 가져다주는 만파식적이 영원하도록 사찰의 범종속 음통이 되었다는 고 황수영박사의 이야기속에 마침내 대나무는 평화로 귀결되는 서사의 장엄함도 그려진다. 그런 저런 생각 사이에 경관으로서 대밭만을 바라보는 것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지 그저 아쉽기만 하다.

지금은 지천이 아니지만 그럼에도 담양에 산개한 대밭을 무기의 대숲과 악기의 대숲과 소리의 대숲과 항변의 대숲, 만들어보는 대숲(맹그로브 숲과 비슷한 맹글어부러 숲과 같은 네이밍도 떠오르며), 먹어보는 대숲, 향기의 대숲, 음이온의 대숲, 공생의 대숲, 학자의 대숲, 쭉죽학교, 대숲기술전승학교, 놀이의 대숲 등 대숲이 하나가 아니라 다양한 대숲으로 전환할 수 있는 발상까지 전해주는 비오는 대숲의 품속이 감사할 따름이다. 청량한 대숲에서 얻어지는 다양한 영감들을 시간을 잊은 채 이야기를 하다가 문득 저 비도 대나무를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하늘에서 수직으로 내려오고, 대나무는 하늘을 향해 수직으로 올라가는 닮은 꼴이라니. 저 비를 하늘이 내린 대나무라 글을 쓰고 이야기를 만들어 보면 어쩌나 그런 생각까지 도달했다.

아뿔싸 생각의 진전이 너무 내 영역을 벗어나 버렸다. 그런들 어쩌랴. 대숲에서는 사방이 나의 병사들이고, 사방이 나의 울타리이고, 그 누구도 침범하지 못할 성스러운 공간이거늘. 벗들에게 예전의 기억이 떠올라 한마디 던진다.
“하늘이 왜 파란지 아니. 바로 담양의 대숲이 늘 하늘을 빗질하기 때문이야” 담양사람으로서 자부심이 넘치는 이런 말을 성큼 해 버렸다. 고인이 되신 송수권 시인이 남도의 밤 식탁이라는 시에서 “손에 부채를 들면 남도 한량, 죽부인을 껴안고 오면 남도 잡놈, 댓가지를 흔들고 오면 남도 무당, 달구장태를 굴리고 오면 남도의 어린애, 죽창을 들면 남도 의병, 붓을 들면 남도 시인”이라고 읆으신 것처럼 말이다.

해갈을 넘어선 비나 눈이 내린 다음날 출근 길 대치와 수북이 운무에 쌓여 있는 모습을 보면, 그것이 마치 잠재태의 새로운 가능성을 은막속에 둔 것처럼 느껴지거나 성스러운 피안 같은 세상에 진입함을 통보한다고 여겨진다. 이런 장면을 연출할 때 이 놀랍고 신기한 장관에 빠져 한동안 멈춰 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한다. 내 고향, 내 직장 담양은 아직도 암묵지의 땅이라는 것이 새삼 다가온다.

국가의 중요한 농업유산으로서 대나무밭이 등재되어 있지만 이를 뒷받침할만한 학문적 연구는 아직도 미흡한 단계다. 대나무의 성장과 생김을 바탕으로 한 대쪽같은 선비들의 다짐을 담은 시문학에 대한 연구도 거둬들이지 않았고, 대나무의 생애와 같이 기초적인 생장사에 대한 연구도 본격화 해내지 못했다. 담양이나 남도 사람들이 낳고 자랐던 대숲으로 둘러쌓인 마을을 제대로 복원하여 최고의 휴식공간이자 사유의 숲으로 만드는 일도 과제이다. 온갖 바쁨의 연속인 현대사회에서 담양이 전 국민에게 최고의 힐링 장소로 자리잡은 것에 반해 그것을 촉매할 담양에 오고 머무르고 다시 찾게 할 이유들을 만드는 것, 그것이 생태와 인문학의 도시 담양을 자리잡게 하는 가장 큰 요건이며 지속가능한 도시를 향한 출발지점일 터인데, 이 지점에 관심을 가지고 매진할 행정과 지성과 현장의 결합이 화급한 현안으로 다뤄졌으면 좋겠다.
오늘도 담양에는 하늘을 청량하게하는 대나무의 빗질이 여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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