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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뉴스 창간4주년 기획연재Ⅲ(소설)/소쇄원의 피로인(제13화)양진영 작가

■제13화

정유년(1597년) 8월 중순. 저수지가 바싹바싹 마르더니 바닥에 물 자국만 간신히 남았다. 땡볕에 탄 대지가 벌겋게 달아올랐고 농부들 미간이 온종일 검측했다.    “저곳이 마르면 천보 같은 왜놈들이 끔찍한 짓을 했었당께…….”실심한 마을 노인장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어 한숨을 쉬었다. 벌써 열 달째 하늘에서 물 한 방울 듣지 않으니 곧 저수지 바닥이 훤히 드러날 것이다. 창암촌 사람들이 형체 없는 두려움에 떨었다. 새벽이면 이 구석 저 구석에서 씻나락 까먹는 소리가 들렸고 으스스한 괴기가 동네를 짓눌렀다.

“저수지에서 무지개가 핀당께…… 변란이 날 조짐이라요…….”
임진년에 왜인들이 큰 난을 일으켰을 때도 오색 띠구름이 동리 뒷산에서 어른거렸다는, 언년이 할머니 말이 파다하게 퍼졌다. 비가 온 뒤에 나타나는 무지개가 메마른 대낮에 저수지 위에서 희뜩대니 요상했다.
“조만간 창암촌에 난리가 날 것이구먼. 마을이 뒤집힐 것이여.
그렇다. 그 시각에 2천의 병사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안산의 고갯마루를 넘고 있었다. 길을 밝히는 횃불은 고사하고 창검이 뿌리는 은빛 파편마저 없었다. 적을 겁주려, 면상을 덮은 흰 불곰탈만 또렷하니 영낙없이 허깨비들 같았다. 말의 생피를 바른 깃발에서 비린내가 풍겼고 그 냄새에 취한 필살의 무리가 살기를 내뿜었다. 삶을 가벼이 여기는 자들이기에 죽음의 두려움도 없다는 왜병들.

8월16일 남원성을 함락시킨 와키자카 야스하루의 본대가 옥과를 지나 남하하고 있었다. 야스하루가 이끄는 수군은7월에 광양만에 상륙해 구례 석주관에서 관군을 격파하고 남원성 전투에 투입됐었다. 주력 부대가 전주를 향해 북상할 때 야스하루의 수군은 해안으로 돌아가려 남진 중이었다.
기실 남원성이 함락됐다는 기별이 전해진 사흘 전부터 날마다 창암촌 사람들이 소쇄원에 모여 전전긍긍했다. 창암촌은 몽린의 조부인 양자징이 졸한 뒤부터 작은할아버지인 양자정이 큰 어른이셨다. 그 다음은 장자 집안을 이끌고 있는 양자징의 셋째 아들 양천운이었다. 몽린의 아버지인 장남 양천경과 차남 양천회가 옥사로 죽은 뒤부터 양천운이 두 형의 가솔까지 돌보는 처지였다.

