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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알기2/담양의 문화재(11)담주산성

잘 알려지지 않은 담양의 향토문화재⑪담주산성

▲담주산성 성벽
▲담주산성이 있는 무정면 오봉리 영천산

담주산성(潭州山城)은 어떤 성이었나?
담양 사람들 중 무정면 오봉리 영천산 ‘담주산성’ 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전해지는 설화에서는 담주산성이 고려시대 담양의 치소였다는 얘기가 전해지고 있으나 (재)호남문화재연구원의 지표조사와 문헌연구에서는 통일신라 말기에 축성된 것으로 추정했다. 삼국시대에 이곳에 근거를 두고 있던 견훤 세력이 나주의 왕건 세력과 맞서면서 담주산성을 축성했을 것으로 추정하는 것이다.

담양 담주산성은 담양읍에서 남쪽으로 5km 떨어진 무정면 오봉리 영천산(217.1m)에 있는데 고대의 교통로와 영산강 주변의 넓은 평야를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다.담주산성에 대한 가장 최근의 연구는 문화재청에서 발간한 『영산강유역 고대산성』이다. 당시 조사에서는 성 이름이 담주산성 이라고 했을 뿐, 사용 시기나 산성에 대한 근거 기록은 제시되지 않았다. 이는 1977년에 문화재관리국에서 발간한 『문화유적총람』에 담주산성으로 알려져 있어 이 기록을 그대로 답습했다고 할 수 있다.

담양지역에서 담주산성에 대한 인식은 995년(성종14년)에 추성에서 담주로 개칭되었다는 『고려사』 의 기록을 근거로 고려시대 담양의 치소로 비정되어 왔을 뿐 담주산성의 규모나 성격 등 구체적인 내용은 빈약했었다. 2007년 담양향토문화연구회에서 간행한 『이해섭의 담양이야기』 에서도 “지금은 흔적마저 찾기 어려운 담주산성, 담주라 이름한 것은 담양이 담주 때 축조하였기 때문에 담주산성 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고려 성종 14년(995년)에 담주로 개칭한 후 23년이 지난 현종 9년(1018년)에 담양으로 바꾸었다. 그러니까 담주산성은 서기 1000년경부터 1017년 사이에 축성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한편, 담양군은 (재)호남문화재연구원에 위탁, 2017년 3월 20일부터 5월 21일까지 60일간 지표조사와 문헌연구를 진행해 담주산성 문화재 학술조사서인 『담양 담주산성』을 발간한 바 있다.
이 조사서에 의하면, 지표조사결과 담주산성의 성벽은 영천산의 7~8부 능선을 이용하여 산 정상에 성을 쌓은 테뫼식산성으로 길이는 912m, 내부 면적은 51,494㎡로 파악됐다. 축조방법은 성벽 추정선으로 판단되는 부분에 무너진 석축이 부분적으로 확인되기 때문에 석축으로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높았으나 급격한 경사면은 그대로 이용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동문추정지, 서문추정지, 내부 건물지 4개소가 확인됐고 건물추정지에서 다량의 토기편, 기와편 등이 확인됐으며, 기와편의 명문을 확인한 결과 기와의 제작기법이나 수습된 유물의 양상으로 볼 때 고려 성종 15년(996년)이라고 비정하기 어려우며 906년(병인,丙寅)이나 916년(병자,丙子)에 해당되는 통일신라 후기의 유물로 판단했다. 따라서, 담주산성은 고려시대 담주의 배후성곽이라기보다는 영산강 상류에 본거지를 둔 견훤(867~935) 세력의 성곽일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추정했다.
이는 최근 발굴조사가 이루어진 장성군 진원성에서 통일신라 말기의 유물이 확인되는 점과 인근 곡성군 옥과의 설산산성의 시굴조사 결과 통일신라 시기의 편평이나 대부완, 주름무늬병과 함께 격자문과 선문 등이 타날된 기와 등이 주를 이루는 점으로 볼 때, 신라말 고려초기의 지방호족 세력의 벨트, 즉 견훤 세력과 관련된 산성으로 보인다는 것이다./정리·취재=김성중 기자

김성중 기자  ksjkimbyeol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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