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전제군주시대 최고의 통치자 왕을 향하여 신하가 올리는 상소문 형태의 글이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 올라 연일 최고의 관심을 끌고 있다.

청원인의 필명은 진인(塵人) 조은산으로 되어 있지만 청원인의 정확한 정체에 대하여 여러 추측이 많았다. 워낙 청원 글이 거침이 없고 내놓으라하는 글쟁이들도 명문이라고 극찬할 정도로 대단한 문장력을 보여주고 있어 작가일 것이라 보았다. 또 한편으로는 청원 글이 현 정부의 정책을 정확히 바라보는 정치 분석력을 가지고 있어 정치 평론가일 수도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청원인은 2명의 자녀를 두고 평범한 일을 하는 30대 후반의 인물이었다. 그리고 워낙 글이 인기가 높고 동의하는 사람들이 늘어나자 진인은 본인의 SNS에 등장하여 자신을 밝혔다. 먼지 같은 사람이라는 뜻의 진인(塵人)이라는 필명을 쓴 것은 젊어서 공사장에서 일할 때 일어나는 먼지를 보고 지었고 글을 쓴 배경은 한 때 노무현을 응원했던 사람들이 지금 국가를 잘 이끌어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청원 글을 쓰게 되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진인 조은산은 지난 7. 15일 청와대 국민청원에 치킨계의 다주택자 호식이 두 마리 치킨을 규제해 달라는 청원을 올린 적이 있다. 여기에서 치킨은 주택을 비유한 것이다. 모든 국민은 서민답게 치킨 한 마리를 시켜 먹는데 돈 좀 있다는 부자들은 호식이 두 마리 치킨을 시켜 먹음으로서 제한된 생닭의 물량을 빼앗아 치킨 값을 올리고 한 달에 한 번 치킨을 시켜 먹을까 말까하는 서민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주는 적폐라고 단정했다. 하지만 이 청원이 게시판에서 사라지자 다시 청원을 올려 다주택자에 대한 규제를 치킨 규제로 꼬집고 국토부 장관을 역적으로 칭하며 파직을 요청했다. 비유를 동원한 새로운 방법의 국민청원은 신선함을 주고 주택정책에 불만을 가진 국민들의 많은 관심을 받았다.

이어서 지난 8. 12일 ‘진인 조은산이 시무 7조를 주청하는 상소문을 올리니 삼가 굽어 살펴 주옵소서.’라는 글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렸다. 시무 7조라는 제목은 고려시대 문신 최승로가 성종에게 올린 상소문에서 따온 것으로 진인은 이 글에서 조정의 대신들과 관료들은 국회에 모여들어 탁상공론을 거듭하며 말장난을 일삼고 실정의 책임을 폐위된 선왕에게 떠밀며 실패한 정책을 그보다 더한 우책으로 덮어 백성들을 우롱하니 그 꼴이 점입가경이라고 지적했다. 또 조정의 대신들과 관료들은 제 당파와 제 이익만 챙기며 폐하의 눈과 귀를 흐리고 병마와 증세로 핍박받는 백성들의 고통은 날로 극심해지고 있다고 했다.
워낙 그 글이 현 정부의 정책을 비판한 탓인지 잠시 청와대 게시판에서 사라지자 국민들의 비난이 빗발쳤고 다시 게시판에 등장하자마자 하루 만에 청와대에서 답변을 해야 할 20만 명의 동의를 돌파했고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에서도 순위에 오를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총 1만 3,058자 원고지 117장 분량의 장문에서 청원인이 제기한 7조는 세금을 감하시옵소서, 감성보다 이성을 중히 여기시어 정책을 펼치옵소서, 명분보다 실리를 중히 여기시어 외교에 임하시옵소서, 인간의 욕구를 인정하시옵소서, 신하를 가려쓰시옵소서, 헌법의 가치를 지키시옵소서, 스스로 먼저 일신하옵소서 등 7가지 조목을 현실 정치에 빗대어 아주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자신의 글이 세간의 관심을 이끌게 되자 진인은 ‘길고 지루한 넋두리에 불과한 글이 세상 밖으로 나와 많은 관심과 응원의 말들과 함께 동의를 받게 돼 마음이 벅차다’는 소회를 밝혔다. 그리고 시무 7조를 쓰며 꼭 써놓고 싶었던 문장이 있었다며 ‘오천만의 백성은 곧 오천만의 세상과 같다.’고 했다. 니꺼가 아니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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