그때쯤 양자정은 부쩍 애양단을 자주 찾았다. 애양은 부모에게 효도한다는 뜻이다. 변란이 다가오니까 선친인 양산보가 세운 애양단이 마음에 위로가 되는 듯했다. 오늘은 뭔가 할말이 있는지 자신이 건립한 부훤당에 동리 사람들을 불러모았는데 정작 말없이 서책만 보고 있었다. 그 책자에는 양산보가 쓴 듯한 사리취의, 네 문자가 적혀 있었다. 이익을 버리고 의리를 따르라. 양자정은 어린 시절에 하루 세 끼 밥보다 더 많이, 그 선친의 가르침을 듣고 살았다. 양자정은 며칠 전부터 그 글을 되풀이해 읽으면서 나름대로 각오를 세웠다.
스스로 죽을 수 있는 자는 각오가 돼있어야 한다. 적의 칼 끝이 목을 겨눈 순간에 죽을까, 말까? 정할 수 없다. 이러이러한 경우에는 기꺼이 죽는다, 이런 맘가짐을 다져두어야 한다…… 그런 각오가 있었으니까 임진란 때 동래 부사와 삼천여 백성이 기꺼이 창검의 화염 속으로 뛰어들었으리라.
양자정은 또 다시 마음을 다독이면서 주변을 휘둘러보았다. 모두 한 숨도 못 잤는지 눈이 게슴츠레하고 낯이 퉁퉁 부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며칠 밤을 건성건성 지샜으니 그럴만했다. 동리에 무기라고는 쇠갈고리와 빨래 방망이뿐. 적에게 맞섰다가는 한꺼번에 몰사한다는 것쯤은 누구나 짐작했다. 창평현의 동헌은 이미 쥐새끼 한 마리 없이 텅 비었고 자신들을 지켜주어야 할 현감은 인근의 금성산성으로 도피했다는 소문만 무성했다. 양자정은 두 정각이 지나도록 피난을 재촉하는 양천운에게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관북으로 가지 않겠다. 이제 죽을 나이가 다 됐는데 일가친척도 없는 그곳에 가서 얼마나 더 산다고…… 피난을 가겠느냐.”
“숙부님. 어찌 같은 말씀을 되풀이하십니까? 일단 왜병이 오면 이 동리가 불타는데 반나절도 안 걸립니다. 온 가족, 동리 사람의 목숨이 경각에 달렸습니다. 지금은 한시를 허비할 때가 아닙니다.”
양천운은 격앙된 목소리로 채근했다. 그는 왜적이 남원성을 공략한다는 파발이 왔을 때부터 적이 이번에는 한성까지 진격이 어려워서 전라도를 휩쓴다는 첩보가 있다, 그러니까 가능한 북으로 멀리 피난해야 한다고 독려했었다.

“나는 소쇄옹의 유고를 지금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그분은 이 소쇄원을 버리는 자는 자신의 후손이 아니라고 하셨다.”
“허허, 참. 조부님 말씀은 평상시를 대비한 것인데 지금은 변란입니다. 그 말씀 때문에 온 가족이 죽게 생겼으니!”
열불이 난 양천운은 부채를 훨훨 부쳤다. 모여든 이웃들은 뾰쪽한 묘안이 없어 한 숨만 내쉬었다. 그들이 걱정하는 것은 왜인들의 잔인한 성정이었다. 임진년 변란 때 수천 명의 무고한 조선인을 눈 하나 깜짝 않고 도륙 내는 일이 허다하다고 들었다. 
“그 개망나니 버릇이 어드메 가나. 예서 똑같은 짓을 할 것이랑께.”
“창암촌에 풀 한 포기도 안 남을 것이여.”
문밖에 모인 하인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양자정의 귀에도 들렸다.
“어쨌든 누군가는 조상님 신주를 안전한 곳으로 모셔야 한다. 천운이 네가 강원도에 아는 친척이 있다고 했으니 너의 가솔을 데리고 도피하면서 신주를 모셔라.”
삼사 일이나 잠을 설친 양천운은 지친 표정이 역력했다. 뾰족한 묘안도, 답변도 없는지 길게 하품만 연발했다. 문밖에서는 무더위에 지친 사내들이 귀가를 재촉했다.
“자자, 오늘은 그만 합시다. 창평 향교에 다니는 허 유생이 말하기를 왜놈들이 온통 전주성을 향해 간다고 했소. 여기를 지나 전라도로 가는 군사는 다음 달에야 이를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소. 아직 십여 일 여유가 있소. 그 사이에 좋은 묘책이 나올 것이오.”
“그렇다고 하던가. 아이고, 자네 말만 들어도 힘이 솟네 그려. 알았네, 자 오늘은 돌아들 가세.”
그때 몽린은 열 다섯의 나이였다. 집안 어른들 말에 잠잠히 따를 뿐. 행랑 툇마루에서 서성대다가 밝아진 안색으로 소쇄원을 나서는 아낙을 따라 발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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