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나훈아씨가 2,500년 전 소크라테스를 등장시켜 힘들고 이상하게 돌아가는 이 세상이 왜 이렇게 되었는지 모르겠다고 ‘테스형’이라는 노래를 만들어 하소연하더니 이번에는 어떤 정치인이 2,000년 전 중국 삼국시대에 살았던 괴팍한 젊은이 ‘예형’을 등장시켜 정치논쟁을 벌였다.

중국 후한시대의 역사서인 삼국지는 수많은 인물들을 등장시켜 치열한 패권다툼을 벌이지만 그 한 귀퉁이를 차지한 ‘예형’이라는 인물은 별로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런데 최근 정치판에서 여당 정치인이 느닷없이 ‘예형’이라는 인물을 끄집어내어 진중권 교수를 비판했고 ‘시무7조의 상소문’으로 유명한 진인 조은산도 이 싸움에 가세하였다. 도대체 ‘예형’이라는 사람이 누구이기에 오늘 이 정치판에 등장하게 되었는지 궁금하였고 다시 삼국지를 들춰내어 그 부분을 찾아봤다.

‘예형’은 한 마디로 머리가 좋아서 짧은 시간에 많은 지식을 저장한 슈퍼컴퓨터와 같은 존재다. 그리고 기계처럼 지위고하 가리지 않고 정치인이든 누구든 닥치는 사람마다 거침없는 비판을 토해냈다. 권력을 휘두르는 칼 앞에서 뻔히 죽을 줄 알면서도 모욕을 주고 권력자들의 아픈 곳을 찌르고 감추고 싶은 곳을 들추어내며 독설을 퍼부었다.

어느 날 이런 ‘예형’이 궁금해진 조조가 한 번 보자고 했으나 ‘예형’은 이런 조조의 면담 요청을 거절하고 오히려 조조를 비판했다. 조조는 자신에게 욕을 해대는 예형을 죽이자니 뒷말만 무성해질 것 같아 형주자사 유표에게 보내 차도살인(借刀殺人)을 유도했다. 학문에 조애가 깊은 유표는 ‘예형’의 학식에 대해 높이 평가를 해주었으나 ‘예형’은 유표에게까지 모욕적인 언사를 서슴지 않았다. 견디다 못한 유표는 휘하 장수였던 강하태수 황조에게 보내 일을 하게 했으나 황조에게까지 욕설을 퍼부어 결국 무인(武人)출신 황조에게 죽임을 당했다. 당시 ‘예형’ 나이 고작 26살이었다.

느닷없는 ‘예형’의 등장은 사사건건 여당과 정부를 비판하고 있는 진중권 교수를 향해 여당 상근 부대변인이 ‘진중권씨는 삼국지의 예형의 길을 가고자 하십니까?’라는 논평을 내면서 시작했다. 이에 대해 진교수는 자신을 ‘예형’에 비유한 것을 두고 ‘죽여 버리고 싶을 정도로 밉다거나 앞으로 계속 그러면 아예 목줄을 끊어놓겠다는 협박일 수도 있다’라고 했다.

그리고 진인(塵人) 조은산은 ‘여당 부대변인의 논평에 관하여’라는 제목의 글을 올려 이 논쟁에 가세했다. 그 글에서 조은산은 여당 부대변인과 잘 어울리는 인물로 ‘여백사의 진궁’ ‘계륵의 양수’ ‘빈 밥그릇의 순욱’을 들었다. 모두 삼국지에 등장하는 인물이다. 학식과 지혜, 무예를 갖춘 세 사람 모두 조조로 인해 죽는 것처럼 여당 부대변인 역시 똑똑하지만 결국 당신도 ‘예형’과 다를 바 없는 길을 갈 것이라고 평했다.

이 세 사람의 논쟁을 지켜보면서 요즘 정치깨나 하고 이런 정치판을 비판하려는 언론인들은 고전 탐독은 기본으로 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다. 즉 이 나라 정치를 비판하려면 ‘예형’과 같은 전문 지식과 죽을 각오의 용기는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 했다. 날씨는 추워지고 삶은 어려워지는데 이전투구의 정치판에서 볼썽사나운 짓을 벌이고 판을 키우고 즐기는 사람들에게 고전 한권쯤은 필독하기를 권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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