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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알기3/담양의 인물(10)제봉 고경명

담양의 인물⑩의병장 제봉 고경명

*금산전투

제봉 고경명(1533~1592)은 조선 중기의 문관이자 의병장이다. 자는 이순(而順), 호는 제봉(霽峯)·태헌(笞軒), 시호는 충렬(忠烈), 본관은 장흥이며 대사간을 지낸 고맹영의 아들이다.

제봉은 1558년 문과에 장원급제해 성균관 전적에 임명됐고 이어 형조좌랑, 사간원정언 등을 거쳐 1560년 호당에 들어가 ‘사가독서’ 했다. 이후 지제교에 뽑혔으며 1562년 별시 때는 고관(考官)이 되어 송강 정철을 장원으로 뽑았다. 1563년 이량이 실각할 때 파직되어 고향으로 돌아가 19년 동안 학문을 공부하고 산수를 유람하면서 보냈다. 1581년 영암군수에 다시 기용되고 종계변무(宗系辯誣)를 위한 사절로 김계휘 등과 중국에 다녀왔다. 이어 한성부 서윤, 한산군수, 성균관사예, 순창군수 등을 역임했으며 1591년 동래부사로 재직하다 정철이 건저의(建儲議)사건으로 실각하면서 함께 파직됐다.

임진왜란이 일어나 서울이 함락되고 왕이 의주로 파천했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담양 추성관에서 창의, 의병장이 되어 7천여명의 의병을 거느리고 북상했으며 금산에 모인 적을 공격하다 교전 중에 순절했다. 그의 둘째아들인 학봉 고인후도 금산전투에서 전사했으며 장남인 고종후는 1593년 진주성 싸움에서 전사했다. 차녀도 정유재란 때 절개를 굽히지 않고 자결하는 등 가문 모두가 나라를 위해 목숨을 초개와 같이 버린 충신, 애국자의 집안이다. 

고경명은 기대승, 정철, 이이 등과 교유했으며 삼교(三敎)·구류(九流)의 서적을 두루 연구하고 상수학(象數學)에 더욱 밝았고, 문장과 시에 능했다. 저서로는 ‘제봉집’(한국가사문학관 전시)이 있다. ‘면앙정삼십영’, ‘식영정이십영’, 무등산 기행을 담은 ‘유서석록(遊瑞石錄)’ 등을 남겼다. 사후 의정부 좌찬성에 추증되었고 광주 포충사, 금산 성곡서원(星谷書院), 순창의 화산서원(花山書院) 등에 배향됐다./담양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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