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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송강고 개교를 축하하며, 송강(松江)을 추억한다. 박환수(전.조선이공대 교수)

내 고향에 추억 속으로 사라져 버렸던 학교가 다시 현실로 나타나 내년 3월에 송강고등학교로 재탄생한다니 반가운 마음 금할 길 없다. 학교이름을 학생들이 “소나무처럼 곧고 푸르고, 강물처럼 자유로운 사고”를 가지라는 뜻으로 지었다는데 아무래도 그 지역에 있는 송강(松江)이라는 호(號)를 가졌던 정철의 역사적 흔적과 무관하지는 않을 듯하다. 만약 그렇다면 송강 정철은 소나무처럼 강물처럼 그렇게 살았느냐는 후세들의 역사적 평가를 받지 않을 수 없고 아마도 교명(校名) 선정에서 논란을 거쳤을 것이다. 

논란을 떠나 학교가 자리를 잡은 이 터는 너무 아름다운 곳이었다. 지금은 광주댐으로 하천의 물이 차단되고 많은 생활용수가 유입되어 황폐화 되어 버렸다. 70년대까지 이곳은 무등산에서 내려오는 맑은 물이 증암강을 만들고 여름 홍수는 그 강가에 눈이 부시도록 고운 백사장을 만들었다. 해년마다 7월 백중에는 쌍교 다리 밑에서 화전놀이 판이 벌어지고 곳곳의 아낙네들이 이곳에 모여 일 년 스트레스를 날려버리곤 했다. 그 아름다운 경치를 내려다보는 곳에 송강 정철은 송강정을 만들고 칩거하여 가사(歌詞)를 지었던 것이다. 

송강정 벽에 걸린 시판(詩板)의 가사를 보니 이곳의 풍경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짐작이 간다.
‘죽록정(竹綠亭)이라는 작은 집을 새로 지어 머물다(小築新營竹綠亭) 송강의 물이 맑아 갓끈을 씻었다(松江水潔濯吾纓) 가을 달은 멀리 강물을 희게 만든다(秋月逈添江水白)’ 시(詩)에 등장하는 송강이 아름다워 자신의 호를 송강(松江)이라 했는지, 소나무와 대나무 숲 사이에 죽록정은 송강정으로 바뀌고, 송강은 증암강으로 불러지게 되었지만 송강정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정철에게 가사를 읊게 만들고도 남을 경치였을 것이다.

지금은 폐교되었지만 오래 전 그곳에 학교가 세워졌다. 문맹퇴치를 위해 의무교육이 시행되던 때는 학생이 거의 700명에 이르렀다. 학교 시설이 구비되지 않아 3부제 수업을 하고 책걸상이 없는 바닥에 앉아서 공부를 하면서도 배우는 즐거움에 빠져들었던 시절이었다. 앞에는 백사장에 맑은 물이 흐르고 포플러나무와 탱자나무가 울타리를 하고 푸른 소나무 숲이 학교를 감추고 오래 된 느티나무들이 운동장을 둘러싸고 있었다. 여름이면 냇가에서 미역을 감고 고기를 잡고 겨울이면 앞산에 올라 토끼몰이로 체력을 단련했다. 가을 운동회 날이면 학부모들이나 주변의 모든 사람이 일손을 멈추고 이곳에 모여 학생들의 자라난 모습을 바라보고 함께 동참하여 운동회를 즐기고 떠돌이 장사꾼들도 모여 지금의 지역축제와 다름없는 모습이었다. 

지금 한창 리모델링을 하고 있는 공사현장을 보면서 과거 그 추억의 장소를 다시 복원해주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최소한 그 전경이 살아나는 조경이라도 그렇게 조성해주고 그 앞 증암강이라도 하천을 정비하고 그곳에 맑은 물이 흐르고 산책을 하고 운동도 하는 환경친화적인 시설을 만들어주면 좋겠다. 

이제 송강정과 쌍교라는 역사적 유적을 바탕으로 날이 다르게 일취월장 발전해 나가는 이곳에 송강고까지 들어섰으니 이 지역은 담양의 새로운 명소가 되고 많은 사람이 찾을 것이다. 헬렌 켈러를 키운 설리반 선생님과 같은 좋은 선생님들이 오셔서 “소나무처럼 곧고 푸르고, 강물처럼 자유로운” 그런 후세를 이끌 인물을 만들어 주실 것이다. 이 터에서 소수정예의 학생들이 성장하여 또 다른 가수 BTS가 나오고 노벨상을 받는 위인이 나올 것을 기대하면서 개교를 축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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