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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뉴스 기획연재Ⅴ(소설)/추월산 길라잡이(제6화)강성오 작가

■ 1594년 3월
(제6화)

  민경이는 흥분된 마음으로 꿀차를 준비했다. 돌솥에 찻물을 끓이고, 숟가락으로 단지에서 꿀을 듬뿍 퍼서 찻잔에 넣었다. 꿀차를 처음 타는 거라서 얼마가 정량인지 알지 못했다. 그건 중요치 않았다. 그저 듬뿍 넣고 싶었다. 양이 많아야 맛있을 것 같았다. 다식도 접시에 가득 담았다. 분홍 오미자, 검정 흑임자, 하얀 녹말, 파란 청태, 노란 송화의 오색 다식을 색상이나 모양에 구애받지 않고 그저 수북하게 준비했다. 준비한 차를 오라버니 방에 넣어주고, 민경이는 자기 방으로 들어가 둘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지금까지 마셔본 차 중에 으뜸이로세.”
  덕령이가 호방하게 말했다. 
  “꿀차가 처음이라 그런 거 아닐까?”
  “이 친구가. 나를 뭘로 보고. 정말 깊고 그윽한 맛이라니까! ……보통 꿀차가 아니지?”
  “옳게 봤구먼. 석청이라 그런 맛이 났을 거야.”
  “석청이라고?”
  “그렇다네.”
  “자주 마시고 싶은데 올 때마다 꿀 차를 좀 줄 수 있겠나?”
 
민경이는 심장이 두근거렸다. 석청을 마시러 자주 올 것 같아서였고, 오라버니가 어떤 대답을 내놓을지 몰라서였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오라버니 방으로 달려가 날마다 드릴 수 있다고 말하고 싶었다.
  “생각나면 언제든지 달려오게나.”
  왜 이렇게 오라버니가 멋있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정말이지?”
  “그렇다니까!”
  
민경이는 속으로 외쳤다. 오라버니 너무 멋지세요!
둘은 화제를 돌렸다. 덕령이는 이웃 마을에 소문난 장사와 씨름을 해서 이겼다고 했다. 오라버니는 무용담을 더 듣고 싶다면서, 민경이를 불러 꿀 차를 더 내오라고 했다. 
민경이는 둘의 대화에 푹 빠져 있다가, 오라버니가 부르는 소리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다기를 챙기러 오라버니 방으로 사뿐사뿐 들어갔다.
  
 “민경아, 이 친구가 꿀 차 맛이 으뜸이라는데, 꼭 꿀 맛 때문이 아닌 거 같거든? 꿀차를 마시러 자주 오겠다는데 올 때마다 좀 타 줄 수 있을까?”
  민경이는 대답을 못하고 얼굴을 붉혔다.
  “이 친구가 쓸데없이.”
  덕령이가 오라버니에게 퉁을 놓았다.
  “민경이를 보는 시선이 심상치 않던데, 내가 잘 못 봤는가?”
  “동생 앞에서 지금 뭔 소리를 하는 겐가?”
  “민경아, 이 친구 목소리 떨리는 거 너도 느꼈지? 이런 목소리 처음이다. 민경이 니가 싫지 않은 모양인데?
  “내 목소리가 떨렸다고? 자네 귀에 이상이 있는 거 아냐?”
  덕령이가 정색했다. 그렇게 말한 덕령이의 목소리는 이전보다 더 떨렸고, 당당한 체구와 우렁우렁한 목소리에 걸맞지 않게 얼굴에 수줍음도 묻어났다.
  민경이는 다기를 챙겨 들고 뒷걸음으로 방을 빠져 나왔다. 나오면서 덕령이를 보니, 자기의 움직임 하나하나까지 지켜보고 있었다. 오라버니의 시선은 의식하지 않았다. 오라버니도 별 다른 제지를 하지 않았다.

  덕령이는 사흘이 멀다 하고 오라버니를 찾아왔다. 덕령이가 들어서면 오라버니는 책을 읽다 말고 마당으로 나가 덥석, 안으며 반겼다. 덕령이는 인사나 안부를 챙기고는 꿀차부터 찾았다. 꿀차 향에 이끌려 발걸음이 저절로 이리로 향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덕령이가 다녀간 후로 민경이는 석청이 얼마나 있는지 살폈다. 한 뼘 높이의 백자 단지 두 개에 석청이 들어 있었다. 한 병은 가득 들어 있었고, 한 병은 절반가량 남아 있었다. 어쩌다 꿀차를 타기에 그 정도 양이면 족히 1년 치는 되었다. 하지만 민경이 눈에는 턱없이 부족해 보였다. 석청을 듬뿍 떠서 차를 타면 몇 번 만에 동이 날 것 같았다. 그걸 느끼면서도 민경이는 덕령이가 올 때마다 듬뿍듬뿍 퍼냈다.

장광호 편집국장  dn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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