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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재종의 詩이야기/詩의 향기,삶의 황홀(5)

추억 속의 어머니

저는 37년이 되도록 시를 써오며 시집 10권에 산문집 4권을 냈으면서도 부모님에 대한 시를 쓴 적이 없습니다. 시골서 논 한 뙈기도 없이 9남매를 낳아 기르신 부모님의 평생 동안의 노동과 고생을 생각하면 가슴부터 미어져, 시에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감정의 절제 및 대상의 객관화 작업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가난으로 평생 고생만 하시고, 그러다 보니 곧잘 술에 취하시는 부모님과의 심한 갈등으로 젊어서는 가출과 방황을 하고, 학교도 중둥무이 해버린 불효를 시인이 되어서 시로라도 갚지 못하는 마음이 너무 괴롭습니다.
언젠가 꼭 부모님에 대한 시를 써서 그 은혜에 보답해드리고자 했으나 지금 그건 모두 흘러가버린 얘기가 되고 말았습니다. 부모님 모두 작고하신지 오래되었기 때문이지요. 사실 부모님에 대한 시를 써서 그분들께 읽어드렸을지라도 못마땅해 하셨을 겁니다. 내가 학교 때 공부를 잘해서 전교 1, 2등을 빼놓지 않았기에, 판검사가 되거나 은행가가 되어서 집안을 일으키라고 술김마다 말씀을 하셨기 때문이죠.
한데 어머니 살아계실 적에 고향집에 TV나 신문기자들이 잊을만하면 곧잘 찾아오곤 하니까, 한번은 서울서 온 기자에게 그러더랍니다.
 “그 좋은 머리 시나부랭이 쓰는 데다 다 팔아 먹고 가난을 직업삼아 사는 놈이 그놈이요. 헌디 그 길로 유명해지기는 해졌는갑디다. 먼 텔레비전이며 기자라는 사람들이 끄떡허면 찾아오니 말이요.”
그 말을 나중에 인터뷰 기자에게 전해 듣고는 참 많이 울었습니다. 말할 수 없이 죄스러우면서도, 부모님이 자식에 대한 애정을 버리지는 않으셨구나 하는 생각 때문이었지요. 이제 언젠가 시인 생활을 마치기 전에 그분들에 대한 진정한 시를 쓰기를 다짐하면서, 이번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부모님에 대한 시 두 편을 소개합니다. 그 중 먼저 김종삼의 「장편(掌篇)」이라는 시입니다. 

조선총독부가 있을 때
청계천변 10전 균일 상 밥집 문턱엔
거지 소녀가 거지 장님 어버이를
이끌고 와 서 있었다
주인 영감이 소리를 질렀으나
태연하였다
어린 소녀는 어버이의 생일이라고
10전짜리 두 개를 보였다

김종삼의 손바닥만 한 이야기인 「장편」 이라는 시를 보면 가슴이 무척 짠해지고 눈시울이 젖어듭니다. 어느 날 아침 일찍 밥 한 그릇에 10전만을 똑같이 받는 밥집 앞에 거지 소녀가 장님인 어버이를 이끌고 와 섭니다. 그러자 주인영감이 버럭 소리를 지르지요. 신작로 닦아 놓으니 개가 먼저 지나간다고, 마수걸이도 못했는데 새벽 댓바람부터 거지가 찾아왔다며 어서 꺼져버리라고 소리쳤을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따라 거지소녀는 태연합니다. 아니 오히려 당당하기까지 합니다. 왜 그러는가 했더니 10전짜리 두 개가 쥐어있는 손을 펴 보이며 오늘이 어버이의 생일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어버이의 생일을 위하여 그동안 20전을 아껴두었던 거지소녀, 오늘 생일만큼은 밥을 빌지 않고 당당하게 어버이에게 밥을 사드리겠다고 나선 소녀. 참으로 그 효심이 가슴을 미어지게 합니다. 이럴 때는 태연하고 당당한 거지 소녀의 어깨가 하늘까지 치솟아 올라도 한없이 미쁘기만 하겠습니다. 효심은 천심이기 때문이지요.
어머니에 대한 시 또 하나. 우리 시문학사에서 명품 반열에 든 박재삼의 「추억에서」를 소개합니다.

