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인 정성철 님

내 일상이 눈코 뜰 새 없다. 눈을 뜨면 논으로, 밭으로 나가 일해야 한다. 나는 현재 두릅과 블루베리를 주 작목으로 재배하고 있다. 아버지를 돕고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이 두 가지가 소득 작물이라고 판단하여 도입한 후 줄곧 매달려왔다. 그 전에는 평범한 농부였다. 밭에는 계절 따라 고구마, 고추, 배추, 콩, 마늘 같은 밭작물을 심었고, 논에는 벼를 심었다. 농부라면 누구나 하는,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작물이었다. 내가 어려서부터 눈에 익었던 작물이기도 하다.
하지만 요즘은 낯선 작물을 돌보느라 몸이 천근만근이다. 봄에는 아침이 밝기 전에 밭에 나가 두릅을 채취했다. 두릅 채취가 끝나면 잠깐 휴지기를 거쳤다 블루베리를 수확해야 했다. 두릅이나 블루베리는 기계로 할 수 없는 작물이다. 오직 손으로 수확해야 하니 여간 힘 든 게 아니다. 아침을 먹고 나와 논밭에서 종일토록 일하다 땅거미가 내려앉을 무렵, 축 늘어진 몸을 이끌고 집으로 향하곤 했다. 비틀비틀 걸으며 이 고생 하려고 농사지으려고 왔는지 스스로에게 물었다. 아내 말을 듣지 않은 게 후회되기도 했다.
 
내가 귀농하겠다고 하자, 아내는 결사반대했다. 애들 교육 문제나 시댁으로 들어가기 싫어서는 아니었다. 나의 귀농이 아내에게 가장 두려운 건 계획적인 지출을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회사에 다니고 있었고, 매달 지정된 날이 되면 통장에 월급이 꽂혔는데, 귀농하면 수입이 불규칙할 거라고 걱정했다. 그렇게 불규칙한 수입으로 살림 꾸리기가 어렵다고 했다. 아내는 강하게 반대했다. 하지만 나는 끝내 아내를 설득했다.
나는 귀농하기 전에 광주에서 살았고, 광주에서 직장생활을 했다. 광통신 회사였다. 광통신은 빛이나 레이저, 발광 다이오드 등에서 나오는 광파를 이용한 통신 방식이다. 나는 연구원으로 연구실에서 각종 크고 작은 기계들을 들여다보며 하루를 보냈다. 대기업이 아니다보니 잡다한 일도 해야 했다. 좁은 연구실에서 연구하는 게 체질에 맞지 않았다. 창살 없는 감옥에 갇힌 기분이었다. 게다가 전망도 밝아 보이지 않았다. 광통신망을 낙도나, 산골 같은 곳에서 상용화할 수 있어야 전망이 밝을 텐데, 그렇게 하려면 어마어마한 비용이 필요했다. 작은 편리를 위해 막대한 돈을 들여 광통신망을 설치할 것 같지 않았다. 체질에 맞지 않고, 전망이 별로라는 것이 이유의 다는 아니었다.
 

아버지의 블루베리 농사를 돕다

내게는 꼭 해보고 싶은 일이 있었다. 꿈이나 다름없었다. 그것은 바로 ‘사회적 기업’ 이었다. 사회적 기업을 만들어 고향 분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다. 내가 사회적 기업을 목표로 세운 건 열악한 판로 때문이었다.
공산품이나 다른 생산품은 공급자가 가격을 책정한다. 손으로 일일이 만들었건, 기계로 대량 찍어냈건, 공급자 의지가 가격에 반영된다. 하지만 농산물이나 어류 등은 중매인이 가격을 책정한다. 가장 어렵게 생산을 했음에도 타인이 가격을 결정한 것이 마음에 걸렸다. 가격이 안정적이고, 인건비 상승 같은 세상의 변화와 물가 상승을 반영하여 가격이 책정된다면 나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농산물은 수년이 흘러도, 인건비가 몇 배가 올라도, 농산물 기자제가 몇 배나 올라도, 가격에 큰 변동이 없었다. 중매인은 좋을지 모르지만 농민들은 깊은 한숨을 쉴 수밖에 없었다. 직접 유통을 하여 농민들을 도우려는 목표의식이 저절로 생겼다.
사회적 기업을 만들려고 여러 경로를 알아보고 다녔다. 하지만 아버지 농사가 바빠, 아버지를 돕다 보니 시나브로 뒷전으로 밀려나 있었다. 이러다가는 평범한 농부로 전락할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이 발동했다. 수확 철에는 아버지를 도울 수밖에 없다. 농한기 때 시간을 내면 되겠지만 요즘 농촌은 농한기와 농번기가 따로 없다. 짜투리 시간일지라도 허투루 낭비해서는 안 될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밤 시간을 충분히 활용하기로 했다. 비록 몸은 피곤하지만, 저녁에 귀농인들을 만나 의견을 구하고, 도움을 청했다. 이웃을 찾아다니며 참여를 호소했다. 이런 과정을 거치다보니, 막연하던 꿈이 손에 잡힐 듯하다. 어두운 표정으로 농사짓는 아버지나 귀농인들, 고향 분들에게 조금이라도 짐을 덜어주고 싶다. 그것은 바로 좋은 가격을 받는 것일 게다. 남이 책정한 가격이 아닌, 우리가 책정한 가격을 판매할 것이다. 나는 하루라도 빨리 사회적 기업을 완성하려고 오늘도 박차를 가한다.
(※ 정성철 귀농인은 1974년생이며 2016년 고향 수북면으로 귀농했다. 010-3993-2016) / 강성오 군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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