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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고필의 문화에세이(12)전고필(문화기획가, 향토사전문책방 이목구심서 대표)    

담양의 새로운 길에 대한 생각

 내가 경구처럼 여기는 말씀은 순창 사람 여암 신경준이 남겼던 “모든 길은 본디 주인이 없어서 그 길을 가는 사람이 주인이다”라는 문장이다. 
거기에서 나오는 길이란 이동에 필수 불가결한 기능으로서의 길(路)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깨달음의 길인 도(道)이기도 하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가로수 길로서 메타세쿼이아 길은 원래는 기능적 길인 路에 해당 되었다. 하지만 가로수사랑 군민연대가 만들어지고 잘려져 나갈 도로의 가로수가 보존되어야 할 경관자원이자 담양인의 희노애락이 깃든 나무로서 재탄생하는 순간 路의 기능은 삽시간에 확장되고 품격을 찾으며 당당하게 道가 되었다.
그냥 경치만 아름다운 것이었다면 메타길이 이처럼 사랑받는 길은 아니었을 터이다. 여기에 늘 관에 순응하고 협치했던 담양인들이 최초로 주민 주도의 시민단체를 만들며 뜻을 함께 모았던 벅찬 순간을 기억해 주는 방문객들의 상찬이 곁들어지며 명소로서 지위를 차지하고 지속하게 된 것이라 할 수 있다.

 필자는 지금 담빛길에서 향토사전문 책방을 운영하고 있다. 
2년전 이곳에 입주하려 했을 때 다양한 조건들을 살펴보았다. 그중 하나는 인문과 생태를 표방하는 도시에 책방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나 라는 생각이 컸다. 물론 바로 앞에 가현정 작가가 운영하는 가현정 북스가 있어서 머쓱해 지긴 했지만 그럼에도 책방은 다다익선 아닌가 싶어지기도 했다. 게다가 이 거리에는 공예작가들이 공방을 열고 자신의 고유성을 가진 창작 작업을 열심히들 하고 있는 곳이었기에 망설임이 없었다. 무언가를 도모하면 금방 꼴라보를 통해 힘을 가질 수 있으며 시너지 효과를 거둘 것이라 여겼다. 
책을 팔아서 돈을 벌거나 책방을 유지하려는 생각은 티끌만큼도 없었다. 다른 특기들이 있으니 그것으로 책방을 부양하며 소멸되거나 멸실되어가는 책을 끌어 모으기만 해도 배가 부르리라는 것을 익히 알고 있었다. 

 그런 내 눈앞에 바로 옆 쓰담길이라 명명한 곳에서 이뤄지는 골목길의 주택 개선사업은 많은 기대감을 불러일으키는 촉매제였다.
죽녹원이나 메타길 등을 방문하고 국수거리로 몰려오는 이들이 담양 시내의 골목으로 스며들 수 있는 견인차 역할이 바로 저 장소에서 이뤄질 수 있겠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심지어는 나도 저곳에 입주해 보면 어떨까 라는 은근한 희망 같은 것도 가졌다. 여기 20여평 정도에 향토사 책으로는 담아내기에는 공간이 부족한 게 사실이기도 했고, 그곳에 또 역동적인 사회적 기업이나 청년 창업자나 예술인들을 초대할 것이라는 사업계획이 있다는 것이 기대를 주기 때문이기도 했다. 
작년 초겨울 사전 수요조사를 위해 입주예정자들을 공모할 때 나는 광주를 비롯한 곳곳의 지인들이 이곳에 들기를 원하며 전화를 하고 무언가 힘이 되어 달라고 했을 때 나는 그곳으로 가겠다는 의지를 슬며시 접어 두었다. 이렇게 기다리는 이들이 있었는데, 나는 이미 담양의 기득권이 아닌가. 그런 내가 저곳에 들어간다고 하면 자칫 무슨 수혜를 받은 것처럼 오해 살 것이 두려웠고, 이 보다 더 무서웠던 것은 담양에서 무언가를 도모하겠다는 이들이 가지는 의욕을 나잇살 먹은 내가 무시하는 꼬락서니가 추하게 보일까가 더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공간이 완성된 지 한참이 지났고 겨울도 지나가는 지금까지 후속조치가 보이지 않는다. 그간 사진 전시회가 있어 관리인이나 도슨트도 없는 곳을 빙빙 돌며 다양한 작품을 참관하는 기회도 있었지만 정말 잘 갖춰진 담빛예술창고나 해동예술촌에서 만났던 것과는 다른 기분이 들었다. 지역의 명소가 되고자 하는 거점공간과 길은 도시의 미래를 담보하기 위한 현재적 작업이다. 담양이 부족한 것은 명소 중심으로 편재된 관광이 지역내로 스며들지 못하고 표피만 소비하고 휘발되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다. 그것을 채워 온 것이 담빛예술창고와 해동 갤러리와 같은 것이었다. 전시장으로서의 기능과 복합문화공간으로서의 기능을 수행하는 이곳은 문화부에서도 매우 우수한 공간으로 평가했고 담양을 찾는 예술가를 비롯한 여행자들이 격찬하는 곳으로 자리매김했다. 여기에 쓰담길이 추가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품은 나의 바람은 문화예술과 관련한 청장년들이 세대를 넘나들며 창작하고 전시하고 판매하고 때론 격론을 하며 발전을 도모하는 곳이자, 이곳을 지켜온 지역민들의 삶을 존중하고 이들에게 공생의 미래가 무엇인지를 직접 실천할 수 있는 선한 이웃으로 자리매김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간간히 들려오는 소식 속에 이곳이 전시장으로, 마이스 공간으로 갈지 모르겠다는 이야기를 나는 계속 귀를 씻으며 흘려보내고 있다. 

장광호 편집국장  dn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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