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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알기1/담양이야기(21)소요대사(1562-1649)어머니 묘

담양이야기(21)소요대사(1562-1649) 어머니 묘

몇 해 전, 월산면 월계리 농암마을 뒷동산인 황산에 자리한 묘 한기가 곱게 단장을 했다.주위의 어느 산소와 별반 다르지 않은 작은 묘이다. 그러나 이 지역 월산에 뿌리를 둔 경주이씨 후손들에겐 특별한 묘소다. 집안의 어른이 아닌 어느 스님의 어머니 묘로 각별하게 관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묘의 주인은 조선중기 서산대사의 법을 이은 소요 태능스님(156-1649)의 어머니다. 친부모 묘마저 외면당하는 각박한 현실에서 소요 스님의 어머니의 묘가 지역 주민들에 의해 무려 400년 가까이 각별하게 관리되고 있는 것이다.

“이곳이 바로 천하의 명당 ‘무자손천년향화지지(無子孫千年香火之地)’터입니다. 예로부터 이 묘를 잘 받들면 복을 받는다고 전해져오고 있어 너나없이 벌초하고 예를 올리고 있습니다.”경주이씨 월산문중 소임을 맡고 있는 도유사(都有司) 이복우 씨는 “어릴 적 어른들로부터 소요대사 어머니 묘를 잘 돌보라는 말을 듣고 자랐다”며 소요대사 어머니에 얽힌 사연을 들려준다.
이야기는 37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당대의 고승 소요대사가 장성 백양사 주지로 있으면서 담양 용흥사 불사를 벌였다. 당시 용흥사 인근에 살던 이복우 씨의 10대조 이시망, 이시우 형제가 불사에 동참하였고 이를 계기로 스님과 교류하게 되었다. 어느 날 시망, 시우 형제는 소요 스님에게 부친의 유택을 점지해달라고 부탁했다. 소요대사는 형제로부터 사찰 불사에 큰 도움을 받았던 터라 감사의 뜻으로 음택 두 곳을 선택하도록 했다. 하나는 후대에 큰 벼슬이 나오고 명예가 높은 자리이고, 다른 하나는 큰 부자는 아니지만 부자로 자손이 번창한다는 터였다. 형제는 집안이 번창한다는 ‘옥녀탄금(玉女彈琴)’ 형국의 자리를 택하고 부친 일민(逸民)의 묘를 썼다.  
이때 소요 스님은 속가의 어머니 묘를 이곳 월산으로 옮기며 한마다 덧붙였다.

“경주이씨 묘와 나의 어머니 묘에 제를 지내면 집안이 부유하고 자손이 번창하기를 천년간 이어진다.” 이후 경주이씨 월산문중은 매년 음력 10월 보름 시제에 소요대사의 어머니 묘에서도 제를 올리고 있다. 그러기를 지난해까지 373년을 이어온 것이다.

소요대사가 터를 잡았다는 경주이씨 월산문중 중시조 자리는 소요대사 어머니 묘에서 가까운 능선 너머에 있다. 누가 보아도 천하가 한눈에 펼쳐보이는 명당자리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스님의 예언처럼 담양일대의 경주이씨는 번창했다. 현재 월산문중만 6,500여 명에 이르고 큰 부자는 아니지만 여유롭게 생활하는 집안이 많다.(출처:월산면지) / 담양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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