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천년담양 담양이야기
담양알기1/담양이야기(13)고서면 주산마을 ‘팥죽배미 논’

담양이야기⑬ 고서면 주산마을 ‘팥죽배미 논’

팥죽배미 논(추정)

옛날 고서면 어느 마을(주산리로 추정)에 ‘매미부자’ 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옛날에는 선조가 큰 벼슬을 하여 대대로 그 혈통을 이어 내려오며 양반들이 모여 사는 마을을 ‘반촌’, 내놓을 만한 혈맥이 없어서 농업, 공업, 상업과 각종 기술을 업으로 생계를 꾸려가는 마을을 ‘민촌’ 이라 불렀다. 매미부자는 민촌에 사는 양반이었다. 부모로부터 유산을 많이 물려받아서 천석꾼인 매미부자는 부러울 게 없었다. 농사를 짓고 물건을 만들고 장사하는 사람들을 보면 사람으로 태어나서 할 일이 없어 그렇게 살아가느냐고 그들을 멸시하기 일쑤였다. 열두 대문 궁궐 같은 집에서 하인 수십 명을 거느리고 낮이나 밤이나 기생과 더불어 술과 노래로 소일했다. 매미부자는 생일에 마음에 드는 소실이나 기생들에게 논과 밭을 나누어주기도 했지만 마을 사람들에게는 너무나도 인색하여 가난으로 굶어죽거나 병들어 죽어가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어느 해 흉년이 들어 마을에는 헐벗고 굶주린 사람들이 부황이 들어 죽고 전염병까지 겹쳐 민심은 몹시 흉흉했다. 매미부자는 그들에게 쌀 한 톨, 물 한 모금도 주지 않았다. 피골이 상접한 노부모나 어린 자식을 이끌고 부잣집 앞에서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사람들이 수십 명이었으나 매미부자는 주지육림 속에 파묻혀 살았다. 일이나 해먹고 사는 상놈들은 굶어죽어야 한다고 으스댔다. 그리고 큰 소는 질겨서 먹지 못한다고 석 달 된 송아지만 골라서 잡아먹었다. 그러는 사이에 매미부자의 살림도 날이 갈수록 줄어들기 시작했다. 초근목피로 연명하며 흉년을 이겨낸 마을 사람들은 땅을 갈고 씨를 뿌려 땀을 흘리며 일을 해서 살길을 일궈나갔다. 그러나 일하는 것을 싫어하고 그저 먹고 마시고 노래나 하면서 남을 도울 줄 모르는 매미부자의 집은 걷잡을 수 없이 몰락해갔다. 하인들도 모두 뿔뿔이 흩어지고 소실들도 모두 떠나가 버렸다. 천석지기 논도 거의 없어지고 열두 대문은 부서져 바람에 울고 기와지붕에는 잡초가 나기 시작했다. 봄이 되자 마을 사람들은 풍년가를 부르며 들로 나가 살림이 불어나는 재미로 일을 하였지만 매미부자는 예전의 부귀영화는 찾아볼 수 없이 을씨년스러운 대청에 남루한 차림으로 앉아 생기 있게 일하는 들녘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해가 바뀌자 이제 매미부자는 끼니를 이을 수도 없었다. 매미부자는 별 수 없이 한때 상놈들이라고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마을 사람들을 찾아 나섰다. 어떻게 먹고 살 길이 없겠느냐며 하소연 했다. 마을사람들은 양반을 팔아서 먹을 것을 사라며 냉대하면서 누구도 도와주지 않았다. 매미부자는 그때서야 지난날을 후회했다.

끼니를 잇지 못하고 사흘을 굶고 난 동짓달 스무날 밤이었다. 재산이라고는 단 하나 남은 고개 너머 말갓지기(3백평) 논 문서를 들고 품팔이했던 사람을 찾아가서 방구석에 즐비하게 드러누워 죽어가는 자식들을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논문서를 받고 그 사람은 팥죽 한 동이를 주었다. 결국 팥죽 한 동이와 논 말갓지기를 바꾼 것이다. 그 뒤부터 마을 사람들은 그 논을 팥죽배미라 불렀고, 일하지 않고 노는 사람들에게 팥죽배미 신세가 안 되려면 부지런히 일하라는 교훈을 주었다는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이 이야기속 ‘팥죽배미 논’은 본지 확인결과 주산리 주평마을 앞 논으로 추정되고 있다)/담양뉴스

담양뉴스  webmaster@dnnews.co.kr

<저작권자 © 담양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담양뉴스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