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가까웠던 친구 박도현의 죽음이 문인주의 인생을 확 바꿔놓았다. 문인주가 무서워서 자취방 안에 이불을 둘러쓰고 숨어있는 사이, 함께 자취를 했던 박도현은 도청을 사수하겠다며 집에서 뛰쳐나갔다. 그리고 도청에 있다가 그날 새벽에 총 맞아 죽었다. 친구의 죽음을 알게 된 문인주는 분노와 두려움과 슬픔을 주체하지 못하고 날마다 밖으로 튀어나가 시위대 앞장을 섰다. 시골에서 아버지가 올라와 그를 집으로 끌고 내려가려고 했지만 듣지 않았다. 친구가 죽었는데 그 혼자만 살아서 친구 부모 얼굴을 대할 수가 없었다. 박도현과는 앞 뒤 집에서 같은 해에 태어나, 초. 중. 고를 같이 다녔고 대학도 학과만 달랐다. 공부는 박도현이 조금 더 잘해 앞서가는 편이었고 문인주가 힘겹게 뒤따라가는 정도였다. 문인주로서는 내심 박도현에게 뒤지지 않으려고 기를 쓰고 노력한 결과, 같은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던 것이다. 문인주는 박도현이 죽은 후 한 번도 집에 내려가지 않았다. 혼자 살아 있음이 오히려 부끄러웠기 때문이었다. 그도 차라리 죽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5.18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처벌하라“고 외쳐대며 죽을 각오로 시위투쟁에 앞장을 섰다. 두려움이 용기가 된 셈이었다. 그 때문에 시위 주동자로 붙잡혀 5년형을 선고받고 수감 되었다. 교도소에 수감 되자 비로소 그는 자유로움을 느꼈고 마음이 편안해졌다. 2년 만에 석방되자 아버지의 간절한 호소로 복학하여 간신히 대학을 졸업했다.
 
그는 87년 대통령선거 때부터DJ 선거캠프에 들어가 청년조직을 담당했다. DJ와 YS의 단일화 실패로 정권교체의 꿈이 깨지고 말았다.  DJ는 92년에 다시 출마하여 YS와 승부를 다퉜지만 실패했다. 문인주는 97년 대선 때까지 DJ 대선캠프를 떠나지 않았다. 97년 대선 캠프에 있으면서 헤어진 아내와 결혼했다. 아내는 대학 후배로 대선캠프에서 홍보를 담당했다. 
 
세 번의 대선을 치르는 10년 동안 문인주의 심신은 지칠 대로 지쳤다. 그래도 마지막 희망은 오로지 DJ 대통령 만들기였다. 개인의 꿈과 삶에 대해서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그의 모든 꿈은 DJ 대통령 만들기로 귀결되었다. DJ 만 대통령이 된다면 그 자신은 이 세상에서 먼지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다 해도 아쉬울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DJ가 대통령이 된다면 박도현을 죽인 죄인을 가려내어 처벌하고 친구의 원한을 풀어줄 수 있을 것이고, 그 자신도 떳떳하게 고향에 내려가 박도현의 부모를 만날 수 있을 것으로 믿었다. DJ가 대통령에 당선된 97년 11월 18일 새벽, 문인주는 거리에 나가 목 놓아 울었다. 그날 그는 박도현의 무덤에 찾아가 친구를 죽인 죄인을 반듯이 찾아서 원한을 풀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DJ가 대통령에 당선된 지 4흘만인 1997년 11월 22일, 김영삼 대통령은 5.18 관련자 모두를 특별사면 석방하고 말았다.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대통령은 구속된 지 2년 만에 풀려나게 된 것이다. 5.18 진상규명과 책임자처벌이라는 꿈이 모두 수포로 돌아가 버린 셈이다.
 
5.18 진상규명은 1988년 국회청문회를 통해 처음 시도되었으나 무산되고 말았었다. 그 후 5.18 피해자와 단체들이 수차례 고소 고발했으나 검찰은 기소유예와 공소권 없음 결정을 내렸다. 그러다 김영삼 정권 때 대통령의 특별법제정 지시로 검찰이 재수사를 착수, 헌법재판소가 특별법의 합헌결정을 내림으로써 수사가 가능해졌다. 검찰은 12월 3일 군형법상의 반란 수괴 죄를 적용하여 전두환을 위시한 1980년 당시 신군부측 핵심인사 11명을 구속기소했다. 1996년 3월부터 시작된 공판은 1심 28회 항소심 12회 등 40회에 걸쳐 진행되었다.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에게는 반란죄, 내란죄, 수뢰죄를 적용, 전두환 사형(구형대로), 노태우 징역22년 6개월(무기구형)을 선고했고, 4월 17일 대법원 상고심에서 전두환 사형, 노태우 징역 12년의 항소심 형량을 확정했었다. 그랬던 것이 DJ가 대통령에 당선되자마자 이들 모두가 사면복권 되고 말았다. 이들이 사면 복권된 데는 YS와 DJ의 합작품이었다는 여론이 지배적이었다. 새 대통령이 당선 되었는데 전직 대통령 독단으로 사면복권해줄 리가 없기 때문이다. YS 결정에 DJ가 찬성 동의했을 가능성이 크다. DJ 입장에서는 경상도의 완고한 지역주의를 완화시키기 위한 고육책이었을 수도 있었다. DJ가 자기 임기 때 사면 복권시킨다면 더욱 문제가 될 수 있고, 그렇다고 DJ 임기 내내 실형 상태를 유지시키는 것도 부담이 되었을 것이다. 결국 DJ는 국론분열을 막고 국민대통합이라는 명분으로 YS와 뜻을 함께 한 것이리라.
 
문인주는 이 결정에 분노했다. 배신감과 좌절감 때문에 괴로웠다. 10년 동안, 아니, 대학시절부터 간직해왔던 꿈이 산산이 깨지자 더는 미래가 보이지 않았다. 그의 꿈은 원칙을 바로 세워 정의가 넘치는 나라를 만들어 억울한 죽음을 당하는 사람을 없게 하는 것이었다. 그는 고민 끝에 DJ의 핵심참모들을 만나 사면복권 결정 반대를 외쳤으나 오히려 배척당했다. 아무도 그의 편이 되어주지 않았다. 문인주는 더 이상 DJ 옆에 있을 수가 없어 스스로 뛰쳐나왔다. 그는 정면으로 DJ를 비난했다. 그는 아내에게 함께 캠프에서 떠나자고 했다. 남편과 정치 둘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라고 했다. 그 일로 아내와 대판 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끝내 이혼까지 하고 말았다. 아내 말대로 잠자코 있었더라면 국회의원 공천을 받았을 것이고 금빛 반짝이는 국회의원 뱃지를 달 수 있었을지도 몰랐다. DJ 곁을 떠난 문인주는 계속 국민대통합이라는 이유로 기득권세력의 눈치를 보는 국민의 정부를 비판했다. 승산도 없는 외로운 투쟁에 지친 문인주는 몸과 마음이 상처투성이가 되어 떠돌아다니다가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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