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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뉴스 지역밀착형 기사/귀농일기(22)귀농인 김태기 님의 ‘예상과 다른 진로’
▲귀농인 김태기 님

 

  내가 월산면으로 귀농하게 된 것은 전혀 예상 밖이었다. 
담양에 연고가 있는 것도 아니고, 친인척이 사는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월산으로 귀농하여 딸기를 재배하고 있다. 하우스 3동에 설향 2동, 죽향 1동을 재배 중이다. 
  애초 귀농할 계획은 있었지만 담양은 생각지 못했다. 강원도로 가서 축산을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인생이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 법, 강원도로 가고자 하는 마음에 변화가 생겼다. 굳이 강원도를 고집하지 않고 고향 가까운 곳에 정착하고 싶었다. 광주에 살고 계신 외삼촌에게 시골에 집이 나오는지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다. 외삼촌이 여러 곳을 돌아다니다 월산의 한 주택을 매입했다. 그렇게 해서 나는 월산으로 터전을 옮겼다.

 월산에 들어와 무엇을 할까 고민했는데 딸기를 하면 괜찮다는 주위의 권유로 딸기를 시작했다. 주위 분들에게 자문을 받아 묘를 하고 정식도 무난하게 하였다. 딸기에 문외한이라 시작 전에도, 시작 후에도 불안한 마음이 컸는데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아 재배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농사를 지을수록 빚이 늘어갔다. 농사를 짓다보니 예상치 못한 돈이 필요했다. 투자를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기에 투자할 수밖에 없었다. 투자의 연속이었다. 귀농하기 전에 빚이 한 푼도 없었는데 농사를 짓다보니 빚이 억대가 넘었다. 그럼에도 빚을 갚을 수 있다는 희망이 있기에 버티고는 있다.

귀농하기 전에는 수원서 자영업에 종사했다. 
아파트나 빌딩에 통신망을 구축하는 사업을 했다. 관급공사만을 했기에 담당자와 술자리를 많이 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김영란법 때문에 접대 문화가 위축되었지만 당시만 해도 접대문화가 당연시 되었다. 일하랴, 접대하랴, 개인적인 시간이 부족했다. 슬하에 딸 둘이 있는데 눈 뜨고 애들을 볼 시간이 없었다. 아침 일찍 출근하여 밤늦게 퇴근하니 애들 자는 모습만 보아야 했다. 별을 보고 나와 별을 보며 들어가는 삶이었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 같이 일하는 소장도 그러했다. 얼마나 개인시간이 부족했는지, 소장은 술만 마시면 울곤 했다. 소장의 울음에 뭐라고 위로의 말을 건넬 수 없었다. 동병상련이지 않은가. 사업을 접지 않는 한 애들과 눈 맞출 시간이 없는 건 뻔했다. 그런 생활을 계속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자연스럽게 귀농을 결심했다.

▲딸기 재배하우스

헌데 막상 귀농하고 보니 일이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아내가 도와주면 좀 더 수월할 텐데, 아내는 허리가 아파 농사를 도와줄 수 없었다. 고설재배도 아니고 노지재배를 하기에 아내에게 도와달라고 할 수도 없었다.
아내는 일본에서 만났다. 일본으로 여행을 갔는데 첫눈에 반했다. 나는 일본어를 할 줄 몰라 짧은 영어로 대화하곤 했다. 아내는 나고야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재원이었다. 그런 아내가 나 때문에 한국어를 독학으로 익혔다. 한국으로 시집온 탓에 수학박사 학위는 무용지물이나 같았다. 
아내는 지금 산업인력관리공단에서 일본어를 가르치고 있다. 일본으로 취업하려는 취준생을 대상으로 한 강의다. 비록 전공을 풀어먹진 못하지만 그렇게라도 아내에게 할 일이 있다는 건 다행이다.
  아내가 농사를 도울 수 없으니 어머니에게 손을 내밀 수밖에 없었다. 소규모 영농이라 다른 인력을 부르기에는 엄두가 나지 않아 어머니에게 말씀 드렸다. 도와달라고. 연로하신 어머니가 흔쾌히 받아들여 지금은 어머니와 함께 농사를 짓는다. 하지만 어머니 나이가 있으니 갈수록 힘이 드신 모양이다. 어머니에게 효도는 하지 못할망정 고생을 시키고 있으니 마음이 안타까웠다. 조금 더 수월한 방법으로 일 할 수 있게 고설재배를 염두에 두고 보조사업을 신청했다. 아직 결과가 나오지 않아 대기 중이다. 고설재배를 하게 되면 그나마 어머니에게 미안한 마음이 좀 덜할 듯하다.
 

▲월산 시루봉 딸기(출하작업)

나의 당면 목표는 빚을 제로로 하는 것이다. 그 다음에 딸기농사를 계속 지을지 아니면 다른 농사를 지을지, 아예 접을지, 고민 중이다. 한 때는 약용식물을 알아보기도 했지만, 지금은 아예 포기했다. 나름대로 계획은 있는데 계획처럼 될지 미지수다. 그래도 희망의 끈은 놓지 않을 것이다.

※ 김태기 귀농인은 1970년생으로 지난 2013년 월산면(장재길)으로 귀농했다.
(연락처 : 010-9981-3833)

  

강성오 전문기자  webmaster@d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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