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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뉴스 지역밀착형 기사/귀농일기(19)귀농인 전조웅 님의 “나는 칠전팔기 농사꾼”
귀농인 전 조 웅 님

나는 귀농해서 다양한 작물을 경험했다. 처음으로 접한 품종은 아로니아 였다. 
아버지께서  물려주신 논 두 단지에 아로니아를 심었다. 아로니아가 붐을 이루고 있어 기대감을 안고 2,000여 평에 아로니아를 심었지만 예상만큼 소득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아로니아는 안되겠다 싶어 작목 전환을 고심했다. 아로니아 농가들도 나무를 베어내는 추세였다. 

다음으로 선택한 작물이 레드킹 이었다. 아열대 작물이라 노지 재배가 불가능해 논 한 단지에 하우스를 지었다. 레드킹 재배 조건에 맞게 폭이 넓고 측고가 높은 연동식 하우스 두 동을 지었다. 한 동에 400평 규모였다. 하우스에 레드킹 신품종 450주를 식재했다. 신품종이라 여러 경로로 재배법을 수소문 해 정성껏 키웠다. 2년간 정성을 들였는데 문제가 터졌다. 
레드킹은 일본에서 개발한 품종인데 로열티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식약청에서 허가도 나지 않았다. 그동안 들인 투자와 노력이 물거품이 될 위기에 봉착했다. 어떻게든 해결하려고 백방으로 알아보았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다. 급기야 기술원에도 자문을 구했다. 
기술원에서 관련 전문가가 농장을 방문했다. 다양한 의견을 나누었지만 결론은 없애야 한다고 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나무를 베어야 했다.

다음으로 하우스에 당조고추를 심었다. 당조고추는 혈당을 낮춰주는 효과가 있는 고추였다. 낯선 품종은 판로 확보가 관건인데, 생산만 하면 납품할 수 있게 계약재배를 했다. 인근에 당조고추를 재배하는 농가가 있어 재배법은 걱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뜻하지 않은 난관에 부딪쳤다.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이었다. 바이러스는 백약이 무효였다. 나름 수많은 처방을 했지만 잡히지 않았다. 방법은 오직 한가지 뿐이었다. 뽑아내는 것. 공들여 기른 당조고추를 깡그리 뽑았다. 7,500주를 심었는데 뽑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
그 자리에 방울토마토를 심었다. 하우스 두 동에 심었는데 역시나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 바이러스에는 백약이 무효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경험했으니 과감히 뽑아냈다. 
당조고추를 심은 땅에서 바이러스가 잔재해 있었고, 그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이었다. 바이러스가 땅에 남아있을지 모르니 토양을 살균해야 했다. 몇 번의 살균과정을 거쳤다.
그리고 오이를 심었다. 오이를 선택한 건 바이러스 때문이었다. 철저한 살균을 했지만 혹시 모를 일이었다. 고추와 토마토는 가까운 종이라 바이러스가 기승을 부릴 수 있었다. 또다시 아픈 전철을 밟지 않으려고 전혀 다른 종을 선택한 것이었다. 살균 덕인지 품종 탓인지 바이러스가 더 이상 피해를 끼치지 않았다. 오이 재배가 끝나면 열무를 심었다.

열무농사

이제는 농사에 어느 정도 자신이 붙었다. 농사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결코 만만한 게 아니었다.
나는 귀농하기 전에 운수업에 종사했다. 25톤 탱크로리에 화공약품을 실어 날랐다. 황산이었다. 인천에서 GS칼텍스를 오갔다. 그 기간이 25년 정도 되었다. 짧지 않은 기간이었다. 
그동안 처참한 사고를 목격했다. 황산 누출 사고로 순식간에 사람이 죽는 것을 눈 앞에서 보았다. 황산은 PVC나 PE재질의 제품을 제외하고 흔적도 없이 녹여버린다. 사람이 플라스틱 소재가 아니기에 황산에 뼈까지 녹아 형체를 알아보기도 찾기도 쉽지 않았다. 끔찍했다. 
그런 사고를 목격하다 보니 계속하고 싶지 않았다. 나이가 들어가니 장거리 운전도 점점 힘들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귀농을 생각했다. 자식들 부양의무에서 벗어났다는 생각도 귀농을 결심하는데 한몫했다. 아들이 둘인데 하나는 직장 다니고, 하나는 헬스 트레이너로 일하고 있어 뒷바라지에 대한 부담이 적었다. 어려서 숱하게 봐 온 농사라 가벼운 마음으로 귀농했다가 원하지 않은 교훈을 얻고 말았다.

로컬푸드 납품(방송출연)

값진 교훈만 얻은 게 아니라 안정적인 납품처도 생겼다. 그곳은 다름아닌 로컬푸드다. 
내가 생산한 농산물을 선택하신 손길에 따뜻한 위안을 받는다. 손자가 아프면 할아버지나 할머니께서 따뜻한 손길을 내밀어 위로하듯, 고객들의 선택에서 그런 기분을 느끼곤 했다. 고객들이 내 사연을 알 리 없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따뜻한 위로를 받았으니 어떻게든 보답해야 하지 않겠는가. 나는 질 좋은 농산물을 안심하고 드실 수 있게 최선을 다할 것이다. 
할아버지 할머니를 비롯해 우리 가족이 먹는다는 생각으로 말이다./강성오 군민기자

※전조웅 님은 2014년 수북면 개동리로 귀농했다.(연락처 010-3620-8804)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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