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천년담양 담양이야기
담양알기1/담양이야기(23)용면 비호재 이야기

담양이야기(23)용면 비호재 이야기

▲비호재(용면)
▲표지석(비호재 120m 정상)

담양군 용면 추성리와 도림리의 경계를 이룬 곳이 비호재다. 
비호재는 벼슬재, 비실재로도 불린다.
예전에는 구불구불하고 험한 고개였지만 지금은 고개를 깎고 직선으로 길을 내서 고개라는 느낌이 별로 들지 않는다. 고개를 넘어서 도림리로 내려가는 길은 담양호를 건설하면서 호수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비호재는 조선시대에 서울(송도·한양)로 가는 중요한 길목이었다. 광주는 물론 담양, 나주, 함평, 화순, 창평, 옥과 등 각 고을의 수령들이 임금께 인사차 또는 진상품의 운반에도 반드시 넘어야할 고갯길이었다. 그뿐아니라 보부상들이 비호재를 거쳐 정읍, 전주로 통하는 단거리 길로 이 길을 이용하면 재수가 좋아 물품거래가 잘 되었다고 전해진다.

또, 과거시험을 보기 위해서 꼭 비호재를 통과해야 과거에 급제하는 행운의 길로 유명해 선비와 유생들이 비호재를 넘나들어 벼슬재로 이름이 난 길이었다. 청운의 뜻을 품은 선비들이 비호재에 올라 산신령에 기도하면 큰 호랑이가 나와 고개를 가로질러 날아가면 급제를 했고, 아무리 기다려도 호랑이가 나타나지 않으면 낙방했다고 한다. 선비들은 호랑이가 나타나지 않으면 한양길을 취소하고 돌아가 책과 씨름한 뒤 다시 찾아와야 했다. 

옥과(곡성)에 사는 김참봉의 아들은 책을 멀리 하고 술과 여자로 생활하면서 과거 때면 이 고개를 12번이나 찾아 기도를 올렸지만 호랑이가 나타나지 않았다. 그래서 지난 날 자신의 잘못을 깊이 반성하고 3년 동안 민가를 떠나 하루가 짧다고 열심히 독학을 하고 있던 어느 날 갑자기 호랑이가 움막에 나타나 그를 등에 업고 한양까지 데려다 주었다.
호랑이의 호의로 급제한 김참봉의 아들은 귀향길에 제단을 마련하고 호랑이에게 제를 올리자 호랑이들이 하늘을 날며 맞이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많던 호랑들은 6·25 때 다 죽었다고 한다.(출처 : 담양설화, 담양향토문화연구회) / 담양뉴스

담양뉴스  webmaster@dnnews.co.kr

<저작권자 © 담양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담양뉴스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