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화>
  “밭을 좀 사야겠는데 어디가 좋을까?”
  작년 11월 초, 그러니까 아내가 6개월 코스의 농업대학 수료증을 받던 날, 아내가 물었다. 다수는 베란다에 앉아 효소 차를 마시고 있었고, 거지반 찻잔의 바닥이 드러나고 있었다. 효소 차는 아내가 시골에서 얻어왔다. 백 가지 꽃잎을 말려 설탕에 3년 이상 재운, 특별한 것임을 강조했다. 처음 맛본 들큼한 맛이 썩 당기지는 않았다.
 
 “밭을 사다니? 설마 농사짓자는 말은 아니지?”
  다수는 자신도 모르게 말끝을 높였다.
  K 시에서 태어난 다수는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농사 경험이 없었다. 서울에서 대학 생활을 하게 된 다수가 어느 날 강화도로 농활을 갔다. 대학교 1학년 여름방학 때였다. 학생들과 함께 밭에서 마지못해 잡초를 뽑다가 땅 속에서 꿈틀거리는 두더지를 보았다. 시커먼 두더지가 구멍으로 금방 사라졌지만, 다수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기겁한 다수는 악을 빽빽 쓰며 도로에 주차된 자동차로 황급히 도망쳤다. 선배들은 다수가 일하기 싫어 잔꾀를 부리는 줄 알고 데리러 왔다가, 벌벌 떨고 있는 다수를 보고 오히려 다독여주고 돌아갔다. 어인 일인지 다수는 두더지가 그렇게 무서울 수가 없었다. 그날 이후 두더지가 나올까 싶어 밭으로 구경 가는 것조차도 삼갔다.

  “두더지 무서워한다는 건 알지만, 너무 오버하는 거 아냐?”
  아내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아무튼 밭은 싫어.”
  “밭이 어때서? 밭은 임금보다 더 소중하게 섬기는 대상이란 거 몰라?”
  “그건 또 무슨 말이야?”
  “임금 왕(王)자 알지? 가획해서 양쪽에서 받들어야 밭 전(田)자가 되잖아?”
  “그럼 밭을 사서 뭐하려고?”
  다수는 아내의 의도가 새삼 궁금했다.
  “대출을 받기 위해 농업대학에 입학한다고 말했잖아? 그런데 대출을 받기가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더라구. 사업계획서도 구체적으로 작성해야 하고, 농지도 있어야 하고, 실사도 반드시 받아야 한데. 그러니 농지가 없으면 대출을 받을 수 있겠어?”
  아내가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그제야 생각났지만, 사실 아내가 인근 C군에 있는 ‘미래농업대학’에 입학한 것은 신혼집을 마련하느라 대출받은 돈 때문이었다. 
  “임대하면 되잖아?”
  “나도 임대할만한 땅을 알아봤는데 잘 나오지 않더라구.”
  “그럼 고사리 꺾으러 다녔던 밭은 어때?”
 
아내는 다수 말대로 천이백 평짜리 고사리 밭을 사들였다. 작년 11월 중순이었다. 농민들이 경작에 들어가고 나면, 어지간해서는 땅을 팔지 않는다는 M의 조언에 따라 서두른 결과였다. 비록 대출 때문이라 해도 아내는 난생처음 자신의 이름으로 땅을 갖게 된 사실에 어깨를 으쓱거리곤 했다. 아내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손도끼로 나무 끝을 뾰족하게 깎았다. 밭 가장자리를 빙 돌아가며 말뚝을 박고, 밧줄을 동여매 울타리를 쳤다. 해머 질을 하느라 생긴 손에 물집을 보면서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아내는 입구에 출입금지라는 경고문까지 박아두었다. 다수는 그런 아내를 못마땅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이러다 농사꾼이 되는 게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밀려왔다.

  3년 전까지, 다수는 전자제품을 생산하는 D사 총무과에서 말단 직원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담당했던 일 중 하나가, 회사 식당에 들어오는 음식 재료를 검수하는 것이었다. 어느 날, 저녁 식사 시간이 가까워질 무렵 몇몇 직원이 심한 설사와 복통을 호소하며 소란을 피웠다. 구급차를 불러 환자를 급히 병원으로 데려갔다. 의사는 상한 굴로 인한 식중독 때문이라고 했다. 또 다른 환자를 후송하기 위해 구급차가 바쁘게 들락거렸다. 갈수록 환자가 늘었다. 7,000여 명의 직원 중 이십 퍼센트 이상이 고통을 호소했다. 급기야는 의사가 아예 출장 나와 치료했다. 생산라인이 멈추었고, 저녁 뉴스에 대대적으로 보도되었다. 회사 이미지에 상당한 타격을 입었다. 담당 부서인 총무과 직원들은 잔뜩 몸을 낮추고 다녔다. 조사 결과 다수는 회사 매뉴얼대로 이상 없이 표본검사를 했다는 게 밝혀졌다. 하지만 고개를 내리 꺾고 다녔다. 그러던 참에 총무부장이 총무과 전 직원을 한자리에 불러 모았다.
 
“누군가가 반드시 책임져야할 분위깁니다. 그래야 더 이상 파문이 확산되지 않을 겁니다. 그렇다고 딱히 누가 잘못한 것도 아니고…. 그래서 생각한 게 제비뽑기입니다. 신탁으로도 결정하지 못하면 제비뽑기로 결정한다는 말도 있잖습니까? 저도 물론 예외 없이 뽑기에 응할 것입니다. 걸리는 사람이 모든 걸 책임지고 사표를 제출하는 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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