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화)
■ 안골포의 눈물비

 망개는 피식 웃었다. 그 다음부터 고작 수수나 황토떡 몇 조각을 받으면서도 누가 부르면 재빨리 달려가 푸닥거리를 해주었다. 그녀는 자기가 굿을 해서 병자를 치료하고 귀신을 쫓는 일을 그만큼 뿌듯하게 여겼다. 수용소에 머무는 피로인들도 망개 몸에 정말로 신이 내린다고 믿고 따랐다, 지난 오월에 눈이 파랗게 빛나는 그 기리시탄 무당이 오기 전까지는.

“저 무녀가 받드는 신은 하늘, 땅과 같이 형체가 없거나 성황당 돌덩이, 객귀 같은 헛것들이다. 그대들은 있지도 않은 귀신에게 속고 있다.”
왜적들이, 파드레(신부)님, 하고 졸졸 따르는 그자는 대놓고 떠들었다. 사나운 적들도 호기심에 기웃거리는 굿거리를 노골적으로 막으려고 했다. 거기에다가 꽤 그럴듯한 수작까지 부려서 조선인들을 홀렸다.
“그 신부라는 박수무당이 기도를 해주었더니 장쇠 아들 간질병이 싹 없어졌다네.”
“그것뿐만 아니오. 그자가 웅얼웅얼하면서 손으로 쓰다듬으면 붓기가 없어지고 통증도 가라앉는다고 하오.”
“거참, 더 놀랄 일이 있소이다. 본시 예수는 죽었다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난 도인이라고 하더이다. 앉은뱅이를 서게 하고 벙어리는 말문을 터 주었다고 하니 참말로 용한 무당이었던 듯싶소.”
요상한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다. 언제부터인가 이웃들이 망개를 슬금슬금 피하더니 근 두 달째 굿을 청하는 아낙이 없었다. 들리는 말로는 그 신부 미사에 참가하는 조선인이 삼사백 명을 넘는다고 했다. 그중 절반은 이미 반 년이나 교리를 배워서 다음 달에 내림굿까지 한다고 들었다. 그들 말로는 세례라고 했던가.

“흥, 남만 귀신이 놓은 덫에 걸려서 애비, 할배까지 버리려 하다니. 예수가 센가 우리 신령님이 센가 어디 해보자!”
땅에 풀썩 내려앉은 망개가 다시 뜀박질했다. 신이 내리려면 눈알이 흐릿하고 삭신이 나른해져야 한다. 어지간히 혼이 나가야 신의 세계를 엿볼 수 있다. 얄따란 입술에서 실연기가 거푸 터졌고 펄럭이는 남색 쾌자가 매운 흙바람을 일으켰다. 긴 한삼 소매가 튕기듯 하늘로 흩뿌려졌을 때였다.
“몽인아! 어디가 아파?” 
몽린은 곁에서 두 손을 덜덜 떠는 동생을 흔들었다. 찡그린 얼굴에 땀이 흥건했고 허연 게거품이 묻은 입술을 벌벌거렸다. 몽인이가 벌떡 뛰어나가더니 망자의 혼령이 내린다는 신태집(넋이 머무는 무구)을 잡고 부들부들했다. 굿장에서 누구에게 망자의 혼이 내려앉을지는 무녀도 모른다. 몽인이 입에서 죽은 덕남이 목소리가 새나왔다.

“나를 밀었다, 밀었다. 그 사람들이 나를 떠밀었다.”
“아이고, 덕남아. 참말 너냐? 원통하게 죽은 너냐고!”
아들 넋두리에 어미가 놀라서 오들오들 떨었다. 그녀가 는적대며 다가가더니 몽인이의 한쪽 발을 꽉 껴안았다. 
“너를 민 놈이 누구냐? 어흐윽, 그런 찢어 죽일 놈이 시방 어디 있느냐. 아이고, 원통해라. 원통해…….”
“덕남이 혼령아. 이제 구천으로 잘 가거라. 너의 통분은 우리가 풀어주마.”

