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군민기자석 귀농일기
담양뉴스 지역밀착형 기사/귀농일기(12)귀농인 고광천 님의 ‘나는 홍초대사’
귀농인 고강천님
고강천 귀농인의 딸기재배 하우스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 갈 때 아주머니 한 분이 찾아오셨다.
얼핏 보면 무뚝뚝할 정도로 과묵한 동네 분이셨다. 마주칠 때 인사하면 정중하게 받아주었고, 동네일이나 행사가 있을 때마다, 얼굴을 자주 뵌 분이지만 나를 직접 찾아오신 건 처음이었다. 당연히 궁금한 생각에 어떤 일인지 물었다. 홍초를 사러 왔다고 했다. 나는 서너 병이나 사겠지, 하고 속으로 생각했다. 외지에서 손님이 오면 그분들에게 선물할 요량으로 간혹 홍초를 구입하러 오시는데 손님 수에 맞게 주문한 게 보통이었다. 주말을 맞아 아주머니 아들 내외가 찾아뵈러 온 탓에 서너 병을 예상한 것이었다.
 

*고강천 귀농인이 생산한 딸기홍초 '홍설초'

아주머니는 홍초 10병을 주문했다. 열 병이요? 나도 모르게 말꼬리가 높아졌다. 수십 병이라면 판매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분의 아들은 평범한 직장이었다. 아무튼 개인 주문치고 적은 양이 아니었다. 내가 의아해 하자 아주머니가 간단명료하게 말했다. 내가 마을을 위해 얼마나 노력을 많이 하는지 알고 있으니, 그에 대한 보답으로 조금이라도 도와주고 싶다고 했다. 아들 회사 직원들에게 선물할 거랬다. 아들이 승진했는데, 인사와 홍보를 겸해서 홍초를 나누어 줄 거랬다. 맛도 좋지만 피로 회복에도 좋고, 소화도 잘 되고, 변비나 다이어트에도 좋으니 누가 싫어하겠냐고 했다. 아주머니는 마치 자기 제품인 것처럼 들뜬 어조로 말했다.

뭉클했다. 아주머니가 홍초를 높이 평가해서가 아니었다. 우리 동네에서는 마을사업으로 김장철에 절임배추를 판매한다. 공동생산 해서 공동판매 하는 형식이다. 나는 귀농했지만 마을 일원이니 참여해야 했다. 연로하신 분들이 많아 젊은 내가 더 힘을 썼고 내가 더 움직였다. 그런데 그걸 고맙게 생각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무뚝뚝해서 지금까지 표현은 하지 않으셨지만, 아주머니의 억양에 그런 마음이 진하게 묻어났다. 정말로 귀농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다시금 솟았다.

*항아리에서 숙성중인 홍초용 딸기

나는 광주에서 살았다. 변호사 사무실에서 사무장으로 근무했다. 변호사를 찾는 분들 대부분이 분쟁 때문이었다. 어쩌다 지인들이 오기도 했지만 그건 채 1퍼센트도 되지 않았다. 해서 상대를 법적으로 어떻게든 짓밟으려는 사람들을 매일 만나야 했다. 정말 억울해서 오신 분들의 얘기는 들어줄만 했는데 재산 관련이나, 법을 악용해 상담하는 분들과의 대화는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고객으로 왔으니 어쨌든 그들 편에 서야 했다. 열심히 준비해서 승소를 하면 거의 대부분은 형식적인 인사에 그쳤다.
  집에 돌아와도 사무실에서의 그림자가 지워지지 않았다. 무거운 마음으로 집에 돌아오니 밝은 얼굴이 아니었음은 당연하다. 피폐한 내 가슴은 이웃들을 친근하게 대하는 여유가 부족했고, 그런 내 모습에 이웃들 또한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쳐도 눈인사로 그치는 게 태반이었다. 한마디로 닫힌 공간에서 닫힌 생활을 했다. 그런 생활에 염증을 느껴 귀농을 꿈꾸었는지도 모른다.
 
귀향이기 때문일까. 동네 분들이 반갑게 맞아 주셨다. 나 또한 동네 분들에게 살갑게 다가갔다. 도회지에서의 내 모습과 농촌에서의 내 모습이 백팔십도 달랐다.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 이웃과 교류도 없이, 쫓기듯 바쁘게만 살아온 지난날을 생각할 때마다, 동네 분들이 팔 걷어 부치고 도와줄 때마다, 자기 식구들까지 동원해 홍보에 나설 때마다, 왜 진즉 오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가 일었다.
  지금도 마을 분들을 생각할 때면 울컥 울컥, 감동이 올라온다. 딸기 홍초를 생산하려고 나설 때였다. 나는 발효를 전통 방식대로 하려고 항아리에 발효하는 방식을 택했다. 그 방법은 오로지 수작업으로만 가능한 일이었다. 일손이 단 기간에 집중적으로 필요했다. 그때 일손에 여유 있는 분들이 마치 내 일처럼 거들었다. 사람 사는 것 같았다. 도시에서 느껴보지 못한 경험이었다. 이렇게 살아가야 하는데. 나는 그날, 밤늦게까지 감동에 빠져 허우적댔다.

*딸기홍초 저장 항아리

제대로 된 딸기 홍초를 생산하려면 항아리에 30일 정도는 충분히 발효시켜야 한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기간이다. 딸기가 항아리에서 발효되는 동안, 나는 귀농생활을 위해 스스로를 발효했다. 앞뒷집을 자주 드나들었고, 이장님과도 허물없는 대화를 나누었다. 인사할 때마다 활짝 웃었던 탓에 얼굴에 잔주름만 깊어졌다. 아마도 내가 발효되었다는 증거가 아닐까 싶다. 나는 아직도 발효 중이다./ 강성오 군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고광천 귀농인 : 2019년 귀농. 1973년생. 수북면 개동길 27-11. 연락처 010-4641-5088

담양뉴스  webmaster@dnnews.co.kr

<저작권자 © 담양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담양뉴스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1
전체보기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