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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뉴스 창간4주년기념 기획연재 Ⅳ(소설)/균을 위한 발라드댄스(7화)강성오 작가

<제7화>

아내가 대여한 행사용 음향기기가 도착했다. 일하다 말고 뭐하자는 짓인지. 칠순잔치도 아니고, 야유회를 온 것도 아니고, 노래자랑을 하자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노래시키려고 사람들에게 술을 마시게 했나. 다수는 아내의 저의가 심히 의심스럽다. 그러고 보니 월남쌈을 준비한 것도 수상쩍다. 일보다는 마치 놀러 나온 사람처럼 이게 뭐란 말인가. 하지만 아내는 자신의 행동이 매우 의미 있다는 듯 자신감 넘치는 표정이다. 다수는 아내의 말에 따라 일 킬로와트짜리 이동식 고출력 앰프가 장착된 노래방 기기를 비닐하우스 ‘가’동 입구, 물건을 쌓아두기 위해 마련해둔 공간에 설치했다.

  “여러분! 비닐하우스에 노래방기계라니까 이상하죠?”
  아내가 마이크를 잡고 말했다. 사람들은 뜨악한 표정만 지을 뿐 누구 하나 입을 열지 않는다. 설마 나에게 춤까지 추라고 하지는 않겠지? 다수는 미리 주눅이 든다.
  “망치질이 다는 아니잖아요? 남아공 월드컵 때 부부젤라 소리가 너무나 시끄러워 고막을 보호하기 위해서 부부스톱이라는 귀마개까지 만들었잖아요? 그러니 우리도 신나는 노래로 망치질을 대신 하자는 거에요!”
  아내가 잠시 말을 멈춘 사이에 다수는 M에게 왜 망치질을 해야 하는지 물었다.
  “균이 깨어나라고 그라제. 가만히 놔두면 언제 버섯이 필지 모르거든. 늘어져 잠들지 못하게 충격을 줘야, 하루라도 빨리 버섯 꼴세를 볼 게 아닌가.”
 
 M은 간단히 말을 마치고 사람들을 독려한다. 쿵, 쿵. 투당탕 퉁탕, 투당탕 퉁탕. 쇠파이프를 박는 해머 소리와 망치 소리가 우렁차다. 쇠파이프가 능숙한 남정들에 의해 순식간에 고정된다. 단단히. 남정들은 맨 앞에서부터 차례대로 골목(종균 접종 목)을 세우며 안으로 들어간다. 굵은 골목은 갈고리로 절단면을 찍어 가뿐하게 세운다. 일명 가위세우기로 불리는, ‘V’자를 뒤집어 놓은 모양의 골목 줄이 점차 길어진다.
  “제가 지금부터 블랙파라솔이 부른 랩송인 ‘저미네이트오브어다크룸(Germinate of a Darkroom, 암실에서 발아시키다.)을 우리말로 부를 건데요. 여러분이 중간 중간 따라 해야 할 부분이 있으니 미리 연습을 한 번 할께요. 균이라는 말이 나오면, 이렇게 주먹을 위로 올리며 똑같이 따라하면 됩니다. 자, 그럼 들어갑니다. 그들이 말하는 균, 균, 균!”
  아내는 균이라는 낱말에 맞춰, 오른 주먹을 눈높이에 올려, 시위대가 구호를 외칠 때 하는 것처럼 힘차게 세 번 내지르며 시범을 보였다.
  “…….”
  “아무도 따라 하지 않으면 어떻게 해요? 종일토록 망치질만 하고 다닐 거예요? 다시 한 번 갑니다. 광합성을 하지 못하는 균, 균, 균!”
  “균, 균, 균!”
 
두어 사람이 작은 목소리로 마지못해 따라 했다. 그런 모습에 다들 키득거린다. 어떤 이는 고개를 숙이며 오른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어떤 이는 아내가 볼 수 없도록 고개를 돌린 채, 어떤 이는 아예 아내를 빤히 바라보면서 웃는다. 그런 아낙들이 순진하고 순박해 보인다. 어쨌든 아내는 그런 모습과는 상관없이 계속 말을 잇는다.
  “아니, 진국 댁과 자산 댁은 그렇게 웃기만 할 겁니까. 우리 균을 깨워주기 싫어요? 어색하면 두 분이서 삼천오백 개나 되는 골목에 일일이 망치질을 하시던지요! 자, 다시 한 번 들어갑니다! 어둠 속에서만 살아야 하는 균, 균, 균!”
  “균, 균, 균!”
  이번에는 절반 가까운 사람들이 따라 했다. 아내는 그 정도로는 균이 깨어날 수 없다며 모두가 따라 할 때까지 연습해야겠다고 밉지 않게 으름장을 놓는다. M이 다수 팔을 끌어당긴다. 다수는 아내를 바라보다 말고 시선을 M에게 돌렸다.
 