망개가 어깨를 다독거리던 몽인이를 이끌고 덕남이 아비에게 갔다. 잠잠히 눈물을 흘리는 그의 앞에 신태집을 내려놓았다. 
혼령이 담겼다는 저 집이 홀로 떠네?
바구니 같은 조그만 무구가 파르르했다. 바람도 멈추었는데 그것이 화난 사람인 양 팔딱이고 있었다. 몽린의 등짝에 더운 땀이 송송 솟았다. 
“내가 왜 죽었소? 어찌해 내 몸뚱이가 바다에 둥둥 떠다니오?”
이미 넋이 나간 아버지 귀에는 몽인이가 내지르는 고함이 아들 것으로 들렸다. 거기에다 망개가 어깨에 걸친 아들 바지가 살아있는 듯 꿈틀대니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아비가 무녀 다리를 와락 부등켜안고 대성통곡했다. 
“내 아들 덕남아. 누가 너를 밀었는지 내 기어이 밝힐 것이다. 그 육실할 놈을 내 손으로 필시 요절낼 것이야. 어흐흐.”
망개가 아버지 어깻죽지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그녀는 늘 단골과 하나가 돼 그들의 슬픔을 씻어주고 함께 울었다. 그들에게 복을 빌어주는 일을 무당의 몫으로 여겼다. 사람들에게 복을 나누어 주어야 죽어서 신령이 된다고 믿었다.

“흐응, 작당끼리 짜고 하는 수작이겠지.”
멀찍이서 구경하던 왜인들이 코웃음을 쳤다. 신령이 사람 몸에 깃든다는 것은 기망이라고 비웃었다. 그래도 몽린에게는 망개가 접신한 것처럼 느껴졌다. 무녀가 부르는 시나위 가락이 용서를 노래했다.

정한 마음으로 원수가 있거든 내리 정을 주고 잘 도와주세.
검으나 땅에 희나 백성 굽어 보살펴 잘 도와주세.
저 바다를 건너다 지치면 힘을 내고 용기를 얻세…….

“너희 사탄들은 이제 그 짓을 멈추어라.”
“…….”

“천주님께서 악마는 염소 뿔을 가졌고 날개가 달렸다고 말씀하셨소. 보시오, 저 무녀의 꼬락서니를. 머리에 쓴 고깔은 뿔과 같고 휘날리는 겉옷은 날개와 같지 않소? 예수님께서 저들과 같은 마귀를 벌하려 재림하신다 약속하셨소.”
우렁찬 음성이 울렸다. 피로인들이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눈을 부라리고 서있는 조선인 역관 곁에서 그 신부가 눈망울을 데굴데굴 굴렸다. 휘움한 눈썹 아래서 새파란 안광이 번뜩였다.
“우리를 만든 것은 하나밖에 없는 절대자, 천주님이시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 앞에 다른 신을 두지 마라, 하셨소. 그러하거늘 저들 무당들은 해와 달이나 당산나무, 심지어는 죽은 자들의 귀신을 신이라고 우기고 있소. 그런 허황된 것들을 그럴듯하게 장식하고 거짓 이야기를 덧씌워서 신령님이라고 부르오. 여러분은 저 무녀가 놓은 신불이라는 덫에 걸린 것이오.”
“…….”
“성경에 이르기를 음녀의 입술은 꿀을 떨어뜨리며 입은 기름보다 미끄러우나 나중에는 쑥같이 쓰고 두 날을 가진 칼같이 날카롭다 하였소. 그대들도 오직 예수님을 믿고 의지해야 저 무당의 올가미를 뿌리칠 수 있을 것이오.”
“…….”
“자, 더불어 기도합시다. 우리를 자유롭게 하신 천주님 아버지. 거룩한 말씀을 품어 헛된 미신을 믿는 자들이 놓은 달콤한 올가미에 걸리지 않토록 하옵소서…… 아멘.”
“…….”

망개는 상대의 으름장을 잠연히 들었다. 한 마디만 뱉어도 신부를 둘러싼, 그를 신처럼 떠받드는 왜적들 칼에 목이 달아날 것이다. 그래도 옹골찬 일월성신님이 돌보아 주시는데 그깟 남만 귀신에게 질 수 없었다. 망개가 입 속에서 무슨 말을 우물거리다 삼켰다.
그래, 누가 그 올가미에 씌웠는지 두고 보자. 
흥이 깨진 구경꾼들이 여기저기서 투덜댔다. 망개가 남만 무당에게 꼼짝부득인 것을 못내 아쉬워했다. 피로인들 속내를 엿본 듯 지는 해가 먼 물마루 꼭대기에서 궁싯거렸다.

장광호 편집국장  dn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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