진주장터 생어물전에는
바닷밑이 깔리는 해다진 어스름을.

울엄매의 장사 끝에 남은 고기 몇 마리의
빛 발(發)하는 눈깔들이 속절없이
은전만큼 손 안 닿는 한이던가
울엄매야 울엄매,

별밭은 또 그리 멀리
우리 오누이의 머리맞댄 골방안 되어
손 시리게 떨던가 손 시리게 떨던가,

진주 남강 맑다 해도
오명 가명
신새벽이나 밤빛에 보는 것을,
울 엄매의 마음은 어떠했을꼬,
달빛 받은 옹기전의 옹기들같이
말없이 글썽이고 반짝이던 것인가.

여명도 트기 전 꼭두새벽, 엄마는 집을 나섭니다. 머리엔 갈치며 고등어며 어물이 담긴 함지박을 이고, 진주장터 생어물전에 갑니다. 그런 엄마는 ‘바다밑이 깔리는 해다진 어스름’에도 돌아오지 않습니다. 밤빛이 이슥하도록 돌아오지 않습니다. 그런 엄마를 골방에 머리를 맞댄 채 기다리는 오누이는 손이 떨리고 또 떨립니다. 방에 불이 꺼졌거나 아니면 어린 마음에 무섬증에 휘둘려서일 것입니다. 그런 밤, 창문으로 비쳐드는 별들은 어쩌자고 별밭을 이룰 정도로 찬란하기만 합니다. 그것이 벌써 어린 마음에도 한이 되어 가슴에 담깁니다. 마치 엄마의 장사 끝에 남은 고기 몇 마리의 눈깔에서 발하는 빛처럼 가슴에 한으로 박힙니다. 아까워서 쓰지 못하고 높은 선반 위에 올려둔 은전만큼, 손 안 닿는 한이 되어 ‘울엄매야, 울엄매’ 라고 엄마를 부르게 합니다.
이제 그 아이가 훌쩍 어른이 되어 어머니의 나이가 된 지금, 그 어머니 때문에 또 가슴이 미어집니다. 진주 남강이 맑다 해도 강 구경 한번 하러 못가고, 시장엘 오며가며 신새벽이나 밤빛에나 보았던 어머니, 그런 어머니의 마음은 정녕 어떠했을꼬? 새삼 한이 되어 되물어집니다. 그런 어머니의 마음은 아마도 진주장터의 “달빛 받은 옹기전의 옹기들같이/말없이 글썽이고 반짝이던 것” 같지나 않았을까, 마음이 젖어 생각해 봅니다.
어머니의 애틋하고 애잔한 마음을 “달빛 받은 옹기전의 옹기들 같이/ 말없이 글썽이고 반짝이던 것”으로 표현함으로 이 시를 우리나라 명품 시 반열에 오르게 한 박재삼 시인!
그는 바로 그런 어머니가 있었기에 평생을 한을 주조로 한 전래적 서정을 유려하고 눈물 나는 시어로 가다듬어 노래했습니다. 어머니의 머리에 인 어물장수의 고생을 덜어드리고자 중학교 ‘소사’로 들어가 일하다가, 학교 교장 눈에 띄어 중학교 수업을 ‘청강’으로 듣고는, 전근 가는 그 교장이 서울로 데리고 가서 고등학교와 대학을 가르쳐 시인이 되었던 박재삼! 그러기에 그는 오늘날 김영랑, 서정주의 맥을 잇는 전통적 서정시인으로 자리매김 받을 정도로 눈물과 한의 시 쓰기에 매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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