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군민기자석 귀농일기
담양뉴스 지역밀착형 기사/귀농일기(9)청년창업농 정강현 님의 ‘귀농 꿈나무’

여명 때 어둠이 희끄무레하게 남아있는데도 저절로 눈이 떠진다. 묵지근한 몸을 가까스로 일으켜 대충 몸을 씻는다. 몸을 씻었지만 눈꺼풀이 천근만근이다. 밥상에 앉아도 밥 생각보다는 조금이라도 더 자고 싶다. 엄마가 아니라면 바로 침대로 돌아가 퍼질러 잘지도 모르겠다. 나보다 더 바쁜 엄마가 지켜보고 있는데 나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지만, 피곤한 건 숨길 수 없다. 밥을 먹든 먹지 않든, 상을 치우고 들로 나가야 한다. 어쩔 수 없이 숟가락을 든다. 나는 원망의 눈초리로 엄마 표정을 힐끗 살핀다. 얼른 먹고 일하자는 의지가 표정에서 진하게 묻어난다.

나의 일과는 시쳇말로 눈 코 뜰 새 없다. 아침을 먹고 나가 온종일 작물을 돌본다. 부모님은 감자, 고구마, 호박, 가지 등 노지에서 생산 가능한 작물이면 뭐든 심었다. 나도 논 한 단지에 고추를 심었다. 내 고추를 돌보고 부모님 일도 거들어야 하니 고단한 나날의 연속이다. 가족이라 니 것 내 것 구별 없이 도와서 하지만 아무래도 젊은 내가 더 힘을 쓸 수밖에 없다.

나는 소방안전관리학과를 전공했다. 고등학교는 전기과를 졸업했다. 우리 또래의 학생들이 거지반 그렇듯 취미나 적성보다 취업이 학과 선정의 최우선이었다. 물론 점수대에 맞춰 입학하고 보자는 또래도 있지만 어쨌든 취업에 포커스를 맞춘 애들이 대부분이었다. 나 또한 그 점을 염두에 두었다. 고등학교 때 배운 전기에 대한 공부가 도움이 될 것도 같았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학과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았고, 취업 또한 쉽지 않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마냥 놀 수 없어 아르바이트를 전전했다. 어머니께서 일자리를 주선해주기도 했고 내가 알아보기도 했다. 정육점, 갈빗집, 커피숍 같은 곳에서 서빙을 했다. 한 때는 공사현장에서 막노동도 했다. 놀고 있는 것보다 무엇이든 하는 게 마음이 더 편했다. 군대까지 다녀왔는데 부모님께 용돈을 받아 생활하는 것이 싫어서였는지 모른다. 아무튼 무슨 일이라도 했고, 쉽지 않은 일이 없었다.

그 중 가장 힘들었던 게 제과점 일이었다. 지인의 소개로 광주에서 꽤 유명한 모 제과점에 취업했다. 제과점 일은 기존의 일보다 쉬울 줄 알았다. 편하기를 바란 건 아니었지만 그동안 경험했던 일보다 쉽겠지. 나는 좀 안일하게 생각하고 출근했다. 제과점은 꼭두새벽부터 일이 시작되었다. 졸린 눈 비비고 일어나 출근할 때면 버스에 승객이 몇 명 없었다. 어떤 날은 그 큰 버스에 혼자일 때도 있었다.

제과점은 오븐이 많아 일할 때 땀을 많이 흘릴 수밖에 없다. 살집이 좀 있는 편이라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채 한 시간도 되지 않아도 옷이 땀으로 흥건했다. 그렇게 더운 곳에서 일하다 보니 하루가 다르게 살이 빠졌다. 그 뿐 아니라 현기증이 일 때도 있었다. 어머니가 초라한 내 몰골을 보더니 당장 그만 두고 귀농하라고 했다. 부모라면, 자식이 농사꾼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클 텐데도 귀농을 권유한 건 그만큼 내 꼴이 말이 아니었기 때문일 것이다.

별 다른 고민 없이 어머니 말대로 귀농했다. 농사 일이 쉽지 않지만, 마음 하나는 편했다. 젊은 사람이 귀농했다고 주위 분들이 적극적으로 도와주었다. 나는 좀 더 많은 것을 배우려고 귀농귀촌협의회와 4-H연합회에 가입하였고, 농업기술센터에서 다양한 교육도 받았고, 40세 미만인 농업인들을 대상으로 한 청년창업농에도 선정되었다. 신소득 작물에도 시선을 돌려 귀농귀촌협의회에서 추진하고 있는 작목별 연구반에 가입하여, 어머니는 슈퍼도라지를 나는 미니바나나를 배우려고 한다.

현재는 블루베리 수확에 한창이다. 날 좋으면 보름이면 끝난다. 날씨에 따라 변동이 있겠지만 한 달은 넘지 않을 것이다. 수확 철이면, 과일을 따고, 선별하여, 포장하느라 끼니를 거르기 십상이다. 아침을 먹고, 점심은 출하가 끝나는 4시 이후에나 먹을 수 있다. 아직 한창 때라 배가 고프지만, 튼실한 열매를 수확하는 기쁨에 배고픔 따위는 거뜬히 이겨내곤 한다. 그렇게 바쁜 와중에도 디자인 교육을 받는다. 내 이름으로 된 멋진 브랜드와 로고, 명함을 만들고 싶어서다.

지금은 부모님이 작목을 거의 선정했지만 앞으로는 내가 주도할 것이다. 귀농한 지 채 2년이 지나지 않아 배울 게 널렸다. 어느 정도 자신감이 붙으면 나의 농장 이름과 내 브랜드가 인쇄된 상품을 많은 사람들에게 선보일 것이다. 나는 그날이 그리 멀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날을 앞당기려 오늘도 바쁜 일정을 쪼갤 것이다./강성오 군민기자


※귀농인 정강현 님은 1995년생이며 봉산면 제실길 161번지로 귀촌, 귀농했다.
(연락처 : 010-3945-7213)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강성오 군민기자  webmaster@dnnews.co.kr

<저작권자 © 담양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강성오 군민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