“이거 한 번 들어서 뒤집어 볼랑가?”
  M은 제법 굵어 보이는 골목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다수는 M의 말에 따라 낑낑거리며 통나무를 들어 백팔십도 뒤집었다. 그중에 가장 큰 골목이라고는 하지만, 80kg들이 쌀 한 가마니를 드는 것보다 훨씬 무거웠다.
  “어째 들만 한가?”
  “상당히 무거운데요?”
  “그라제? ……접종을 완료한 골목은 둘이 알아서 관리해야 하네. 꺼적이나 차광막으로 덮고, 보름 동안 살수를 금했다가 낸중에는 일주일에 한 번씩 살수 하는 걸 빼묵지 말아야 한디, 그건 새댁이 알아서 할 거네. 하지만 균사가 고루 활착할 수 있도록 수시로 골목을 궁굴레주거나 높이 쌓는 것은 빼빼한 새댁이 감당하기 힘들 거 아닌가? 그래서 우리가 미리 세워주는 거여. 대신 물은 더 자주 주어야 할 거네. …근디 말이시? 내년 봄에는 방금 자네가 했던 것처럼 골목을 전부 뒤집어 줘야 한디 새댁 혼자서는 도저히 할 수 없을 거여.”
  “골목을 왜 뒤집어야 하는데요?”
  “균은 밑으로 자라는 특성이 있거든. 뒤집어 줘야 위를 보고 클 게 아닌가?”
 
다수는 시선을 아내에게 다시 돌렸다. 아내는 따라하라고 여전히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결국 아낙들은 어색하게 웃으면서도 너나없이 아내를 따라 했다. 아내가 볼륨을 최대한 높이고 현란하게 춤추며 본격적으로 노래한다. 치어리더의 환상적인 댄스 실력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어떤 예언가는 말했지. 머지않아 세상의 종말이 온다고. 균 때문에 종말이 올 거라고. 그들이 말하는 균, 균, 균. 광합성을 하지 못하는 균, 균, 균. 어둠 속에서만 살아야 하는 균, 균, 균. 중세 유럽인을 떼로 죽인 페스트균. 유전적으로 진화해버린 살모넬라균. 무기로 둔갑한 탄저와 콜레라. 균, 균, 균. 항생제도 듣지 않는 슈퍼세균. 균, 균, 균. 신종 플루조류독감 구제역이 전조 일지도 모른다는 경고는 매일매일 메일함에 차고 넘치지. 아마 지금도 메일함의 용량이 초과 하였을지도 몰라. 하지만 그들은 틀렸어. 균이 없으면 세상이 정상적으로 돌아가지 않아. 세상이 악취로 넘쳐날게 뻔해. 페니실린도 나오지 않았을 거야. 수많은 항체를 만들 수도 없고 누에그라도 항암약품도 다른 약도 만들 수 없어. 균과 떨어져 사는 게 얼마나 될 거 같아. 엄마의 자궁 속에 있을 때뿐이야. 산도를 따라 나온 순간 수많은 균과 접촉하게 돼 있어. 때로는 균 때문에 인상을 찌푸리겠지만 균을 먹고 산다는걸 잊어선 안돼. 균과 함께 부대끼는 그게 인생인 거야…….”
 
스피커에서 흘러나온, 귀가 째질 듯한 리듬과 아내가 내지르는 고음 그리고 아낙들이 판소리의 추임새처럼 중간 중간 따라하는 소리가 비닐하우스 안에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진다. 남정들은 여전히 분주하게 골목을 세운다. 굵은 골목은 갈고리를 절단면에 박아, 끌어당기며 세워나간다. 그 앞에는 골목을 세울 지주대를 만드느라 해머와 망치 소리가 요란하다. 쿵, 쿵. 투당탕, 퉁탕. 투당탕, 퉁탕. 비닐하우스 안은 작업 소리와 노랫소리로 가득하다. 비닐하우스가 들썩거린다. 다수는 귀를 틀어막고 싶다. 귀마개 모양의 종균뭉치가 생각난다. 비닐하우스 ‘나’ 동으로 발길을 돌린다. 지게차가 지나다녀 비닐이 찢어진 곳에서 부슬부슬한 흙이 길게 이어지고 있는 게 눈에 들어온다. 두더지 굴인 게 뻔하다. 혹시 두더지가 지나갔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호들갑을 떨며 뒤돌아서려다, 멈춘다. 점심 무렵까지 자곤 했던 다수는 불현듯 두더지가 늦잠을 자고 있다가 시끄러운 소리에 깼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친다. 다수는 조심스럽게 두더지 굴 옆으로 다가간다.
그리고 나지막하게 말한다. “야 임마, 니를 깨우려는 게 아니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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